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은 학교 어디든 편히 다니시겠지만, 반대로 내가 교장실에 들어가면 왠지 주눅이 들고 불편하다.
벽 쪽에 가지런히 서있는 학교 깃발들과 벽에 걸린 액자들, 싱그러운 난초들과 교태를 부리는 듯한 양란들, 언제부터 쌓여있는 알 수 없는 책들.
그리고 시커먼 소파와 녹색 부직포 깔린채 두꺼운 유리로 덮인 탁자. 교장 ooo 각진 명패까지. 내가 어렸을 때도 이런 모습이었지 않을까... 회상할 정도로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그중에서도 앚을 때마다 뻐덩뻐덩 소리를 내며 불편하게 푹신 거리는 소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앉았던 것인지 엉덩이 모양대로 푹 꺼져있다. 검은색이지만 엉덩이와 등받이만 번떡번떡 윤이나는 애매한 검정 소파. 거긴 왠지 참 앉기가 싫다.
오늘은 교장실이 아니라 보건실에서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계급 사회처럼 급에 따라 쓰는 의자도 다르다. 교장실의 의자와 교무실의 의자와 교실의 의자가 다 다르다.
보건실의 의자는 손을 올리는 곳도 목을 지지해주는 곳도 없는 각진 나무 의자이다.
등받이는 살살 벗겨져있고, 멀리서보면 멀쩡한 듯 보이지만 막상 앉으면 꺼떡꺼떡거리며 균형이 맞지않아 소리가 난다. 의자 다리에는 때가 끼어 여기저기 거뭇거뭇하다.
편하건 안 편하건 학생들은 교실의 나무 의자를 세 개씩 붙여 쿨쿨 잘도 잔다. 졸릴 땐 잠시 자고 일어나는 게 개운하긴 하겠지만, 늘 졸리고 늘 자는 건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하다.
교실 뒤편에서 의자 서너개 붙이고 자는 녀석, 바닥에 무릎담요 깔고 누워자는 녀석, 점심시간 후다닥 밥을 먹고 보건실에 뛰어들어와 20분쯤 자고 가는 녀석.
다들 각자의 계획과 생각이 있을터. 웬만하면 늘 어떻게든 갸들을 좀 더 도와주려고 애를 쓰긴 한다.
5월이라 한껏 더워진 날씨 이야기와 최근에 있었던 학교 행사 등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장실 바로 옆에 보건실이 위치한 덕분에? 우리 교장선생님은 출근길에도 보건실 문을 쓰윽 열고 "굿모닝" 인사해주시고, 점심시간에도 보건실 문을 쓰윽 열고 "점심 식사했어요?"라며 웃어주셨다.
부스럭 부스럭 거리며 들고 오신 비닐봉지에서 편의점 커피 두 개를 꺼내어 올려놓으신다.
그 옆엔 일회용 쌍화탕 스틱을 두 개와 스카치 캔디 한 주먹도 내어놓으셨다. '스카치 캔디 녹색 사탕 저것은 대체 몇 년 전부터 있었던 걸까?'
기존 보건쌤이 출산휴가를 들어가는 이유로 보건실에 공백이 생겨 3개월간 일할 근무자를 구한다는 공지를 보고 지원하여 잠시 근무한 적이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두 달쯤 지났을 무렵 교장선생님께서 이렇게 물어오셨다.
"우리 학교의 가장 문제점은 무엇인 것 같습니까? 장점은 됐고 단점을 얘기해보세요".
"교장선생님, 저 두 달쯤 근무한 상황이라 학교의 단점을 말하기엔 잘 아는 게 없습니다. oo고에서 잠시 근무하는 상황이라 선생님들께서 업무 편의도 많이 봐주시고, 생지부 업무와 급식실 감독 당번도 빼주셔서 저는 보건실에서 학생들 돌보는 일만 하고 있다 보니 불편한 게 없습니다."
"그런 거 말고, 단점 하나만 딱 꼽아봐요..."라며 동그란 눈으로 몇 초간 기다려주셨다.
