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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Feb 04. 2022

소설 [프랑켄슈타인] 속 의학

이종장기이식으로 탄생한 크리쳐와 괴혈병으로 죽어간 빅터 프랑켄슈타인

구정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긴 연휴를 지나고 나니 2월도 벌써 며칠이나 지나가버렸습니다.


지난 번에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면서, 원작 소설에 대한 의학적 해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글을 써보았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1815년에 ‘메리 셸리’라고 하는 영국의 작가에 의해 처음 쓰여진 소설입니다. 최초의 SF라고도 불리우는 이 소설의 내용은 많은 분들이 대강이나마 알고 있으실 겁니다.

1818년에 출판된 초판 표지.


그래도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면,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네바에 살던 귀족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과학자(대학에서 다양한 분야의 과학 지식을 섭렵한)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크리쳐(The Creture, 창조물)’를 만들어내게 되었으나, 그 창조물의 모습에 놀라 도망쳐 버렸고, 창조주에게 버림 받고 혼자 살아남은 창조물의 복수로 인해 소중한 모든 것을 잃고 결국 크리쳐를 쫓던 도중에 쇠약해져 사망에 이릅니다.

그리고 창조주를 잃은 크리쳐는 그 슬픔과 외로움에 절규하며 홀로 북극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인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비극적인 최후를 다룬 작품의 효시격으로도 볼 수 있죠.

물론 이러한 소설의 내용을 잘 몰라도 1931년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에서 목에 나사가 박힌 거구의 괴물로 묘사된 ‘크리쳐’의 모습을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사람이 만든 괴물’이 나온다는 기본적인 골자 자체는 꽤 유명하며, 원작은 이후에 여러 가지 형태로 재탄생되거나(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SF 소설이나 영화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1931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영화 ‘프랑켄슈타인’ 속 크리쳐의 모습. 이 창조물에게는 사실 이름이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프랑켄슈타인’으로 오애하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의 작품 중에서는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나온 ‘토니 스타크’와 ‘울트론’의 관계 역시 프랑켄슈타인-크리쳐 관계의 오마쥬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의 힘을 과신한 과학자가 만들어낸 창조물이 일으키는 예상 밖의 대참사를 다뤘다는 점에서는 매우 결이 비슷하니까요.

어벤져스 2편의 빌런인 '울트론'. 이 존재는 외계에서 오거나 한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최고의 천재 과학자인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저는 1818년에 나온, 이 소설의 초판에 있는 부제가 인상적이어서 더 흥미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초판에는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라고 쓰여 있는데, 작가가 그리려고 하는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의 고유한 권능이라고 알려져 있는 ‘생명 창조’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싶어하는 과학자라는 존재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주신인 제우스의 뜻을 어기고 신의 창조물에 불과한 인간들에게 불을 전해주고 문명을 일으키게 만들어준 프로메테우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불을 통해 문명을 일구고, 지식이 발전하게 된 인간들이 결국엔 ‘신에 대한 경외심’이 줄어들어 자신들만의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결과를 프로메테우스가 예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신의 뜻에 저항한 존재이자 창조주를 뛰어넘는 창조물을 만들어내고자 하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처음 꿈꾸던 이상은 프로메테우스의 의지와 닮아 있습니다.

인류에게 불을 전해주는 프로메테우스.


그리스-로마 신화나 성경에서는 인간을 돌에서 만들거나 흙으로 빚어서 만들어냈으나(땅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겠죠), 19세기 초의 과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이 소설에서는 인간의 사체와 동물의 장기가 ‘신인류 창조’의 재료로 그려집니다.


시체와 도살된 동물들의 장기를 모아서 이어 붙이고, 여기에 ‘생명의 불꽃’인 전기 자극이 가해져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컨셉은, 18세기 말에 활동하던 이탈리아의 생리학자이자 해부학자인 갈바니(Luigi Aloisio Galvani, 1737-1798)의 실험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갈바니는 개구리 다리에 전류를 가할 경우 근육수축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관찰한 후, 생물체에 대한 전기 작용에 대해 발표하였고 이는 ‘갈바니현상(galvanism)’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갈바니현상의 어원이 된 갈바니의 초상.


이 현상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 속의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의 불꽃’이라는 개념에 집착하는데,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의 불꽃이라는 개념이나 전기 자극을 통해 새 생명이 창조된다는 내용은 연금술에서 다루는 ‘현자의 돌’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실제적으로 심장에 전기 충격을 가해 생명을 살리는, 제세동기와 같은 의료 기구가 있긴 하지만, 이것은 심장이라는 독특한 장기의 특성(전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에서 기인한 것이지, 실제로 완전히 사망한 생물에 전기 자극을 가한다고 되살아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고대와 중세 시대에 생각하던 생명 창조 방법에서 벗어나(흙으로 빚은 골렘을 만들어내는 류의 상상), 사체와 동물 장기를 조합하여 전기를 가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는 방법론 자체는 과학의 시대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 재료와 방법이 19세기의 한계에 봉착했을 뿐, 현대 과학 기술에서 다루는 로봇이나 사이보그, 혹은 인공장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한 이론과 큰 틀에서는 유사한 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크리쳐의 창조 과정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인간의 사체와 동물의 장기를 섞어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물론 프랑켄슈타인의 작가가 21세기에 이루어지는 이종장기이식(xenotransplantation)의 성공을 예견하고 글을 썼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2022년에 돼지 심장 이식이 성공한 환자에 대한 기사 등을 접한 후 과거의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광경을 메리 셸리 작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19세기 초에 살았던 메리 셸리에게는 ‘장기 이식’이란 환상에 가까운 개념이며(1936년에서야 신장이식이 최초 시도되었고 환자는 이틀 후 사망), 사람끼리의 장기 이식조차도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었기에 생명의 불꽃을 이용한 자신의 소설 속에서는 동물의 장기를 넣은 채로도 새로운 사람이 탄생할 수 있다는 상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의 밀납으로 이어 붙인 날개가 태양에 가까워져 녹아내렸다는 고대인들의 생각이 지구의 대기 상태와 고도에 따른 기온 변화에 대한 무지로 인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야기였던 것처럼 말이죠.


