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직 널 포기하지 않았어

엄마의 미련이 부담스러운 아이.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아이.

by 보건쌤 김엄마

서울에서도 손꼽히게 빡센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딩이 된 태훈이!

큰 키에 다부진 어깨, 오뚝한 콧날에 짙은 눈썹, 억 소리 나올 만큼 참 잘난 놈이다!

체력 좋고 튼실한 태훈이는 왜 그렇게도 자주 보건실에 오는 것일까?


태훈이 나이 17세, 이제 고1. 수행평가 챙기랴, 수업 듣고 시험공부하랴, 학원 다니며 숙제하랴 정신없이 바쁜 고1 학생이지만, 태훈이의 마음은 학교 밖에 가있다. 한 살 위 여친을 사귀고 있고, 어른 흉내를 내며 oo역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태훈이가 어떤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 부모님은 염려만 하실 뿐, 세세히는 잘 모르실 것 같다. 말을 하지 않으니, 재잘재잘 귀엽게 말도 참 잘하던 꼬맹이는 이제 집에선 입을 닫아버렸으니...


다치거나 아프지 않아도 늘 보건실에 자주 오는 태훈이. 지금부턴 학생과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보통 부모와 소통이 잘 되는 편이었다.


공부 쪽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찾아내어 그걸 위해 노력하고 열심히 해내는 애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또한 부모님과 관계가 좋은 아그들이 대부분이다.


사춘기 없는 놈이 몇이나 되리. 내 자식은 사춘기 없었다~ 말할 애미가 몇이나 되리.. 사춘기가 정녕 없었다고 한들 그것 역시 비정상이며, 백번 양보하여 문제없이 잘 자라서 대학 가고 취업하고 가정을 꾸려 자식 낳고 별문제 없이 살다가도 30, 40세 어느 중년의 언덕 어디쯤에서 "인생 공허하다~ 이제라도 내 진정하고픈 일을 하겠다."며 대반란을 펼쳐 보이는 늦깎이 오춘기 가장들도 가끔 발견될 터.


태훈이는 학구열 높은 곳 중에서도 핵심적인 곳, 이름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다.


영어유치원을 나왔고, 사고력 수학 cm* 탑반에서 공부했고, 황*수학과 il*영어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교육청 영재원에 이어 대학 부설 영재원까지 수료한 엄친아였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다 지나갔고, 우리네 부모들이 공부했던 그 시절 캐캐 묵은 과거와는 달리 2021년 우리 학교 고딩들을 살펴보자면 잘하던 놈이 쭉 잘하고, 많이 하던 놈이 계속 많이 공부한다.


선행도 학원 숙제도 과부하 상태인 요즘 학생들은 자기 주도 학습을 위한 익힐 시간이 부족하고 하루하루 학원 스케줄을 소화하며 힘겹게 생활한다. 학원 빠지지 않으면 다행, 학원 숙제해가면 다행. 그 안에서 얻는 내실은 과연 얼마나 될지 염려스럽다.


태훈이는 어쩌다 엄마와 사이가 나빠졌는지. 왜 학교 밖이 더 좋은지. 왜 <보건실 아이>가 되었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반짝이던 아이 태훈이는, 실은 늘 뭐든 귀찮고 하기 싫었다고 말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고, 책 읽고 마블 영화를 보며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는데...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 레벨 테스트를 보러 다녔고, 쉼 없이 뭔가를 배웠고, 운동도 미술도 팀을 짜서 검증된? 아이들과 함께 했으며 나름 좋은 머리와 가열찬 조기교육 덕분에 이름난 학원 높은 반에 다녔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엄마는 늘 태훈이와 상의 없이 다양한 시험에 응시해놓았고, 시험 전날에서야 얘기해주어 태훈이가 화가 난 적도 많았다고 했다.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하면 엄마는 불 같이 화를 냈다고도 한다.


