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냥 두통약만 좀 주세요."

도무지 입을 열지 않는 너! 약을 먹으면 좋아지긴 하니? 늘 어두운너!

by 보건쌤 김엄마

형준이.

형준이를 생각하면 그냥 내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다.

형준이 얼굴은 늘 무표정하고 가끔은 슬퍼보이기도 한다.

한번도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사사로운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아니어서 어떤 아이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여태

하지만 형준이를 생각하면 늘 가슴 한 켠이 찡 하다. 왜일까...


형준이는 늘 혼자 다닌다.

까무잡잡하고 보통키에 보통 체격에 보통 학생이다.

고딩들은 틈만 나면 농구 축구를 하고 족구를 한다. 다쳐서 보건실에 오는 것이 일상이고 매점에서 음식을 사먹고 우걱우걱 먹으면서 돌아다니는 것이 자연스런 모습이다. 그러나 형준이는 이동 수업 때도 혼자 다니고, 밥도 혼자 먹는 것 같다.


엄마들은 아이가 어려서부터 "예의와 배려"를 가르치고, 남에게 사랑받으며 "어디서든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가르친다. 그 누구도 내 자식이 놈팽이나 양아치 깔깔이가 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 그 성격이 다르므로 어떠한 자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산만하고 행동이 크며 피해주는 일이 잦아서 사과를 하며 살아왔던 엄마라면 그 자식이 버겁고 힘들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차분하고 조용하며 자기 할 일을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는 어쩌면 좀 우아하고 고상해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형준이는 조용하고 차분하다. 보통아이인 것 같다. 보통이라함은 무엇일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형준이의 성적은 나이스를 굳이 열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에게 민폐준 적 없이 잘 커온 것 같다. 행동거지만으로 볼 땐 말이다.

그런 형준이가 난 참 어렵다.

형준이도 매일매일 보건실에 온다.

이유는 말하지 않고, 그냥 늘 약을 달라고 한다. 두통약을.

특히 타이레놀!


"형준아, 꼭 필요할 때만 약을 먹자. 약을 자주 많이 먹는건 건강에 더 나쁘단다." 라고 형식적인 말을 꼭꼭 건낸다. 하지만 순댕이 같이 생긴 우리 형준이는 약을 달라며 서있다.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보건 일지 파일을 열어보니 어제도 그제도 한알 씩 먹었다. 오늘은 약을 주지 않고 달래서 돌려보냈다.


담임 선생님께 메신저를 보내어 상의를 했다.

눈에 띄지 않고, 성적은 그만그만하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형준이는 선생님께 그닥 임팩트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말썽쟁이가 아니기 때문에 잘 지내는 줄 알고 계시는 것 같다. 두통약을 자주 먹는다는 사실은 학교에서 그닥 의미있는 사안은 아니기도 하다. 나한테만 비상사태 전조일 뿐!


사실 조용히 지나가는 녀석들이 더 불안하기도 하다.

나 사춘기요!! 하고 써붙이고 다닐 정도로 버거운 아이들도 있다.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쓰레기통을 던져버리기도 한다.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공격적인 행동의 끝을 보며 근무한 나로서는 어떠한 정신과적 응급상황에서도 그닥 놀라지는 않는다. 제3자가 보면 그런 내가 또라이 같아보일지도 모르겠다. 피하지 않고 다가서려 하고 있으니...


내가 약을 주지 않은 다음 날, 다시 보건실에 나타난 형준이에게 물어보니 그냥 약국에서 사먹었다고 했다. 형준이에게 약물 교육을 해주고 싶어 잠시 시간이 되는지 물었지만 바쁘다고 한다. 공부도 힘들도 불안한 미래도 버거울 것이다. 보건실에 오지 않고, 약국에서 구입해 복용한다면 내가 잔소리를 할 일도 없을텐데... 형준이는 그래도 보건실에 또 나타난다. 뭔가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입을 열지는 않는다. 아직도...


아세트아미노펜은 해열진통제이다. 열이 나거나 머리가 아플 때, 각종 통증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아세트아미노펜은 뇌의 열 조절 중추에 작용하여 해열 작용을 한다. 또한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에 관여하는 사이클로옥시게나제를 억제하고, 세로토닌을 조절하여 진통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이다.



