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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Nov 22. 2023

또다른 동반자-우울증

목표를 이루고 나니 찾아온 우울증

이혼하고 10년 만에 재혼을 했다.

드디어 비로소 안정된 사람을 만나 안정된 가족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우연찮게 그 나이가 마흔살이었다.

마흔살은 나한테 하나의 이정표였다.


한창 연속적으로 발생했던 불행한 사건들로 인생이 힘들 때, 매일 밤 기도했다.

'내일 아침 눈 뜨면 마흔살이 되어 있게 해주세요.'

힘든 건 다 건너뛰고 마흔살로 눈 뜨고 싶었다.

그 때쯤이면 그래도 잘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아이들도 14살 13살이 되었을테니 손이 덜 갈테고, 지금처럼 열심히 살다보면 어쨌든 대충 문제들이 해결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말도 안되는 막연한 상상으로 버텨왔다.


그렇게 막상 마흔살이 되고 보니 정말로 바라던게 어느정도 이루어졌다.

우연히 꺼내본 마스터플랜과 비슷하게 어찌어찌 살고 있었다.

2012년 다음카페 텐인텐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대충 작성했던 숙제였다.

2012년에 대충 작성했던 인생 마스터플랜

https://blog.naver.com/princepl/222205355521


대출이 잔뜩 끼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집 한채씩 장만했다.

엄마명의 집을 시작으로 오빠, 나, 남동생 각각 한채씩 목좋은 곳에.

아파트 계약금을 남매들이 서로서로 도와가며 마련했고, 상승기에 잘 맞물렸다.


집이란 건 참 대단했다.

따지고보면 팔기 전까지 다 허상인데도 팔면 얼마라는 생각만으로도 삶에 활력이 생겼다.

여전히 월급은 박봉이고 대출은 갚아야하고 힘든 건 매한가지인데 우리 가족의 세상이 달라졌다.

인생의 희망이 생겼다.


아이들은 밝게 잘 커주고 있고, 엄마도 걱정을 덜으셨고, 오빠와 남동생도 이제는 잘 사는 것 같고, 나도 좋은 사람을 만나 꿈꾸던 가정까지 이루고 나니, 갑자기 방향성을 잃었다.

앞으로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목표만을 바라보고 정신없이 살아왔는데,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었다.

이제 그냥 이 안정과 행복을 즐기면 될 터인데, 안정적이어본 적 없는 삶을 살아서 그런가 어색하기만 했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는데...

왜 만사가 더 복잡해졌지?

그동안 꾸역꾸역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해가며 살았던 걸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되는데,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면 되는 상황이 왔는데, 어이없게도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진짜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지금 하던 일을 그대로 해도 좋은데 왜 그렇게 직장이 답답하고 싫은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넘게 지옥이자 감옥같은 기분을 느끼며 회사를 다녔다.

집에서는 행복을 느끼면서도, 회사에 가면 숨을 옥죄어 왔다.

매일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했다.

아무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데 괴로웠다.

아무 문제가 없으니 내 스스로 문제를 억지로 만들어내나?


남편은 나의 온갖 짜증을 받아주다가 드디어 한계에 이르렀다.

나보고 그렇게 회사가 싫으면 이직을 위한 제대로 된 노력을 하라며 다그쳤다.

'제대로 된 노력?'

내가 제대로 된 노력을 안한다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걸 옆에서 제일 많이 지켜본 사람이 나한테 그런 소릴 한다고?

내가 그 지옥같던 시간 동안 토익 공부하고 한국사 자격증을 따고 무수한 심리한 책을 읽고 글쓰기까지 시작했는데!

나보고 노력을 안한다고?

배신감이 치밀었다.

결국 그 날 부부싸움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동네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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