막상 그런 시험들을 치른 후 입상을 못했거나 점수가 낮았더라면 포기하셨을 텐데, 운이 좋은지 머리가 좋은지 상도 받고 합격도 하고 칭찬도 선물도 받다 보니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학원에서의 입지나 외부 수상 이력 등은 그렇다 치고, 아이들의 진정한 스트레스인 내신 경쟁은 중2 첫 시험 때 시작된다.


요즘 아이들에게 중학교 1학년 일 년 동안은 자유 학년제가 실시되고 있다. 중1 한 해를 거의 놀면서 지내는 것이 사실이다.


동아리 수업과 진로 체험, 문화 역사 탐방과 성공한 멘토 또는 본보기가 될 만한 사람을 통한 좋은 말씀 듣기! 진로와 적성을 찾고 자신만의 꿈과 끼를 발산해본다는 중학교 1학년 일 년 동안의 자유 학년제!!


초등 6년에 초 7 같은 중1을 보내고 드디어 중2 첫 중간고사를 접하게 된다. 모두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다고 한다. 우리 고딩이들은 그때를 회상하며 "c발! 괜히 xx쫄았었어요."라고 말하는 중간고사!


태훈이의 중간고사는 그닥이었고 기말고사도 그닥이었고 전교권을 노린 엄마는 매우 실망했으며 극도로 예민해졌다고 한다. 담임에게 전화하여 반 석차 전교 석차를 확인했고 비상사태가 발생한 양 진학 컨설턴트에게 고액 상담도 받았다고 한다.


롤. 피파 게임을 하고, 관심 분야의 책이나 읽으면서 평범하게 크고 싶은 태훈이었지만 똘똘한 아들을 그렇게 두고만 볼 수 없는 어머니는 물올 화올 학원에 넣어 쉬는 시간 없이 공부시켰고, 소문난 학원에는 어떻게든 넣으려고 애쓰다 보니 머리도 덩치도 힘도 커지고 세진 태훈이와 마찰이 잦아졌다.


학원에선 조금 일찍 나왔고 편의점에 들렀다 동네를 조금 걸으며 시간을 보내다 집에 가기도 했다. 중3이 되어 태훈이는 점점 더 지쳐갔고, 올 A 성적은 되었지만 공부에는 흥미를 잃어갔다. 벼락치기해도 성적은 과목당 한두 개 두세 개 틀리는 정도로 유지됐고, 굳이 고등 선행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수학은 걱정이 좀 되어 수학 학원은 계속 다녔다.


가장 싫은 건 공부 얘기만 하는 엄마였고, 성적이 전부인양 공포심마저 유발하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패배자인 듯 막말을 던져댔다.


가끔은 용접 기술이나 배우라며 욕설도 내뱉아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미안했는지 태훈이에게 사과를 했고, 매일 밤 캔맥주를 마셨으며 알코올 기운을 빌어 태훈이를 안아주며 "엄마는 아직 널 포기하지 않았단다."라고 말한다.


태훈이는 이 모든 것을 엄마의 주사라고 표현할 뿐이고~


보건실에 오늘 아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배가 아파요.", "머리가 아파요.", "너무 피곤하고 어지러워요."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엔 "수업이 지루해요.", "졸려요.", "못 알아듣겠어요.", "쓸데없는 시간이에요.", "차라리 잘래요.", "어제 게임하느라 잠 못 자서 피곤해요.", 등이다.


태훈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가열하게 공격적으로 자라왔지만, 속도와 양이 지나쳤었나 보다. 앗싸리 아웃풋이 별로였었더라면 엄마도 적당히 시켰거나 일찌감치 반쯤은 포기하셨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역량 있는 아이를 내버려 둘 애미 또한 몇이나 있을꼬!


지금 보건실에서 휴식하는 잘생긴 저 녀석 태훈이는 얼마 전부터 선배들과의 라인이 연결되었노라 전해 들었다. ○○역 주변에서 무리 지어 놀고, 인근에 있는 여고 날라리 학생들과 연합하여 상큼한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집은 그냥 싫고 독서실은 잠자기 편한 곳이며 카페는 여친과 시간 보내기 좋은 곳이라 한다.

