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자들이라 여유롭게 빨리빨리 ㅎ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이제 큰 산을 넘었으니 결혼식이 고민이었다.
30대 중반까지는 만약 재혼을 한다면 성대하게 결혼식을 다시 올리고 싶었다.
첫 번째 때는 혼전임신에 돈도 없고 선택권이 없어서 후루룩 지나갔지만, 두 번째는 남들처럼 제대로 하고 싶었다.
막 호텔 결혼식에 온갖 사람들 초대해서 그런 거.
뭔가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나 이혼해도 니들 걱정이랑 달리 이렇게 잘 산다고 생색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이혼 9년 동안 재혼을 못하고 시간만 흘러 40살이 되다 보니 부끄러워졌다.
결혼식에 초대해도 와줄 친구도 없을 것 같았다.
다들 직장에 육아에 시댁에 바쁠 텐데 괜히 민폐 같았다.
언제가 어느 결혼식에서 봤던 엄청 휑한 그런 식장이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인생에 결혼식은 한 번이면 족하다고 남편 쪽이 미혼이라면 달랐겠지만, 우린 둘 다 재혼이니 굳이 그 난리판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께서도 우리 좋을 대로 하라고 해주셨다.
그렇게 결혼식은 생략하고 직계가족만 간단히 밥 먹는 걸로 하자고 합의가 됐다.
뭐 그냥 내 맘대로 결정한 거 같지만;;;
아무튼 그래도 결혼을 했다는 기분은 내고 싶어 웨딩촬영은 하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 업체가 많고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어느 주말 소규모 결혼박람회를 찾아갔다.
여기저기 상담만 받아도 상품권을 주는 게 신기했다.
거기서 결혼식 비용이 최소 천만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기겁을 했다.
13년 전보다 배는 비싸진 느낌이었다. 후덜덜
반면 웨딩촬영은 가격이 200만원 그대로라 놀랐다.
많이 달라진 컨셉의 웨딩 앨범 샘플들을 보고 있자니 옛날이랑 다르게 진짜 많이 세련돼졌더라.
전반적으로 비슷비슷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적당히 심플하고 오래 두고 봐도 안 촌스러울 것 같은 곳으로 계약했다.
그제서야 드디어 결혼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역시 둘 다 경력자라 조금 더 능숙한 웃음 짓기를 할 수 있었다.
둘 다 피곤한 직장인이라 그저 빠르게 촬영이 끝나길 바랐다. ㅎㅎㅎ
어차피 포샵 다 해줄 거라고 믿고 쭉쭉 진도를 나갔다.
남편은 화장하고 드레스를 입은 나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오늘 아니면 이 여자 이제 다시는 못 보는 거냐며 놀려댔고,
나는 돈만 주면 또 볼 수 있다고 보고 싶으면 돈을 쓰면 된다고 대꾸했다.
청담동 2~30만원짜리 메이크업만 받아도 사람이 확 달라지던데~
남편도 화장하고 머리하고 턱시도를 입혀놓으니 훨씬 멋져 보였다.
거기다 키가 커서 오히려 내가 받침대에 올라가야 한다는 게 특히 좋았다.
첫 번째 때는 남자가 받침대에 올라갔는데 ㅎㅎㅎ
그냥 뭐든 반대라 더 좋았나?
그런데 그렇게 이뻐진 내 모습에도 세월은 숨길 수가 없다는 게 느껴졌다.
26살 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못 생겼었는데 젊은 신부의 그 느낌과 아우라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분명 이쁘긴 이쁜데 13년 전 기억 속과 다른 주름들이 보여서 나이가 들었다는 게 확 느껴지는 하루였다.
쌍수와 치아교정으로 얼굴이 변해도 나이는 정말 이길 수가 없구나.
결혼 한 번 다시 잘해보겠다고 38살에 쌍꺼풀 수술로 이미지 변신까지 했는데, 진짜 20대의 그 탱탱한 피부는 이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찍은 웨딩촬영은 확실히 기분전환이 되었다.
전문가가 해주는 화장을 하고 예쁜 드레스를 입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일 줄이야.
특히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록에 남기는 게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년 후에 결혼 매 10년마다 꼭 리마인드 웨딩촬영을 하자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