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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건쌤 김엄마 Nov 27. 2021

보건실은 대나무 숲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때 미용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미용사들은 고객님들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해요. 얼굴을 계속 쳐다보며 일을 하다 보니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커트하고 참 예리한 작업인데요, 입은 그냥 자동으로 막 나불나불거릴 때가 많아요. 반대로 제가 몇 마디 하지 않아도 오실 때마다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 고객님들도 계세요. 그럴 땐 그냥 잘 듣는 편이구요. 그분들 얘기론 저한테 막 내뱉고 나면 뭔가 시원해하시는 것 같다고도 해요. 저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니깐 저한테 뭐든 풀어놓고 가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냥 자동으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요. 제가 담아놓을 이야기도 아니고, 기억할 필요도 없구요. 시원하게 뱉어내고 가시는거라 생각해요."라고 말이다.


역술원, 철학관, 타로, 사주카페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심리상담소와 정신건강의학과도 크게 봐서는 같은 의미일 것 같다.


끊임없이 하소연하고 싶고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상의하고 싶은 바로 그 마음 말이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도 가끔은 이야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모르는 누군가에게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보건실에도 종종 하소연하러 오시는 분들이 계신다. 주무관님은 고장 난 시설이 너무 많아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틈이 없다며 얼른 다른 학교로 갈 거라 하시고, 실무사님은 잡다한 일이 너무 많이 돌아버릴 것 같다고도 하신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이 얄미워 칠판을 쾅쾅 두드렸더니 손바닥만 아프다는 쌤도 계시고, 코로나 시국에 전교생 등교가 말이 되냐며 사람이 많이 있는걸 힘들어하는 쌤도 계신다. 업무 분장 과정에 마음이 상해 활명수 한병 원샷하시며 눈짓으로 속상함을 토로하는 분도 있고, 너무 고단하여 잠시 누웠다 가시며 별거 아니지만 내가 왔다 간 건 비밀이라 하는 분도 계신다.


 다들 사연이 있고 사정이 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지만 법원 앞에서 일년 365일 소리를 치는 할머니도 계시고, 뭔가를 표현하고 있지만 정확히 알 수 없는 상대도 있다. 미용사에게서 사람을 대하는 노하우를 또 하나 배운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일깨워준 그녀에게 감사했다. 하는 일을 통해 얻어가는 노하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주 가는 미용실이 그 미용사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잠시 들렀다 가시는 분들 조금이나마 속 시원해지셨다면 그걸로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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