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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건쌤 김엄마 Oct 25. 2021

한없이 기특한 재준이

칭찬밖에 해줄 것이 없는 아이

 한숨 쉬며 들어와 아픈데도 없이 한참을 앉아있다 가는 아이도 있고, 하나도 아파 보이지 않는데 여기저기 아프다며 드러누워있고 싶어 하는 아이도 많다. 심지어 대놓고 피곤하니까 좀 잘게요..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으니 그야말로 천차만별!


 재준이는 매일 아침 지나는 길에 인사를 하러 보건실엘 들린다. 아프다고 하거나 누워있고 싶다고 한 적도 거의 없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활기차고 명랑한 재준이는 전날 하교 후 무엇을 하고 지냈고, 등교할 때 별 일이 없었는지 짧게 재미나게 잘 얘기해주기도 한다.


 인근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몇 해 전, 인사를 참 잘하던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이 바로 재준이다. 당시 중2, 중3 그 정도의 나이였는데,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어 우연히! 새로 근무하게 된 이 학교에서! 만나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던지! 중학교 때는 인사를 잘하던 학생으로만 기억했지 보건실에 자주 오는 편이 아니어서 그땐 재준이를 알지 못했다.


 재준이는 초등학교 1~2학년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고 등하교 시 버스를 이용하여 혼자 잘 다니고, 주말에는 지하철을 타고 고궁 투어를 다니기도 한다. 지적장애 친구들은 그 지능 수준에 따라 활동할 수 있는 영역과 생활 수준에 차이가 많이 난다. 너스레 좋고 밝은 성격의 재준이는 놀이터에서 초등학생들과 축구를 자주 한다고 한다. 놀이터에서 봉사하시는 구청 봉사원 할머니 할어버지들과도 문자를 주고받으며 지내는 학생 재준이.


 지적장애는 있지만, 언어능력이 좋은 편이라 재미난 이야기도 참 많이 해준다. 눈치도 빠르고 행동도 야무진 재준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동네를 위해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 지금도 특수반 수업에는 가장 열정적으로 임하고, 집중력도 좋은 예쁜 학생이라고 한다.


 얼마 전부터 조금씩 불안감을 호소할 때가 있었다. 덩치가 많이 큰 고등학생 녀석들이 성큼성큼 다가와 큰 소리로 말할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무섭다며..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이 어리고 여린 학생이라 세상의 큰소리는 다 두려울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무조건 안정할 수 있도록 위로해주었다.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하기 위해 즐거웠던 시절을 물어보니, 중학교 다니던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한다. 아직 어린 그 아이의 표현 그대로를 쓰자면 "나한테 정말 정말 잘해줬어. 나 행복했었어. 그때가 좋았지. 모든 게 매일이 즐거웠거든. 친구들도 좋았고, 선생님들도 친절했고, 나는요 죽을 때까지 못 잊어. 그 학교를. 그 시절을."이라고 말이다.


 가끔은 할아버지 같이 말하고, 가끔은 유치원생처럼 말한다. ~~ 요. 를 꼭 붙여보자 해도, 늘 말이 좀 짧고 빠르다. 성격도 급하고 행동이 앞서지만, 진심 어린 눈빛과 마음은 절로 통하는 아이! 주말이 지나고 오늘도 보건실에 들렀다. 주말 동안 다녀온 덕수궁 사진을 보여주며 반짝반짝하는 눈을 맞추었으나, 월요일 아침 아픈 학생들이 여럿 들어오자 눈치 빠르게 손짓 한번 하고는 쓰윽 사라진 재준이.


 2교시 특수반에서의 여행 수업을 듣고 자신을 탐험전문가라고 소개하며, "지금 막 호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큰소리로 인사하고 지나가는 밝고 맑은 저 청년! 즐겁게 배우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 만들고, 사회에서 자신이 할 몫만큼 해내면서 하루하루 잘 살아가길 널 볼 때마다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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