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백! 제발 그냥 '미술 전공' 계속해주길!

정현아. 그냥 네가 잘하는 거 하자! 너네 엄마도 답답해서 그러셨을 거야

by 보건쌤 김엄마

늘 머리가 아프다고 보건실에 오는 찡그린 얼굴의 안쓰러운 남학생 정현이!


이유도 말하지 않고 "머리가 아파요.", "오늘도 머리가 아파요."만 반복하던 과묵한 학생 정현이!


큰 키에 깡마른 체형, 눈코 입은 오밀조밀 귀엽게도 생겼지만 정현이는 늘 미간을 찡그린 채 찌뿌둥해 보였고, 작은 눈을 흐릿하게 반 정도만 뜬 채 힘들다~ 머리 아프다~ 말하는 아이였다.


타이레놀 외에도 수십 가지의 효과 빠른 좋은 약제가 있다. 보건실 약장엔 늘 종류 별로 약품을 구비해둔다.

보건실에 오면 어디가 아픈지 명확하게 말하는 학생이 있고, 특정한 약을 요구하는 학생도 있으며, 중얼중얼 알 수 없는 말로 찡그린 채 털썩 앉아만 있는 경우도 있다.


피가 나서 오는 경우는 보건실 앞 복도부터 대 소란이 일고(막상 그 피는 종이에 베였거나, 손톱 뜯다가 손톱 옆 피부가 일어나서 피가 났거나 에효;;) 극소량의 출혈에 부축해주는 친구는 두 명이 함께 오기도 한다.


급식실 계단에서 장난치다 넘어져 턱이 찢어졌거나, 축구 태클을 심하게 해서 피부가 벗겨져 피가 나거나, 계단에서 장난치다 넘어져 발목이 돌아간 경우 등등의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놀란 학생들은 다친 녀석을 부축하여 다급히 보건실에 온다.


장난치다 상대방 친구가 다친 경우엔 미안해하며 이마의 땀을 연신 닦아내고 있고, 다친 녀석은 상기된 얼굴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보건교사의 역할은 최대한 차분히, 매뉴얼에 따라 응대하고 최우선은 다친 학생을 정밀히 살피는 일!


빨간 약이 요즘 이렇게 잘 나온다. 포비돈 스왑. 일회용 소독약. 아따 너무 편리해.


매일매일 깨지고 다치고 구급차 타야 할 일이 벌어진다면 이 큰 학교 보건실에 혼자 근무하는 보건 교사는 김엄마 나는 몇 년 못 살고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 50명쯤 방문하는 보건실에는 마음의 병을 안고서 외로움을 호소하며 보살핌을 받고 싶은 어린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대략 2/3를 차지하는 것 같고;;; 나머지 1/3은 근육통, 요통, 두통, 복통, 피로, 구내염, 다래끼, 안구건조, 인후통, 편도선염, 알레르기, 비염, 찰과상, 코피, 긁힌 상처 소독 등이 주요 고객이신 학생 환자님들 이시다.

농구하다 손가락이 꺾였다고 오는 아이들에겐 부목을 대어 반깁스를 만들어준다. 꼭 정형외과에 가보렴~하는 말과 함께.


학기 초부터 이름을 바로 기억할 만큼 보건실에 자주 오는 탑 10 정도는 일찌감치 형성이 된다. 수업을 빠지거나 늦게 들어가고 싶어서 억지 통증을 지어내기도 하고, 새로 온 보건쌤 간을 좀 보면서 침대 하나 차지하여 한 시간만 자도 될지 눈치 작전을 펼친다.


재미있는 건 그런 보건실 아그들만의 리그일 뿐! 정작 보건실에 한 번도 단 한 번도 오지 않고 졸업하는 학생들이 훨씬 더 많다.


정현이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보건실에 왔고, 4월이 되자 슬슬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은 사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으며 약도 먹은 적 있다고... 과거에 비해 요즘은 정신과 치료에 대해 그다지 숨기거나 불편한 기색 없이들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가끔은 무슨 무기나 되는 것 마냥, 마치 자신을 건들지 말라는 방패처럼 들이민다. 떼끼 놈! 번지수 잘못 찾았다. 요놈! 난 정신과 간호사다. 7년을 정신과 폐쇄 병동에서 일했다.