"음.. 그렇다면. 학생들의 욕설이요. 말할 때마다 c발 c발 즐거워도 웃겨도 c발 c발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
교장선생님은 여전히 인자한 미소로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이 사립학교에 영어 선생님으로 평생 재직하셨고, 교감을 거쳐 교장이 된 지 3년째가 된다고 하셨다.
학생들이 너무나 욕을 많이 써서 귀가 불편할 정도라며, 벌점도 주고 혼도 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신다.
오죽하면 그랬겠냐며, 방송조회 때 교장선생님께서 "c발 졸리냐? 내 훈화가 졸리냐? c발. 욕 들으니 기분 나쁘지? 제발 욕을 쓰지 말자"라고 부탁해본 적도 있다고 하셨다.
워낙 재미있고 다정한 분이라,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기분 나쁘게 듣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그 특유의 위트로 욕하는 학생의 흉내를 내어보신 것이리라.
요즘 사립학교 초임 선생님들은 젊고 싱그럽고 똑똑하다. 이 학교 선생님들은 S대 출신이 아닌 20대를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정규직 교사 시험이 있을 때면 여러 학교 출신의 예비교사들이 몰려 100대1도 넘을 때가 있다고 하고, 해당 과목 시험을 보고 통과를 해야하는데 그렇다보니 s대 출신들의 점수가 가장 높은 것도 현실이라 한다. 수업 시연과 심층면접을 통해 간혹 뒤바뀌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이다.
지방 국립대 출신으로 20여 년 전부터 이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셨다는 이선생님께서 보건실에 혈당을 재러 오셨다가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선생들 학력이 뭐가 중요해? 8학군이라면 모를까? 서울에서도 이 변두리에 있는 학교에 공부하는 놈이 몇이나 된다고요. 근데 선생은 다 S대 출신이니, 선생들이 애들 눈높이를 맞출 수가 있을까? 난 그게 궁금해. 공부를 못한다는 게 뭔지를 모르는 선생들이 공부 못하는 애들을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차라리 나같이 적당히 공부한 교사가 더 필요한 건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겠어요? 허허허."
아이들의 입에서 너무나 다양하고 무시무시한 욕설들이 출동한다. 정확히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쓸 것이고, 습관처럼 쓰는 것 같다.
선생님이 앞에 있어도 욕을 한다.
화단 앞에서도 농구대 아래에서도 욕을 한다.
내 귀가 너무나 불쌍하다. 곧 내 입에서도 튀어나올 것 같이 우글우글 대기중이다.
학생이 공부만 열심히 해주면 고맙겠지만 일찌감치 다른 길을 모색하고 별스런 경험을 하며 지내는 애들도 많았다.
학교에서는 잠을 자고, 하교하면 알바를 하러 간다. 떡볶이집, 마트, 카페, 주유소, 오토바이 배달까지
일찍 사회를 경험하게 되는 아이들에겐 욕을 해라 마라 하기 애매할 만큼 쑤욱 커져있다. 그저 교복을 입고 등교를 했을 뿐, 저 교문을 나가면 그냥 삼촌이고 아저씨 같아 보인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귀한 아들이지만,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들은 아들이 잘 지내고 있겠지 생각하며 각자 삶의 터전에서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초등학교 때는 어린 아들이 밥 차려 먹는 게 걱정되어 근무 중에 집으로 전화도 해보고 학교의 돌봄 교실을 이용하거나 동네 태권도장을 이용해 보기도 했을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 자전거 타고 제법 멀리까지 가보기도 하고, 학원 한두 개 다니며 친구들과 축구 농구도 했고, 이제 부모 테두리를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는 고등학생들은 부모와의 접점이 애매하고 묘연하다.
학교 안에서만이라도 욕을 덜 쓰게 할 방도를 더 고민해보시겠다고 하셨다.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꼭 알려달라고도 하셨다.
교장쌤도 늘 고민하던 부분이었는데, 언급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얘기 나누니 즐거웠다고 하셨다.
그리곤 고3 수호가 들어왔다.
수호 아버지는 지방에서 근무하시고, 어머니도 일을 하신다.
대학갈 생각은 없고, 알바 하다가 요식업 쪽으로 창업을 하겠다고 말하는 수호는 얼마 전부터 프랜차이즈 떡볶이 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계신 걸 보고 흠칫 놀라는 것 같았지만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에 머뭇머뭇 들어왔다.
