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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Nov 29. 2023

정신과 약 일주일 차 적응기

또다른 동반자-우울증

1. 잠을 많이 잔다.

2. 차분해졌다.

3. 술 생각이 안 난다.


약을 처음 먹어보는 거라 정량도 아니고 적응기용 소량이었는데 효과가 엄청났다.


약을 먹는 나는 진짜 나일까?

의문이 들었다.


약을 먹고 어떤지 물어보는 남편에게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을 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왠지 차분해졌다고 했다.

나도 내가 차분해진 것 같긴 했다.

감정기복이 적어졌다.

감정이 분명 있긴 한데 뭔가 전과 달랐다.

그래서 이젠 정말 괜찮아지려나 이게 양약의 효과인가 싶었다.


그런데 역시나 회사에서 아주 작은 일이 있었는데 여전히 화가 났다.

첫 번째 사소한 짜증남에는 그냥 무심하게 넘길 수 있었으나, 두 번째에는 화를 참지 못하고 표출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점이 있었다.

혼자 중얼거리며 화를 내고 난 후, 바로 감정이 진정되었다.

예전 같으면 화가 진정되지 않아 하루종일 곱씹고 또 곱씹으며 괴로워했을 건데...

이게 약의 효과인가.


잠을 자는 것도 신기했다.

교대근무 때문에 불규칙한 수면으로 나는 항상 힘들어했다.

그런데 약 때문에 계속 졸리기도 했지만, 잠을 자려고 마음을 먹으면 잡생각이 안 들고 곧바로 잠이 들었다.

잠자려고 누우면 온갖 잡생각에 꼬리를 물어 뜬 눈으로 지새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신기했다.

수면의 질에는 별 차이가 없어 개운한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잠을 제 때 잘 수 있다는 데 감사했다.

잡생각을 안 하고 잠을 잘 수 있다니!

엄청난 축복이었다.


그다음으로 신기한 점은 술 생각이 안 난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정말 끊임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 생각이 났다.

계속 술이나 먹고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먹으면 긴장이 풀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편해졌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회전하는 머릿속을 잠재우는 데는 술이 최고였다.

그러다 술에 의존하는 것 같아 한 때는 술을 끊고자 AA모임도 가고 100일 넘게 108배와 명상을 하며 끊기도 했지만 결국은 허사였다.


그런데 이 약을 먹은 후부터는 그냥 술 생각 자체가 안 났다.

참는 게 아니었다.

그냥 먹고 싶은 마음, 술 자체가 인생에서 없어도 되겠다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원래 이런 생각으로 살았던 건가?

이래저래 놀라운 효과였다.


지난 일주일 사이 모임이 2번 있었다.

내가 약을 먹는 걸 아는 사람은 남편과 엄마, 친한 친구 밖에 없는데, 술을 두고 먹지 않겠다고 하기가 그랬다.

평소에 술을 좋아하고 잘 먹던 사람이 안 먹는다고 말하고 빼는 것 자체가 좀 민망스러웠다.


그래서 술을 받고 입에 댔는데, 내가 술을 자제를 했다.

술을 먹어도 이전처럼 기분이 엄청 좋아지는 느낌이 없었다.

전에는 술을 마시면 그 즉시 기분이 좋아졌는데...

이제 그런 느낌이 없으니 술이 그냥 물이나 커피와 마찬가지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절제가 되었고 분위기에 맞춰서 조금만 먹었다.


그래도 왠지 약을 먹는 나는 내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생각 안 해도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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