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여기 인바디 맛집이야. 키는 1.5~2cm 정도 작게 나와. 키재는 기계가 좀 이상해. 균형도 안 맞고 약간 맛이 간 것 같아."
"자, 순서대로 줄 서서 해. 너부터. 양말 벗고 맨발로 올라가서 비회원 검사 누르고, 나이랑 키를 입력해야 해. 재훈아 양말 벗으라구! "
이동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가는 길, 10분의 짧은 쉬는 시간 동안 4명의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인바디를 측정하기 위해 은혁이의 안내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보건실 단골 귀염둥이 은혁이는 체대 입시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훈남이다.
쩍벌어진 어깨와 근육질 몸매에 까무잡잡한 피부, 요즘은 더 열심히 체육 학원엘 다니고 있다.
인바디! 2주에 한 번쯤 측정해도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은데... 매일 재러 오는 학생도 있기는 하다. ^^;;
은혁이와 함께 온 주환이는 보건실에 처음 온 학생이었다.
보건실에서 처치해준 내용을 기록하는 컴퓨터 엑셀 파일에 주환이 이름을 탁 쳐보니 예상대로 텅~ 비어있다. 깨끗하게 공란! 진정 첫 방문이었다.
보건실에 바쁘게 잠깐 다녀가는 학생들도 있기 때문에, 얼른 조회해서 최근에 다녀간 투약 내역을 확인한 후 적절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정말 정말 자주 오는 학생들은 훤히 꿰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보건실 옆 보건교육실에 들어가 인바디와 키 몸무게를 측정하느라 바빴고 소란스럽게 움직여댔다.
그 친구들을 지켜보며 보건실 입구에 서있던 주환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바닥 한 곳에 티눈인지 굳은살인지 마치 사마귀처럼 까맣게 잡혀있었다.
"아이구, 이 부위에 왜 티눈이 생긴 걸까? 굳은살 인지도 모르겠구나. 생각보다 깊어 보여. 많이 불편하니?" 내가 물었다.
"네, 좀 찝찝한 느낌이 있어요. 병원에서 제거한 적도 있는데 다시 나더라구요." 주환이가 대답했다.
"그랬었구나. 학기 중엔 바쁘니까 방학 때 시간 봐서 피부과 한번 더 가보면 좋겠네. 냉동요법으로 제거하거나 레이저가 필요할 수도 있겠어."라고...
주환이 얼굴을 바라보며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보건실에서 티눈까지 단박에 제거해줄 방법은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절차를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주환이의 얼굴을 보며 잠시 이야기를 하노라니 턱 밑에 상처가 보였다. 제법 오래된 듯 딱지도 앉아 있었다.
"주환아, 턱은 어쩌다 다쳤니? 넘어졌었니?"
넘어져서 깨졌다고 넘겨짚기엔 입 쪽에 가까운 다소 애매한 위치였다.
봉합을 한 흔적도 아니었고, 그 정도로 큰 상처도 아니었다.
주환이가 머뭇머뭇하는 사이
번떡 총이 떠올랐다. ^^ 엎드린 채 장난감 총을 쏘다 턱에 상처가 난 적이 있었던 우리 집 둘째가 말이다!
베개와 이불, 책상과 의자로 전투 기지를 만들어 잠복하면서 그렇게도 총놀이를 해댔던 형제가 아니었던가.
스펀지로 만든 총알은 손가락 하나 정도의 크기로, 발사를 하면 푝푝 푹푹 소리가 났고, 총알에 맞아도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밥을 하다가도 날아오는 총알을 맞으면 곧 죽을 것 같은 연기를 많이도 했었던 옛 기억이 난다.
"주환이 너~!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총싸움하니? 너 턱에 그 상처 총싸움하다 생긴 거 맞지?"
"쌤 집에도 아들이 둘 있는데, 너프 총이 크기별로 스무 개쯤 있었어. 딱 보니 총싸움했네. 어린 동생이 있니??"
주환이가 피식 웃었다.그리고 대답했다.
"쌤...저... 체육 특기자로 00고 입학했어요. 사격부예요. 진짜 총 쏴요."
몇 초간 주환이 얼굴만 빤히 쳐다봤다.
총 쏘는 학생을 맞춘 나도 웃겼고, 사격 선수에게 너프총 얘길 꺼내며 고3이 아직도 총싸움하고 노느냐고 물었으니... 쩝; 많이 부끄러웠다.
손에 있는 티눈은 울퉁불퉁해진 겉표면만 살짝 제거해주었다.
무릇 사격이란 온 감각을 하나로 모아 집중해서 행하는 운동이리라.
내가 감히 손댈 수 없는 예비 국대 사격 선수의 손바닥이었기에.
불편한 부분만 제거하고 말끔히 소독 후 재생 밴드를 붙여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했어요. 저희 엄마 가요. 저 초6 때, 저더러 공부 쪽은 아닌 것 같다며, 올림픽 종목을 쭈욱 펴놓고 진짜 못할 것 같은걸 지워보라고 했어요. 높이뛰기, 수영, 달리기, 체조, 역도.. 하나하나 다 지우고나니 사격이 남았거든요. 재미로 한번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격부가 있는 중학교에 방학 중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참여해봤는데, 감독님께서 저한테 소질이 있다고 하셨어요. 재미도 있었구요. 그렇게 우연찮게 시작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