"소독 좀 해주세요." 수호는 일회용 밴드가 붙은 왼손 세 번째 손가락을 내밀었다.
"으이그 어쩌다 다쳤니? 어디 보자."
밴드를 떼어보니 왼손 세 번째 손가락 끝마디가 가로로 길게 쭈욱 찢어져있었다. 손가락 끝마디의 가로로 난 자상은 깊었고, 손가락의 1cm 상처는 다른 신체 부위의 1cm보다 큰 사건이다.
다친지 제법 시간이 지난 것 같았고, 왜 물이 닿았는지 퉁퉁 불고 쪼글쪼글해져있었다.
수호야........
어찌 다쳤나 물으니 떡볶이 가게 알바 중 설거지를 하다 식칼에 손을 베었다고 한다. 피가 너무 많이 났는데 키친 타올로 꾸욱 눌러 지혈했고, 반창고로 칭칭 감아서 피가 멈춘 후엔 비닐장갑을 두 개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일했다고 한다.
사장님이 20분쯤 쉬게해주셔서 지혈은 잘되었다며. 교장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울컥, 교장선생님 눈에도 글썽글썽 눈물이 맺힌걸 보았다.
부모님껜 말씀드리지 못했고, 칭칭 감고 있으면 붙을 것 같았는데이틀이 지나도 붙지않고 계속 아파서 보건실에 왔다고 했다.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간 아픈 손가락 동여매고 알바했을 수호를 생각하니 떡볶이가 미치게 미웠다.
부모님은 일하는 중이고, 지금은 학교 점심시간.
학교는 외출이나 조퇴를 하고 병원 가서 꿰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부모님이 오셔서 함께 가야 하나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학교 근처에 교류가 있는 외과의원에 전화하여 수호를 잘 부탁한다 얘기해두었다. 대기 없이 잘 꿰매달라고 부탁부탁해두었다.
소독하고 건조시키고 다시 밴드를 감는 동안
우리의 작고 백발의 눈이 동그란 교장선생님이 얼른 차 키를 들고 오신다.
수호를 병원에 데려가시겠다며
수호 혼자 가도 되는데, 병원이 학교에서 버스 두정거장 거리에 있어서 잘 찾아갈 수 있는데
지금 피가 철철 나는 게 아니어서 잘 보내면 되긴 할 텐데. 차키를 들고 오셨다.
그 후엔 그 고마운 교장선생님과 수호는 병원 치료를 잘 받았고 무려 여섯 바늘을 봉합한 후 2주 후 실밥을 풀었다. 이틀에 한 번 소독하러 보건실에 왔지만 말없고 내성적인 아이라 긴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다. 그날 교장선생님의 동행은 나와 수호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 같다.
3개월 근무가 끝나던 날, 교장선생님은 여느 때처럼 보건실 문을 스르륵 열고 편의점 커피를 하나 주고 가셨다. 작고 딱딱한 의자에 3분 정도 머무르며, 학교 이름이 각인된 멋진 기념 볼펜을 선물로 주셨다. 작은 체구와 어울리지 않는 두껍고 큰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셨다.
좋은 인연 고맙고 즐거웠다며 웃어주셨다.
간혹 박교장님이 궁금하다. 잘 지내시나 종종 생각이 난다.
며칠 전 그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올해엔 교장선생님 사진이 바뀌어있었다.
그때 교감 선생님이셨던 쌤이 교장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낯선 인사말과 낯선 사진이었지만, 그 또한 순리대로 흘러가는 이치.
박교장 선생님. 어디 계시든 건강하시길 바라며
격 없이 학생들 아껴주시고 매사 진심으로 염려해주시던 그 마음 감사히 간직해보려고 한다.
학생들은 여전히 욕설을 많이 쓰고 고된 알바도 하며 지낼 것 같지만,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새로운 고민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해본다.
고맙습니다. 교장선생님. 부디 건강하세요.
고길동을 닮았던 박교장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난다.
--또 뵙길 바랍니다. 언제든 와주셨던 관심과 격려 고마웠습니다. 편찮으신데 없이 늘 건강하시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