인근 여고에 다니는 한 살 위 고2 누나와 사귀는 우리 태훈이. 연애사도 가정사도 내 알바는 아니지만, 저 녀석이 의미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 또 꼰대 잔소리를 한다.


욕과 비속어를 즐겨 쓰는 선생 같지 않은 내가 편하고 친근해서일까? 엄마에게 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코로나로 인해 몸이 아프면 조퇴 허락이 많이 느슨해진 요즘! 이런 시절을 잘 이용해 목이 아프다며 과감히 조퇴를 받고 온라인 학습 중이라 집에 있는 여친을 만나러 여친 동네로 날아간 간 이 녀석!!!


대학 입시를 위해서라면 생활 태도 면까지 잘 관리해야 해서 결과 결석 특히 무단은 없어야 한다.


대학 입시의 수시 입학 전형을 염두 중인 학생이라면 출결을 각별히 신경 써서 관리하기 때문에 조퇴를 하거나 수업을 빠지고 보건실에서 땡땡이를 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보건실에 너무 자주 와서 누워있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그 소중한 한 시간을 우리 태훈이는 보건쌤과 수다를 떨고 싶어 한다. 말하는 걸 좋아하는 태훈이!


나도 학교에선 나름 참 바쁜 일상이라 곁눈으로만 봐도 정부 파일이 10cm 높이로 쌓여있고, 하루 두 시간씩은 학급별 보건 수업이 있으며, 학생 건강 조사서, 성교육 관련 자료 만들기, 등교 전 자가검진 완료 여부 체크하기, 학생과 교직원 건강검진과 결핵검사 소변검사 구강검진 출장 일정 잡기, 학폭 회의, 학생부 회의, 위클래스와 협업 업무 등등 줄지어 놓여있다.


보건쌤과 학생으로 한 시절 연이 닿은 사제지간 인연일 뿐이겠지만, 지금 태훈이에게 꼰대스런 잔소리를 날려줄 사람도 나뿐일 듯하고, 그 애정 어린 잔소리를 웃으며 들어주는 넉살 좋은 저놈을 그냥 보내기도 싫어서 오늘도 얼그레이 한잔 오레오 네 알 꺼내어 치얼스 외치며 30분을 떠들었다.


태훈아!

우선 기본은 하자.

교과서만 독서하듯 읽어 두자.

넌 머리가 좋고 선행도 제법 해두었으니 조금만 놀다가 곧 다시 하자.

엄마한텐 화내지 마.

옆집 아줌마다~ 생각하고 기본 예의를 갖추렴.

서로 마상 입지 않도록 말이야.

잔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으렴.

도끼눈은 안돼.

욕도 안돼.

중얼거리듯 혼자서 내뱉는 씨○도 절대 안 돼.

널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은 네가 어떤 짓을 해도 끝까지 네 편이거든.

감사하고 존경하라는 것도 아니야.

버릇없게 덤벼들지만 말자.

엄마도 처음이잖니.

엄마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는 사람이잖니.

태훈아 숨 크게 쉬고 집에 일찍 들어가자~


그리곤 궁둥이 툭툭 쳐주고 어깨 탁탁 두드려주었다.


덩치만 컸지 순박한 짜식!

고2 누나 사귀느라 모아둔 용돈으로 연애하는 놈

엄마가 알면 뒷목 잡겠지만 법은 잘 지키고 있고, 아직까지는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않은 녀석.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더 나가지는 말자.

확인증 사인해줄 테니 담임 선생님께 허락받고 오렴. 두통약은 먹지 말고 한 시간 휴식만 해보자. 그래도 힘들면 얘기하렴. 그럼 편히 누워있거라.




---또 보자, 언제든 와, 아프지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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