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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방문객' 해설과 감상

- 모든 인생은 한 편의 소설

by 한현수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걸개 시로 올렸던 시 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다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맨 앞의 두 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해설이 꽤 많습니다.


사람마다 보고 듣고 겪고 읽는 것들은 다 다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이 직, 간접의 체험들로 인해서 각자가 인식하는 세계의 모습이 달라진다.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세계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일이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와 마주치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굉장한 일이다.


좋은 내용인데다가 이 작품의 주제를 아우르고 있어, 잘못된 해석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적확한가를 따지면 좀 다릅니다. 의외로 이 시는 그렇게까지 관념적, 철학적인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가 담고 있는 것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방문객이 가져오는 것이 새로운 세계라면 이 ‘어마어마’함은 낯섦과 발견의 충격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삶의 무게라면 그 ‘어마어마’함은 화자의 강렬한 공감과 동정의 표현이 됩니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화자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방문객의 삶의 역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양상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힘든 인생의 중량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내 얘기를 소설로 썼으면 족히 몇 권은 되었을 거다.’라고 하면서 한숨짓던 그런 인생입니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게다가 인생, 인간은 금방 부서질 수 있을 만큼 연약한 것이어서, 삶의 과정마다 부딪혔던 실패와 절망과 좌절의 순간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인생을 살아낸 방문객이 내게 오는 것입니다. ‘- 그 갈피를’이라는 시구를 독립된 시행으로 잡거나 다음 시행의 앞에 두지 않고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에 연결한 것은, 그 ‘부서짐’의 속사정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화자는 그 사정의 내막을 바람만이 헤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화자는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그 속사정을 살펴볼 수 있다면)’이라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과 같이 전지적 능력을 갖고 속속들이 들여다 보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사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처럼 그 사람의 인생 역정에도 엄청난 고뇌와 고난의 무게가 얹혀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 말은 ‘사람이라면 마땅히’라는 말의 수사적 표현일 뿐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말합니다. 그 마중은 '환대'가 될 거라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다른 사람들의 방문을 ‘환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무게를 감당해 온 그리고 감당해 갈, 부서졌고 부서질, 그 연약한 인생들을 따뜻한 이해와 위로와 격려로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시인의 깊은 연민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네이버블로그 현대시 전문 해설과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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