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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Nov 23. 2023

정신건강의학과에 가게 된 이유

또 다른 동반자-우울증

부부싸움을 했던 날 저녁 그래도 화해를 하고 회포를 푸느라 술을 먹었다.

그리고 그 술이 다시 문제가 됐다.

한두잔만 먹고 대충 나에게 맞춰주다 남편은 먼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술에 취한 나는 먼저 잠이 든 남편이 괜히 서운해 혼자 울다가 술을 더 사 오려고 살그머니 나가려 했다.

그런 나를 알아채고 남편은 금세 일어나 나를 말렸다.

하루종일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내가 계속 술을 더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남편은 드디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자기가 집을 나가려 했다.

그때서야 나는 기가 죽어서 집을 나가려는 남편을 붙잡으며 말했다.

"들어올 거야?"

그 정신없는 와중에 남편이 내게 질려 떠날까 걱정되었나 보다.

어디 나가냐고 묻는 게 아니라 들어올 거냐고 묻다니....

그 황당한 소릴 들은 남편은 화가 나는 중에도 "당연하지!" 하고 소리쳤다.

나는 들어놓고도 안 믿겼는지 다시 또 물었다.

"집에 들어올 거야?"

"당연히 집에 들어오지!"

남편은 이상한 질문에 대답을 하긴 했는데 화가 나는 와중에 웃기고 황당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새벽에 30분 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휴대폰을 손에 꼭 쥔 채 거꾸로 쓰러져 자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음날 오후 정신을 차리고 남편과 함께 동네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다.

개원한 지 이제 2달 정도 된 곳이었는데 인테리어가 정말 세련되었다.

예약을 하지 않았다고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나와 남편 말고 방문객들이 여럿 있었는데, 정말 다 멀쩡해 보였다.

엄마와 같이 온 것 같은 20대도 있었고, 부부로 보이는 30대도 있었고, 혼자 온 50대 중년 아저씨도 있었다.

다양했다.


하긴 그들도 나를 보고 이런데 올 것 같이 안 생겼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설문지를 작성해 갔다.

처음엔 아주 간단한 설문지였다.

그 후 나 홀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어요?"

"어... 회사 생활이 힘들어서 왔어요. 친구가 최근에 약을 먹고 좋아지는 걸 보고 저도 먹어볼까 싶어서요."

"회사 생활이 어떻게 힘드세요?"

"딱히 명확한 문제는 없는데 그냥 너무 힘들어요."

"힘들다고 느낀 지 얼마나 되셨어요?"

"1년쯤 됐어요."

"1년이면 꽤 되셨네요. 힘드셨겠어요."


나는 그냥 약을 타려고 왔는데 남자 의사가 자꾸 질문을 했다.

10년 전쯤 여수에서 갔던 정신과에서는 내 이야기는 관심 없고 약을 처방할지 아닐지만 봤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자꾸 말하기 싫은 걸 물어봤다.


그런데 의사의 질문에 답변을 하다 보니 정신과에 가야겠다 결심했던 결정적인 다른 일이 생각났다.

그동안은 친구가 약을 먹고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속으로는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싶어 은연중에 계속 미루었다.

어쨌든 직장 생활 잘하고 있고, 내 이런 괴로움은 주변에서 아무도 모르고, 아는 사람은 남편과 엄마뿐인데...

나보다 더한 정신병자들도 제 잘난 맛에 사는 것 같은데, 그냥 다들 이렇게 사는 게 정상인데 나만 스스로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정말 그냥 문득 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뜩한 살인 충동이었다.

24시간 종일 근무를 서면서 처음에는 그냥 뉴스에 나오는 대로 혼자 하는 사이다 상상이었다.

행정실이나 본청에 폭탄을 설치해서 죽여버릴까 하는 상상이었는데, 어느새 칼로 다 찔러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변해있었다.

최근 칼부림 사건 영향이었는지, 한 번 그 생각이 드니 멈추질 않았다.

분명 내가 이걸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을 거였다.

그런데 그 생각이 사라지질 않고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돌면서 실제로 일어나면 속이 시원하겠다 싶은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무서워졌다.

정말로 회사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인한테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회사의 불특정 다수 전부를 죽여버리고 싶다니...

이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병원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전에 힘들 때 자살 충동은 종종 있었어도 살인 충동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자살 충동이 아니라 살인 충동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이제는 살만해졌다고 죽고 싶은 마음은 안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한번 죽음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어서 그런지 살인 충동이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남편과 다툼이 생기자 그냥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부터 찾아왔다.

어... 이건 위험하다.

이건 안된다.

병원에 가자.

약을 먹자.

자살만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절대로.

그게 남겨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의사는 그런 이야기를 듣더니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냐 물었고, 나는 그런 적은 없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정상이지 않나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 나처럼 사는 거 아닌가...

그냥 좀 불행이 연달아 닥쳐서 그러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의사가 '그 정도면 약은 안 드셔도 됩니다.'라는 소리를 해 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 의사가 우선은 검사를 받아보고 다시 면담을 하자고 했다.

속으로 무슨 검사를 한다는 건지 이상했지만 어쨌든 하라는 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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