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내달렸을지...

교실로 향하는 학생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서있었다.

by 보건쌤 김엄마

잰걸음으로 바쁘게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

자녀를 내려주는 차량들로 붐비는 교문 앞 도로

그렇게 20분쯤 소란, 그 후엔 다시 고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학생, 둘셋 이야기 나누며 천천히 걸어오는 학생, 부모님 차에서 내려 뛰어들어오는 학생... 등교 시간의 모습들은 마치 동영상 1.5배속 빨리 감기 설정 후 시청하듯 대체로 다급해 보인다. 등교 피크타임 약 20여분 사이에만 그렇게 휘리릭 빠르게 돌아가고 교문이 닫히면 다시 조용하고 고요하다.




교문 보안관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는 정신 차리고 조심히 길 건너 등교하라는 채근 같고, 복장 검열에 집중하고 있는 선도부들의 눈매에서는 오늘 제대로 몇 껀 잡아내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바쁘게 출근하는 교직원의 차량들이 통과할 때마다 차량 번호판 인식기와 기다랗게 생긴 차단기가 오르락내리락 쉬지 않고 일한다.


어제까지 숨 막히는 기말고사의 대장정이 끝났고, 오늘부터는 개별 성적을 확인하게 된다. 성적 확인 후엔 자습을 하거나 영화 감상, 독서 등 쉬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모의고사와 중간고사 기말고사까지 숨 가쁘게 내달리던 학생들에게 잠깐동안 숨 쉴 시간이 약 일주일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일주일 후 방학이 시작되면 그간 부족했던 과목의 보충 및 학원 특강 등 가열찬 학업이 진행될 테니...


시험이 끝나고 오늘부터 이어지는 일정에는 동아리 활동, 학교 축제, 각종 경시대회, 진로 캠프가 연이어 펼쳐지고 그 후 방학! 참여 안 하는 학생들은 많이 여유가 있고, 교내 대회와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각자의 실력을 펼쳐 보이기 위해 애쓰는 시기. 지금이 시험 외의 일들로 소란한 그런 시기이다.


도윤이는 오늘 지각을 했다.

10분 지각을 하여 교실에 들어왔는데, 너무 뛰어와서 그런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교실에서 5분간 앉아있어 보다가 계속 답답하고 숨이 차서 보건실에 내려왔다.


아이들은 두통 복통 근육통을 주로 호소하지만, 가끔은 숨이 차다고 하거나 가슴이 아프다는 등의 시급하고 무서운 말을 하기도 한다. 그 얼마나 걱정스러운 표현인가!


꾀병인지 연극인지 장난인지 농담인지 잘 파악해야 하는데...


오늘 도윤이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쥔 채 쓰러지듯 들어온 것이다.


"선생님, 저 숨을 못 쉬겠어요. 팔다리가 저려요. 도와주세요."

바로 침대에 눕혔다. 베개를 세 개쯤 받쳐서 기대고 앉도록 했고, Vital Sign 체크를 했다.

혈압 145/82mmhg, 맥박 114회, 호흡 26회, 체온 36.8도, 산소포화도 93~94%

빈맥, 과호흡 상태에 혈압도 높았다.

안정을 취한 후 다시 측정해야한다.


이 학생은 키가 178cm에 몸무게는 85kg쯤 나가는 거구로 보였다.


이동용 산소를 가져와 입에 대어주고 편안히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후드 집업을 벗기고 조이는 양말과 시계, 바지 버클을 살짝 풀어주었다. 굵고 살찐 목에 단추를 바짝 채워 그것부터 먼저 풀어주었다.


청진을 해보니 가슴에서 쌕쌕 거리는 안 좋은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고 심장만 연신 쿵쾅쿵쾅 요동치고 있었다.


"제가 너무 뛰어왔어요. 골목에서부터 쉬지 않고 전력 질주를 했는데요, 너무 무리한 것 같아요."

함께 있어주며 지켜보았다. 다시 측정한 결과 활력징후 상 큰 문제가 없어 보이니 편안하게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담임선생님께 연락드리고, 호흡이 진정된 것을 확인 후 따뜻한 물 한잔을 주었다.

알러지 문제, 쇼크, 경련, 심장의 문제 등이 발생하여 즉시 이송을 하거나 가끔은 사망하는 학생이 보고되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CPR방송 한 번이면 옆 아래 윗 병동에서 전문가들이 출동하여 도움을 주고 금세 살리지만, 학교는 보건교사 혼자 또는 체육선생님들 몇 분과 힘을 합쳐 응급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순식간에 그런 상상들을 하며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안정을 찾았고 편안하게 숨 쉬며 누울 수 있었다.


"도윤아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렇게까지 뛰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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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말하지 않아 그냥 두었다. 지각을 했으니 마음이 급하여 뛰었겠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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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후 컨디션 체크를 위해 다시 다가가니 이 녀석이 살짝 울고 있었다.