그 사연들을 쓴다면 지금 쓰는 보건교사 이야기의 열 배도 넘는 스토리와 이벤트들이 있다. 마음 아픈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황당한 이야기들! 아무튼 정신과 언급하는 아이들에겐 더욱 친절히 받아쳐준다. "쌤이 정신과 간호사야. 자 우리 얘기 좀 해보자꾸나~!"


흠칫 놀라는 아이도 있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는 아이도 있으며, 진지하게 상담받기를 원하는 아이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약 30년 전에 비해 간호대학의 위상은 몹시도 높아졌고, 여학생들이 대다수 진학하는 학과였던 과거에 비해 남학생들에게도 인기 있는 학과이다. 어느 간호대학의 경우 80명 정원에 30명가량이 남학생인 해도 있다고 한다.


취업률이 높고, 종합 병원 내 응급실, 중환자실 등 지식 플러스 힘도 필요한 곳곳에 남자 간호사들의 입지가 넓어진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은 정신과 이야기뿐만 아니라 간호대학 이야기도 궁금해한다.


정현이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니, 진로 고민이 많았다. 공부에 관심은 없었으나 무작정 로스쿨을 가보라고 하는 부모님과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고, 미술 전공을 원했으나 돈벌이가 시원찮다는 이유로 입시 미술을 시켜주지 않아 불만이 가득했던 시절에 사춘기까지 겪었다고 한다.


그런저런 대화 중에 자신의 휴대폰에 찍어둔 그림 작품 사진을 쓰윽 내놓았다. 미술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엔 정말 놀랍고 멋진 대단한 작품들이었다.


고1이 되어 미술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출발선이 뒤쳐져서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열심히 더 가열차게 좀 해주면 좋으련만, 멘탈도 자신감도 약한 우리 정현이는 늘 부정적인 면이 더 크게 보였고, 학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입지가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불안해하는 정현이를 보는 엄마는 더욱 흔들렸을 테고, 미술 학원 상담을 해봤자 아직은 부족하다, 출발이 늦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터... 그래서일까?


정현이 말이 의하면 엄마는 타로, 사주 역학, 무속인에게까지 자문을 구하러 다녔고, 가장 잘 맞추는 한 선생님의 조언에 의지를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역술가는 정현이 사주에는 법대가 가장 잘 맞다고 했다는데... 고2 기말고사를 끝낸 시점에 일반계로 틀자며 아이를 흔들어 대셨다. 다시금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 귀염둥이 정현이는 이제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미술대학도 정시로 뽑는 요즘 실정에 맞게 수능 공부에 올인해보겠다고 한다.


정현아,, 내가 네 성적을 알잖니... 정현아,, 내가 네 소질을 알잖니... 어흑


학교 교지에도 그림이 실린 적이 있고, 교내 사생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끄적끄적 그려 놓은 그림들은 내 눈에는 멋진 이모티콘 또는 캐릭터 작품 같았고, 미술 이야기를 할 때면 그 작던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것만 봐도 미대 진학을 해야 할 아이였다.


우리 정현이는 스스로도 흔들렸고, 어머니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미술과 수능 공부 사이에게 의미 없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


난 그냥 정현이가 꼭 미대에 진학하면 좋겠다. 정현이가 실기 공부도 더 열심히 해주면 좋겠다. 정현이 어머니가 역술인을 찾지 말고 그냥 정현이 어깨만 더 도닥여주시면 좋겠다.


진로진학 교사도 아니고 담임교사도 아니며 미술교사도 아니기에, 달랑 보건쌤이 아이 진학 문제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릴 명분도 없을터!


오늘도 내일도 보건실에 올 우리 정현이를 위해 시원한 아이스 얼그레이를 한 잔 타야겠다.


정현아, 제발 그냥 미술 좀 하자!!!

열심히 가열차게 공격적으로 말이지!!!

그리고 두통약은 그만 먹자. 넌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머리가 복잡한 거잖니.

힘들 땐 한 시간 누워있다 가렴.

내가 담임쌤께 연락해줄게. 기운 내자.


---또 보자, 언제든 와, 아프지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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