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장수 이야기

by 구자행

우리 아버지는 힘이 장사였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냐고? 기록으로 남은 건 없지만 어릴 적 내가 본 아버지 나뭇짐 크기로 가늠할 수 있지. 우리 마을뿐 아니라 내가 걸어서 갈 수 있는 이웃 마을까지 다 둘러봐도, 우리 아버지 나뭇짐을 따를 사람이 없었거든. 어릴 적 아버지가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오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사람은 안 보이고 집채만 한 나뭇짐만 성큼성큼 걸어오곤 했어.

그리고 우리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도 하나 있고. 어릴 적 내가 살던 마을에 들판을 휘돌아 가로지르는 제법 큰 내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 징검다리가 있었어.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그 징검다리 대신 시멘트 다리가 생겼으니, 내가 아주 어린 시절엔 나도 그 징검다리를 건너다녔지. 그런데 한 해 여름 큰물이 져서 그 징검다리 돌 하나가 조금 떠밀려 내려갔다고 해. 힘깨나 쓴다는 마을 청년들이 둘씩 셋씩 달라붙어 돌을 제자리 갖다 놓으려 해 보았지만, 돌은 끄떡도 안 했지. 그때 우리 아버지가 나선 거야. “어라, 비키 봐라.” 그러고는 그 돌을 달랑 들어서 제자리에 갖다 박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우리 마을 앞산 이름이 용봉산이야. 인근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고, 신라 때 이름난 도선 스님이 명산으로 일찍이 점 찍어 둔 산이란 걸, 커서 대학 다니면서 어느 신문에서 읽었어. 진주 시내에 있는 ‘비봉산’과 진성면에 ‘달음산’과 이반성면에 ‘용봉산’이 한 줄기로 맥이 이어지는 명산이라고. 우리 자랄 때 이 산을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용봉산’이라 했는데, 초등학교 들어가니 교가 첫 구절에 용봉산이 아니고 영봉산이야. “영봉산 처마 아래 성지를 닦아”. 중학교 들어가니 중학교 교가도 마찬가지야. “영봉산 푸른 정기 이곳에 모아”. 그래도 나는 끝까지 용봉산이라 우겼고, 아직도 용봉산으로 기억하고 있거든.

그 용봉산에 전해오는 전설이 하나 있는데, 이것도 우리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야. 우리 어머니는 이야기꾼이었어. 겨울밤 마을 아낙네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어머니는 조웅전 이야기를 풀어서 마을 사람들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랬거든. 전깃불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 우리 어머니 조웅전은 듣고 또 듣는 연속극이었던 셈이야.


옛날, 아주 먼 옛날, 우리 동네에 금실 좋은 부부가 살았대. 이 부부는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싸운 적 없이 사이좋기로 유명했어. 큰 부자는 아니어도 살림이 제법 넉넉하여 먹고사는 데 모자람이 없었어. 살림도 그만하고 부부 사이도 좋고, 다 좋은데 걱정이 하나 있었어. 부부 나이 오십이 넘도록 자식이 없었거든. 그래도 애가 안 생기는 걸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살았는데, 하루는 이 집에 스님이 시주 얻으러 왔어. 살림이 그런대로 살 만하였기에 보리쌀 대신 쌀을 한 바가지 떠서 시주하였는데, 그 스님이 대뜸 한다는 말이 글쎄,

“이 집에 걱정이 하나 있지요?”

“스님께서 그걸 어째 아십니까?”

“우리 암자에 와서 천일기도를 올려 보시지요.”

“스님 계신 절이 어딘지요?”

“성전암이올시다.”

이 부인이 심 봉사 눈 뜨듯이 눈이 번쩍, 귀가 번쩍, 이튿날 당장 성전암을 찾아갔대. 성전암은 재 너머에 있는 꽤 유서 깊은 암자야.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거기 자주 소풍 가던 곳이기도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달려간 거지. 옛날에는 조상 제사 모실 자식을 얻는 게 정말 절실했거든. 대를 이을 자식을 못 낳으면, 조상 제사 모실 양자를 들이는 게 허다했으니.

맑으나 궂으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그르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드렸어. 그러구러 즈믄 날이 가까워지자 정말 태기가 있더래. 뱃속에 아기가 생긴 거지. 배가 점점 불러오고 어느덧 달이 차고 아이가 태어났어. 보니 사내아이야. 이 부부가 얼마나 기쁘겠어. 좋아 죽을 판이야. 그런데 이 아이가 난 지 사흘 만에 뚜벅뚜벅 걷네. 기절초풍할 일이지. 그러더니 닷새가 지나니 이번에는 말을 하네. 이 부부가 그만 입이 딱 벌어져 안 다물어지네.