보건실에는 일반의약품들이 구비되어 있다. 의사가 처방하고 약사가 제공하는 전문 의약품은 보건실에 없다. 의사의 처방 없이도 구입할 수 있는 비교적 경한 약제들이다. 그러나 이 약들도 많이 먹으면 당연히 해롭다. 위에서 언급한 아세트아미노펜은 약물의 성분명이고, 그 성분으로 각 제약회사에서 만들어낸 다양한 약품 이름이 다음과 같다. 타이레놀, 이지앤, 서스펜, 나스펜, 세타펜, 슈메디펜, 이알펜, 타미스펜, 타세놀, 타스펜, 타이렌 등등



초등 중등까지는 각자의 꿈과 끼를 찾아보자며 학교마다 다양한 교육을 시행한다. 물론 교과수업과 학업이 우선이지만, 예체능 수업 편성 시수도 높고 행사도 많다. 고등학교는 차원이 다르다. 행사는 수시입학 전형에 초점을 둔 입시 관련 행사와 대회들이 대부분이고, 동아리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상급학교로의 진학이 주요 초점이므로 어쩔 수 없이 그리 해야한다.


학원의 설명회는 언제나 스카이와 의대만 내세워 엄마들의 불안감을 유발한다. 1, 2등급의 내신 우수 학생들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공부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정진한다. 일반고 5등급 이하 인서울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직업군 위주로 학과를 살펴보고, 창업을 할테니 쌤도 놀러오라고한다.


성적으로 빛나는 아이들과 성격으로 빛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늘 참으로 애매한 아이들이 있다. 발달 과업의 시기마다 그 애매함이 참 문제이다. 어린 꼬맹이 땐 아이의 행동발달이 다소 애매하여 활발한 또래들의 놀이에 끼지 못해 애매하고, 초등 시절에는 남들 다 다닌다는 그 학원 레벨테스트에 떨어져 뭐가 참 애매한 경우도 있다.


대세를 따라야할지 내 아이에게 맞춤 교육을 시켜야할지...당연히 후자이겠지만, 우리 엄마들도 처음이라 모르는것 천지다. 태어난지 몇 년 안된 것 같은데, 자식들은 참도 잘 자란다. 엄마들은 우리가 뭘 놓치진 않았을까 뭐가 필요한 시기일까 잘 돌봐주고 싶지만, 우리도 정말 잘 모르겠다.


말이 없는 아이라면, 말이 없으니 그저 잘 지내고 있을거라 생각하지 말고 엄마들이 한걸음 더 다가가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뭘 먹고 다니는지, 아픈데는 없는지 물어봐주시면 좋겠다. 보건실에 가본 적이 있는지, 수업을 빠지고 보건실 침대에 누워서 쉰 적이 있는지, 보건실에서 약을 먹어본 적이 있는지도 물어봐주시면 좋겠다.


갑자기 귀찮게 왜이러냐 핀잔을 들어도 화내지 말길 바란다. 지금 두마디가 내일 세마디가 되고, 내일의 세 마디가 모레의 두 문장이 될 것이니. 속이 타들어가도 한숨 후 내뱉지 말고 입 안으로 모아 들여마시며 참고 또 참길 바란다. 어쩌겠는가 내가 낳은 저 인물인 것을!


약을 원하면 제공하지만, 아니다 싶을 땐 잘라버린다. 약은 이롭지만 해롭다.

엄마 몰래 캔맥주를 마시는 학생도 있고, 담배 피우는 학생들은 정말 정말 많다.

전자 담배의 경우엔 냄새가 나지 않으니 확인도 어렵다.

소맥(소주+맥주), 소탄(소주+탄산수), 무알콜맥주, 맥박(맥주+박카스) 들어도들어도 난처하다.


고1,2,3 학생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몸은 성인에 준하고 마음은 철딱서니가 없다.

그 모든 아이들이 1~3년 이내 사회인이 된다. 군대를 갈 것이고 창업을 하거나 대학생이 되어 성인이랍시고 살아갈 것이다. 자연스러운 생애 주기를 건너며 성장하는 것이지만, 보건쌤으로서 엄마로서 부디 건강한 신체 건강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길 빌어줄 뿐이다.


말이 없지만 어두운 형준이

너와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아직은 원하지 않는 것 같아.

아직은 고1이니, 전교생이 모두 열심히 공부하는 1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는 기다려줄게.

눈동자가 예민해보이더구나.

학생들을 많이 본 쌤은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

궁핍함은 없지만 우울감이 있어보인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으로 해결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좀 찾아보자. 함께 해보자.

혹시라도 네가 중심이 아니라고 불안해하지는 말자.

세상의 중심은 너야. 온 우주의 중심도 너야.

소중한 형준아. 자신있게 밝게 튼튼하게 지내보자. 뭐든 도와줄게.

오늘도 약은 안줄거야. 약국에서 사지도 말거라. 차라리 아마스* 가서 딸기 스무디 마시자.

엄마도 네가 그러길 바라실거야. 진정으로




---또보자. 언제든와. 아프지말구---




이전 01화보건쌤 김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