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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Jun 12. 2022

병원은 왜 공포영화의 무대로 자주 등장하는가?

영화 [곤지암] 속 풍경과 실제 병원의 역사

6월도 어느 새 열흘 넘게 지나가고 날씨는 제법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더운 날씨에는 아무래도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것이 피서로서 효과가 좋은 편이라(1), 오늘은 공포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2018년에 개봉하여 상당히 흥행한 공포물인 [곤지암]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 만든 영화이며,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갑자기 폐업하고 버려진 ‘곤지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실제로 존재했던 곤지암 남양정신병원을 모티프로 했다고는 하나, 이 병원은 그냥 정상적으로 폐업한 병원이며 현재 건물은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면

“1979년 환자 42명의 집단 자살과 병원장의 실종 이후,
섬뜩한 괴담으로 둘러싸인 곤지암 정신병원으로
공포 체험을 떠난 7명의 멤버들

원장실, 집단치료실, 실험실, 열리지 않는 402호...
괴담의 실체를 담아내기 위해
병원 내부를 촬영하기 시작하던 멤버들에게
상상도 못한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라고 되어 있으며, 포스터에 나와 있듯이 ‘가지말라는 곳’에 굳이 갔다가 험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이 주요 스토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굳이 위험할 수도 있고 소문도 안 좋은 폐건물에 들어가볼 리가 없겠으나,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유투브 조회수로 돈을 벌겠다거나 공포 스팟 체험을 해보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말초적인 이유로 폐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예상하는대로, 한 명씩 한 명씩 끔찍한 상황과 마주하며 참혹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죠.


이 영화는 극 속의 인물들이 들고 들어간 카메라들로 촬영된 장면을 보여주는 형식이기 때문에 병원이나 귀신과 같은 이상한 존재들에 대한 사연을 설명해주기 보다는, 그저 그 공포 분위기 자체를 체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곤지암의 등장 인물 중 한명인 '제윤'. 뒤로 보이는 낡디낡은 병원 타일벽의 모습이 을씨년스러움을 더해줍니다.


시놉시스에 언급된 여러 죽음과 관련된 원혼들이, 일종의 놀이공원에 가는 기분으로 병원에 방문한 사람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공포와 절망에 빠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데(정확히 죽는 것이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으나 분위기 상 죽는 것으로 생각되죠), 이 때 ‘병원을 떠올릴 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공포스러운 상징들’이 잘 활용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두운 병원의 복도라든가, 하나하나 방번호가 붙은 채로 버려져 있는 을씨년스러운 병실, 환자들이 사용했던 샤워실, 낡은 사진들이 걸려있는 수상해 보이는 원장실, 실험실에 놓여있는 동물 표본병들과 포르말린 냄새 등과 같은 것들 말이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예전에 지은지 상당히 오래된 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한 밤 중 당직을 설 때 약간씩 서늘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 꺼진 의무기록실에 차트를 찾으러(종이차트가 일부 남아 있던 곳이라) 갈 때는 농담 삼아 친구들에게 ‘내가 너무 늦게까지 안 돌아오면 찾으러 와라.’라는 식의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새벽에 혼자 병동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그 묘한 고요함이 조금은 기분이 나쁘게 느껴져 노래를 흥얼거려 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철거된 추억의 '이대동대문병원'.


병원을 항상 일터 삼아 지내는 의사나 간호사들에게도 약간은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한 밤 중의 병원이니, 아마 병원에 방문할 일이 거의 없는 분들에게는 ‘영화 속 이미지들’이 더 무서운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병원 자체가 ‘질병’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이유로 방문하는 곳이기에 더 인상이 좋지 않을뿐더러,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도 많고 그로 인해 큰 슬픔을 느끼는 보호자들도 있어 ‘병원을 생각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느낌’이라는 것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주사나 의사들의 흰 가운만 떠올려도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릴 만큼 공포스러운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병원에 정기적으로 자주 방문해야 하는 만성질환자들의 경우에는 지긋지긋하다는 느낌을, 원하던 만큼의 치료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진단조차 어려운 질환의 경우 진단부터 미궁에 빠진 그 자체로의 불만과 절망감, 질병 상태 자체만으로도 나타날 수 있는 짜증과 분노 등… 여러가지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뒤엉켜 있는 곳이 병원일 것입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여러 직군들도 환자나 보호자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한 역전이로 인해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고, 업무량 자체가 많아 피로감을 호소할 때도 많으니… 병원이 제 소중한 일터이긴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렇게 어두운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현대 병원의 모습



이러한 이미지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 혹은 과거 병원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병원의 역사'를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주로 서양의학).




고대 그리스에서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인 아스클레피온(Askleipion)이 병원과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이 곳에 방문한 환자들에게 의학적인 조언을 주거나 예후를 알려주고, 치유를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2). 현대까지도 유적이 남아 있는 아스클레피온 중의 하나가 바로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코스(Kos) 섬에 있습니다.

코스 섬의 아스클레피온 유적.

도시국가 중 하나인 아테네에는 해군이 강력했기에 일종의 병원선이라고 할 수 있는 ‘Therapia(현대 영어로는 치료를 의미하는 Therapy)’도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3).


고대 그리스의 아스클레피온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현대의 병원들의 주요 기능과 달리 휴식과 요양을 취하는 장소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 로마 제국은 그리스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기에, 의술의 신 역시 이름이 거의 흡사한 Æsculapius였으며, 그에게 바쳐진 신전이 병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군대가 발전한 나라답게 valetudinaria라고 하는 군인(+노예 및 검투사들)이 방문할 수 있는 병원과 비슷한 시설이 있었고, 역시나 병원선도 존재했다고 합니다.