모심기 철이 되어 부부가 골짝논에 모를 심으러 갔대. 이제 갓 태어나 막 삼칠일 지난 아이도 데리고 갔지. 아이는 논 가에서 혼자 놀고 부부가 모를 심는데, 모 한 포기 꽂고 애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포기 꽂고 애 한 번 쳐다보고, 그러면서 모를 심었어.

그때 저 멀리서 다그닥다그닥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말 탄 장수 하나가 비호같이 달려오더래. 갑옷을 입고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시퍼런 칼을 들고 아이 앞에 나타난 거야. 나타나서는 아이 목에 칼을 겨누고는 부부에게 호령하기를,

“너희 부부가 지금까지 심은 모 포기 수를 못 알아맞히면 이 아이 목을 베겠다.”

이게 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람. 부부가 와들와들 떨면서 싹싹 빌었어.

“장군님, 살려 주십시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살면서 남을 해코지한 적도 없고, 욕심을 부려 남의 것을 탐낸 적도 없고, 그저 착하게 살아왔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살려 주십시오.”

“말이 많다. 내 물음에 답을 하거라. 답을 못하면 아이 목을 베겠다.”

바로 그때 이 아이가 나선 거야.

“장군님!”

“뭐냐?”

“장군님이 먼저 제 물음에 답을 하신다면 저도 장군님 물음에 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물어보아라.”

“장군님이 이제까지 달려오신 말발굽 수를 알아맞히신다면 저도 우리 어버이가 심은 모 포기 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내가 졌다!”

그러고는 두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더래.

이 부부가 또 한 번 입이 딱 벌어져 말이 안 나오네.

늘그막에 대를 이을 자식을 얻은 것만 해도 가슴 벅찬데, 사흘 만에 걷지를 않나, 닷새 만에 말을 하지 않나. 거기다가 이번에는 지혜롭기까지 하니.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어머니를 부르고는 부탁이 있다고 해.

“어머니, 뒷날 꼭 요긴하게 쓸 데가 있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콩 온 개를 볶아서 비단 보자기 싸서 잘 간직해 주세요.”

누구 부탁이야. 어머니가 노랑 메주콩 백 개를 한 번 헤아리고, 또 헤아리고, 또 한 번 헤아려서 삼세판 백 개를 확인하고, 큰 가마솥에 불을 때고 볶았어. 기다란 주걱으로 휘휘 젖으면서 볶다가 이게 제대로 볶아졌나, 하고 무심코 하나를 집어 깨물어 먹은 거야. 그러고는 비단 보자기에 싸서 어머니만 아는 곳에 잘 숨겨 두었지.

그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에 그 장수가 또 말을 타고 달려와. 그런데 이번에는 칼이 아니고 활이야. 그걸 본 아이가 급하게 어머니를 찾았어.

“어머니, 어머니!”

“왜 그러느냐?”

“어머니, 제가 전에 부탁한 콩!”

“오냐. 여기.”

아이가 보자기를 펴 보니, 아뿔싸! 이 일을 어쩌누. 콩이 아흔아홉 개뿐이야.

“어머니!”

“왜?”

“어머니, 제가 오늘 죽을 운수입니다. 제가 죽더라도 너무 슬퍼 마시고, 제 목을 잘라 비단 보자기에 싸서, 서쪽으로 십 리를 가면 큰 못이 하나 나올 텐데, 거기다 빠뜨려 주세요. 그리고 이 비밀을 그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나타난 장수가 저 멀리서 말에 탄 채로 활을 쏘는데, 첫 번째 화살이 피잉, 하고 바람을 가르고 날아와. 그러자 이 아이가 콩을 한 알 집어 들고 손가락으로 튕겨. 콩알이 날아가더니 화살에 그대로 부딪혀서 화살을 떨어뜨리네. 이럴 수가! 날아오는 미사일을 맞혀 떨어뜨리는 패트리엇 미사일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요즘으로 치면 엠디(Missile Defence)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셈이지. 두 번째 화살이 바람을 가르자 두 번째 콩알을 튕겨 맞히고, 세 번째 화살이 날아오자 세 번째 콩알을 튕겨 맞혀 떨어뜨리네. 그렇게 화살 아흔아홉 개를 모두 떨어뜨렸어. 그런데 마지막 백 번째 화살이 날아오는데 이번에는 막을 콩이 없어요. 그러니 어째, 그 화살에 맞아 죽었지.

그 어머니가 얼마나 슬펐을까. 울다 울다가 아이가 당부한 말이 퍼뜩 생각난 거야. 눈 질끈 감고 아이 목을 잘랐어. 비단 보자기에 싸서, 그 길로 서쪽으로 십 리를 가니 아닌 게 아니라 커다란 못이 있어. 못 둑에 서서 비단 보자기를 던졌지. 보자기를 던지고 뒤돌아서 집으로 막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 장수가 또 나타난 거야.