현대의 장기 이식은 작게는 혈관 봉합 등의 문제도 있지만, 크게는 면역계의 ‘거부 반응’으로 인한 실패가 발생하며, 이를 줄이기 위해 각종 면역억제제의 복용과 같은 처치 과정이 이식 수술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과 별개로 이식이 필요한 환자는 많으나 그 환자들에게 공급할 장기는 늘 부족하기 때문에 동물을 이용한 이종장기이식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의 결실이 유전자변형 돼지를 이용한 피부 조식, 신장, 및 췌장 세포 이식의 형태로 이루어져 왔으며, 최근의 심장 이식의 성공까지 이르게 됩니다(각주 1).

이종장기이식 역시 동물 윤리 문제라든가, 이종 간에 발생할 수 있는 감염 문제 등 고려해야할 것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영역이긴 합니다. 그러나 인간 수명의 연장 및 다양한 질병으로 인해 여러 장기의 손상이 발생하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장기 이식이 필요하기에, 이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결점 보완이 지속되어야 하겠습니다.

소설 속의, 유전자 변형도 면역 억제제 전처치도 없는 동물 장기 이식은 현대 의학적으로는 문제가 많은 부분이지만, 그 상상력이 과학과 의학에 주는 영감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소설에서 주목했던 또 다른 부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크리쳐를 쫓아서 전세계를 뒤지며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북극 탐험 중인 배에 구조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매우 쇠약해져 있던 빅터는 크리쳐를 쫓기 위해 배에서 내리려했으나 결국은 하선도 못하고 배에서 죽게됩니다.

자신이 괴물을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죽게 되었다는 죄책감이 심했을 것이나, 젊은 남성이었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쇠약해져 사망한 원인이 단순히 죄책감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19세기라는 시대와 북극 탐험 중인 배라는 특수 상황 등을 고려해 볼 때,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사망 원인을 비타민C 부족으로 인한 괴혈병(Scurvy)으로 추측해보았습니다.

괴혈병은 비타민C이 부족하면 발생하는, 잇몸에서 피가 나는 질환 정도로 생각하기 쉬우나, 비타민C 결핍이 장기화되면 멍이 잘 들고 상처 회복이 잘 안 되며, 신경병증, 전신 쇠약감, 발작, 발열 등이 동반되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괴혈병의 원인에 대한 개념이 정확히 확립된 1930년대 전까지는 수많은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원인 미상의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각주 2). 

위키피디아에 나오는 괴혈병 환자의 잇몸 사진.


대항해시대부터 19세기 까지는 정확히 어떤 요소가 괴혈병을 예방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이 고려되어 왔으나(운동, 선내 환경 위생 등), 결국엔 장기 항해의 특성 상 선원들에게 비타민C가 들어있는 신선한 야채나 고기 등의 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괴혈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이 지속되었습니다.

소설 속 북극 탐험과 비슷한 상황인 20세기 초 남극 탐험 과정에서, 로버트 스콧(Robert Falcon Scott)이란 모험가가 탐험 중 사냥한 물개의 신선한 고기를 먹고 괴혈병 증상이 호전되는 경험을 하였고, 이후로 비타민이란 존재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는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각주 3)

소설 속의 빅터 프랑켄슈타인 역시 크리쳐를 쫓아 여기저기를 헤매이다 보니 점차 영양공급이 소홀해졌을 가능성이 높고,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북극 탐험 중인 배에 구조될 정도로 추운 지방을 장기간 방황했다면 신선한 과일이나 고기 등을 거의 섭취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비상 식량인 통조림이나 염장된 고기 등으로는 비타민C 공급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을테니까요. 빅터를 구조해준 선박도 19세기라는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신선한 음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에 결국은 괴혈병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한 것 같습니다.

생명의 불꽃과 생명 창조를 추구하던 과학자가 결국 생명이라는 의미가 담긴 비타민(라틴어로 생명을 의미하는 Vita와 아미노산을 의미하는 amine을 합쳐서 만든 단어)의 부족으로 사망했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 각주
1.     FDA의 이종장기이식 설명: https://www.fda.gov/vaccines-blood-biologics/xenotransplantation

XenotransplantationTransplantation of Non-Human Cells, Tissues or Organs Into a Humanwww.fda.gov

2.     "The Albert Szent-Gyorgyi Papers Szeged, 1931-1947: Vitamin C, Muscles, and WWII". nlm.nih.gov. U.S.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3.     Scott, Robert F. (1905). The Voyage of the Discovery. London: Smith, Elder & Co. p.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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