옆으로 누운 채 눈썹과 눈꼬리를 따라 귀 그리고 베갯잇으로 한두 방을 이 흐른다.

헐~ 고1 고일이가 운다. 그것도 남학생 고일이가!


"도윤아, 속상한 일 있었어? 많이 힘들었구나. 그냥 지각해서, 시간이 빠듯해서 뛴 건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은 괜찮아? 어떡하니..." 주절주절 위로랍시고 뭐든 말을 하고 있었지만, 자리를 비켜주는 게 나을 듯도 하여 몇 마디 하고 일어나려는데


"선생님, 저 골목에 멍하게 서있었어요. 진짜 발길이 안 떨어졌어요... 학교가 보이는데, 학교를 가야 하는데, 가야 할지 안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어요. 그냥 잠시 서있었는데요, 그렇게 한참 서있었나 봐요. 지각을 하게 될 만큼 시간이 간 줄 몰랐어요. 한참 서있다가 조금 정신이 들어서 시계를 봤는데요 7시 55분이었어요. 제가 멍하게 10분이나 서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멍하게 서있을 만큼 큰 고민이 있었어? 바쁜 등교시간이라 다들 휙휙 지나갔을 텐데 그 정도였다면 네가 정말 멍해졌었나 보구나. 학교 오는 게 힘들었어?라고 물었다.


"시험을 망쳤어요. 너무 심하게 망했어요. 앞이 안 보여요. 제가 좀 열심히 공부했었거든요.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하아... 너무 속상해요. 아무 말하지 않고 있다가 엄마한테 결과를 말씀드리니 자퇴해도 된다는 말부터 하셨어요. 그 말이 자퇴하라는 뜻 같이 들렸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일찍부터 중간고사 기말고사 공부만 많이 했었어요. 잘 칠 줄 알았는데, 많이 달려왔는데 다 망했어요."


이유는 시험을 못 쳐서, 비관하는 내용이었다.

공부 안 하는 아이도 많고, 소질을 찾아내어 예체능 쪽으로 실력을 키우는 학생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1들은 대학 수시전형을 고려하여 중간 기말고사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보건실에 두통약을 찾는 학생들과 침대에서 휴식하기를 원하는 학생들로 넘쳐나니 말이다.


"이 녀석아, 다음에 더 열심히 하면 되지. 난 또 무슨 일이라고. 괜찮아."라고 쉽게 말할 수 없었다.


덩치 큰 남학생이 가슴을 잡고 눈물 한두방울 흘릴 정도로 속상해하는 중인데, 내가 뭐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으랴.


늘 다니던 학교가 무시무시한 괴물 같아 보이고, 내가 저기서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지 불안하고 괴로웠던 것 같다. 그렇게 길에 서서 오도 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중학교 학생들의 사춘기는 고등학생들의 것에 비하면 애교일 때도 있다. 나가서 놀고 싶고, 학원 가기 싫어 방황하고 예쁜 여자랑 연애도 해보는 그런 사춘기 말고, 고등학생들은 훨씬 더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자신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어디일지, 과연 대학을 갈 수나 있을지, 적당히 대학을 나오면 그 후엔 어떻게 살아갈지, 자본이 있어야 창업이라도 할 텐데 집안은 그럴 형편이 아니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의 성적과 수년 내로 닥칠 입시 그리고 살아갈 미래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끝으로 포기하고 좌절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지만, 도윤이는 너무 열심히 달려와서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다 큰 녀석의 눈물을 못 본채 해주고, 다시금 넓은 등짝만 토닥토닥 쓰담쓰담해주었다.


지난 중간고사 직후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학생의 자살사건이 생각났다. 학군지 유명 사립고 학생이 성적을 비관하여... 다행히 목숨은 잃지않았다고 들었다...



"진짜 열심히 공부했었나 보구나.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많이 속상했었구나... 학교 오는 길에 그렇게 선 채 멍하게 시간이 흘러가서 너무 당황스러웠지? 그래도 지금은 안정을 찾아서 다행이야. 이제 서서히 일어나 볼까? 교실로 가봐야지. 그리고 또 힘내서 다시 해봐야지. 속상해하는 널 보니 한편으로는 다음엔 더 잘할 것 같은 생각도 들어. 뭐가 부족했나 살펴보고 다음엔 진짜 제대로 조지자. 네 마음만큼 더 힘차게 해 보자. 잘할 수 있을 거야. 도윤아."


덩치가 크지만

고1 남학생이지만

아주 작은 꼬맹이 같았다.

허리를 한껏 숙여 꾸벅 인사하고 교실로 올라가는 도윤이.

땀을 많이 흘려 푹 젖은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언제 잘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덥수룩한 머리카락

모든 걸 말끔히 정리하고 다시 힘내기를 응원하며

도윤이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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