“아이 목을 어쨌느냐? 바른 대로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저는 모릅니다. 모르는 일입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거짓말하지 마라. 아이 목을 숨긴 곳을 말하지 않으면 너희 부부를 둘 다 죽이겠다.”

부부를 죽인다는 협박에 어머니가 벌벌 떨면서 그만 아이 목을 못에 빠뜨렸다고 말해 버렸어.

이 장수가 못 둑으로 가더니 목 둑에 서 있는 수양버들 나뭇잎 세 잎을 따서 하나씩 못에 던져. 세 번째 잎을 던지자 기적이 일어나네. 못 물이 두 쪽으로 쩌억 갈라지기 시작하는 거야. 물이 갈라져서 바닥이 보이자 거기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몸집이 아주 큰 장수 하나가 이제 막 꿈틀꿈틀 일어서기 시작하는 거야. 막 일어서려는 장수를 이 나쁜 장수가 달려가서 칼로 목을 쳐서 죽였어.

그리고 그날 밤에 용봉산에서 날개가 달린 하얀 용마가 한 마리 내려와서, 온 들판을 뛰어다니면서 사흘 밤낮을 울부짖었대. 사흘을 울면서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려도 주인이 안 나타나자 스스로 못에 빠져 죽었대.

용마가 내려온 산이 ‘용봉산’이고, 용마가 주인 찾아 울부짖으면서 뛰어다녔던 들판이 ‘용시들’이고, 용마가 빠져 죽은 못이 ‘용시못’이야. 우리 고향에 가면 용봉산이 있고, 우리 고향 옆 동네에 용시들판이 있고, 용시못이 있어. 그러니까 용시못과 용시들은 우리 어머니 친정 동네 일반성면에 가면 있는데 우리 동네와 그렇게 멀지 않아. 내 생각에, 우리 어머니 친정 동네 전설을 우리 동네 용봉산과 엮어서 나에게 들려주신 것 같아.

어때, 이야기 재미있지? 재미있다고 하면 안 되지. 이게 미의식으로 따져보자면 ‘비장미’거든. 썩어빠진 세상을 바로잡자고 나타난 영웅적 주인공이 불의와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죽을 때 느끼는 슬픔을 비장미라고 해. 홍명희 작가가 쓴 소설 <임꺽정>에 보면, 도적 임꺽정이 평등 세상을 이루어보겠다는 뜻을 품고 세상을 바꾸려다가, 책사 서림이의 배반으로 관군에게 패하게 돼. 임꺽정이 관군의 화살에 맞아 죽는데, 화살이 수십 발씩이나 몸에 꽂혀 마치 고슴도치처럼 되어 울부짖으며 하얀 눈밭에 쓰러져 죽어. 그때 느끼는 슬픔이 비장미야. 우리 동네에 태어났던 아기 장수도 뒷날 임진왜란을 막아 줄 장수였는데, 안타깝게도 어머니의 배반으로 뜻을 못 이루고 죽고 말았지.

어린 시절 나는 씨름을 참 잘했어.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학생이랑 붙어도 내가 이겼거든. 내 주특기가 배지기인데 왼배지기로 들었다가 뒷무릎치기로 냅다 꽂으면 웬만한 덩치는 다 나가떨어졌어. 동네 어른들이 그런 나를 보고 장사 났다고 했어. 그럴 만도 한 게 우리 아버지 힘이 장사였지, 거기다 우리 집 앞산이 아기 장수 전설이 전해오는 용봉산이지.

그런데 나는 장사가 못 되고 교사가 되었고, 장사는 나 말고 다른 아이가 됐지. 용봉산 이쪽 자락은 이반성면 메실 용암이고, 반대편 자락은 같은 이반성면 길성이야. 그 길성에 진주 강씨네가 모여 살아. 그 동네가 천하장사 강호동이 태어난 곳이야. 강호동은 나보다 나이가 열세 살 적은데, 길성에서 나서 초등학교 때 마산으로 전학 가서 씨름 선수가 되고 천하장사가 되었지.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알지. 강호동이 아기 장수 전설을 간직한 용봉산 정기를 받아서 천하장사가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강호동보다 한 살 적은 장사가 우리 마을에도 났어. 프로야구 롯데팀 투수였던 손민한이라고 알려나. 손민한 선수는 내가 중학교 다닐 무렵 바로 우리 마을에서 태어났어. 얼굴빛이 까무잡잡한 애였는데 네댓 살 때 집이 부산으로 이사 갔어. 손민한은 어깨 힘이 좋은 투수였는데 묵직한 직구가 일품이었지.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알지. 손민한도 용봉산 정기를 받아 어깨 힘이 좋았다는 사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