로마에서 공중병원(Public hospital)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기독교가 국교화된 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중세 시대에 들어서며 유럽, 비잔틴 제국, 그리고 이슬람 문화권에 걸쳐 여러 병원이 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유럽 쪽에서는 대부분 기독교와 관련되어 병원이 설립되었기에, 그 당시 병원들 이름을 보면 ‘성 니콜라스 병원’, ‘세례자 요한 병원’, ‘성 바르톨로뮤 병원’과 같이 기독교 성인들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인지 중세시대의 병원은 치유보다는 예배 장소에 가까웠고, 속죄 및 신의 은총으로 환자를 나아지게 한다는 개념이 더 강하게 있는 상태였습니다(4).

프랑스 파리에 있던 중세 병원의 모습. 환자들을 간호하는 성직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1500년.


16~17세기에 들어와서는 병원에서 종교적인 면보다는, 좀 더 현대 의학에 가까운 개념인, 치료를 제공해야한다는 점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1600년대에는 William Harvey 같은 의사가 순환계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기도 하고, 1700년대에는 Percivall Pott 등이 현대적인 개념의 외과적 수술(굴뚝 청소부에게 발생하는 고환 종양 제거와 같은-그림)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전문적으로 간호를 담당하는 직군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시작되었습니다(5).

Percivall Pott이 발표한 '굴뚝청소부 암(Chimney sweepers' carcinoma)'.


18세기에는 Thomas Guy라는 부유한 상인의 기부에 의해 Guy's Hospital 런던에 설립되었고, 이후에는 비슷한 형태의 여러 병원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는 현대의 대학병원들처럼, 의사의 교육과 연구를 같이 담당하는 형태의 병원들이 생겨났고, 단순히 요양(혹은 기도 등)을 하는 장소가 아닌 좀 더 복잡한 의약품과 치료를 제공하는 장소로 변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현대적인 위생의 개념이 부족했기에 병원 내에서 여러 감염으로 환자들이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19세기에 들어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 1818~1865)나 간호사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나이팅게일은 나쁜 공기가 감염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이 의료진들의 위생 관리와 환자들을 지내는 병원 환경의 개선에 대한 개념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그림-나이팅게일의 병동).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조성한 병동. 환기에 유리하도록 창문이 크고 환자 침대 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1862년에는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세균’이 부패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기에, 병원 위생 관리에 대한 개념이 강화되었습니다. 현대 병원에서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할 때 무균적 처치에 대해 굉장히 예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의학 드라마에서도 종종 볼 수 있죠)은 이 시대 이후부터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 판데믹과 21세기의 코로나 바이러스 판데믹 등을 거치며, 병원 내 감염 관리에 대한 관심도는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병원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로부터 환자들에 대한 처치를 위한 장소를 만드는 것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어왔으나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종교시설에 가까운 모습이기도 하고 단순히 요양 시설에 가까운 적도 있었으며, 다양한 치료는 제공되나 위생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현대의 병원이 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그에 따라 그 안에서 여러 환자들과 병원 관계자들이 겪었을 고통과 고민이 많았을 것이며, 아마 그러한 과정 중에 있었던 여러 가지 어두운 인상이 사람들의 기저심리에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21세기의 병원 환경과 19세기 이전의 병원 환경을 비교해본다면 정말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며, 철저한 위생 관리가 강조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들의 심리적인 안정을 돕고 병원에 머무는 동안에 여러가지 편의를 제공받고,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일의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점 역시 고려되고 있으니까요.

현대의 병원들은 인테리어도 좀 더 밝고 아름다우며, 병원 내에도 여러가지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지는 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이대서울병원-좌, 서울아산병원 지하-우).


인류의 문명이 지속되는 한, 형태는 조금씩 달라지더라도 병원이라는 장소는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환자의 질병을 치유하는 곳이기에 기본적으로 육체적, 심리적으로 힘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숙명을 지니고 있지만 그래도 경제와 과학/의학이 발전해감에 따라 병원의 이미지도 좀 더 밝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곤지암]과 같은 수많은 병원 배경 공포영화는 그저 괴담으로 여겨질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각주>

1.     Muhammad Imran Qadir, Muhammad Asif. Does Normal Body Temperature Fluctuate when you are Watching Some Horror Scenes? International Journal of Research Studies in Biosciences (IJRSB) Volume 7, Issue 4, 2019, PP 11-13. 실제로 채온이 떨어진다기보다는, 공포 상황에 놓인다는 감각이 아드레날린 분비를 축진하여 근육으로 혈류가 증가(정말 싸우고 도망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하고 상대적으로 손바닥과 가슴 부위로는 혈류가 줄어들어 손과 가슴 주위가 상대적으로 차게 느껴지며 ‘몸이 차가워진다’고 착각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     Risse, G.B. (1990). Mending bodies, saving souls: a history of hospitals. Oxford University Press. p. 56.

3.     Pictet, Jean S., ed. (1960). GENEVA CONVENTION FOR THE AMELIORAT~ONOF THE CONDITION OF WOUNDED, SICK AND SHIPWRECKED MEMBERS OF ARMED FORCES AT SEA

4.     Bowers, Barbara S. (2007). The Medieval Hospital and Medical Practice. Ashgate Publishing Limited. p. 79.

5.     Robinson, James O. (1993). "The Royal and Ancient Hospital of St Bartholomew (Founded 1123)". Journal of Medical Biography. 1 (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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