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天性)은 본래부터 타고나는 것이라 떡잎부터 그 무엇인가가 보인다고들 하더니,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귀여운 내 새끼지만 뭘 잘하는지 뭘 못하는지는 애미인 우리가 제일 잘 아는 것도 사실이다.
나, '보건쌤 김엄마'는 아들만 둘! 한 녀석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껏 예민하고 예리하며 섬세하고 냉철하지만, 다른 한 녀석은 늘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고 잘 웃는다. 그저 귀엽게 귀엽게 말이다. 그렇게 내 자식 둘도 천성부터 다르다.
내가 그렇게 어여삐 여기는 자식 놈이 둘 있는 것처럼,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지금 여기 같은 시기에 육아와 교육이라는 대 과업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학교에 출근하여 수많은 학생들을 마주하고 돌보며 이야기 나누어 보노라면, 덩치만 성시경 강호동이지 마음은 초등학생 5~6학년에서 그닥 많이 벗어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쌤, 쌤, 가시 박혔어요! 이거 좀 빼주세요."
"쌤 저 경도비만이래요. 건강검진하는데 저만 옆 교실로 가서 피 뽑으래요. 진짜 피 뽑아야 해요? 저 바늘 무섭단 말이에요. 제발 피만 안 뽑게 해 주세요. 네? 네?",
"쌤 온몸이 다 아파요. 혹시 마사지 좀 해주시면 안 돼요?"
"쌤 배 아파요. 엄마가 오버해서 밤 10시 반에 백숙을 주는데 안 먹을 수가 없었어요. 가끔 요리하시는데 어제가 그날이었어요. 아마 곧 내신이라 어디서 영양과 건강을 신경 쓰라는 말을 들었나 봐요."
"쌤 파스 좀 붙여주세요. 저 새끼가 등짝을 때렸는데 존나 아파요. 손이 핵 매워요."
"쌤 농구하다가 손가락 꺾였어요. 이렇게 움직일 수는 있는데 그러면 부러진 건 아니죠?"
"쌤쌤 저 제발 조퇴 좀 시켜주세요. 일산에 게임 관전하러 가야 하는데 담임이 안 아픈 거 알아채고 안보 내줘요. 제발 보건실 조퇴증 좀 끊어주시면 안 돼요? 은철이는 아픈 척해서 조퇴 성공했단 말이에요."
"쌤쌤쌤 식사하셨어요?"
아이들은 늘 날 다급하게 부른다. 가시가 박혀도 다급하고 A4용지를 넘기다 종이에 손을 베면 난리가 난리가 난다.
책상에 엎드려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면 소리를 지르며 깽깽이 발로 뛰어오기도 하고, 족구를 하다 발목이 삐끗하면 뼈가 부러진 건 아닌지 호들갑을 떨며 달려온다. "워워 너 이렇게 달려온걸 보니 뼈 부러진 거 아니다. 그렇지? 진정하자~^^."
그러나, 농구를 하다가 친구 팔꿈치에 맞아 안경이 부러지면서 눈두덩이 부위가 살짝 찢어지고 피가 나면 다급히 보건실에 걸어오지만 결코 소란스럽지 않다.
오히려 극도로 차분하고 엄숙하며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서넛이 우르르 들어왔지만 서로가 말없이 눈으로만 대화를 하고, 어떤 놈이 메인 가해자일지 부딪힌 상황을 떠올리며 눈알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일단은 다쳐서 피가 나는 학생부터 급히 처치해주고, 눈꺼풀이 찢어져 병원엘 급히 가야 하니 담임쌤과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119에 도움을 요청한다. 친구들도 놀랐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얘들아 우선 교실로 돌아가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아이들은 집에서의 모습과 학교에서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고들 한다. 물론 일관성 있게 느물느물 말도 잘하고 애교도 많아서 어딜 가도 사랑받고 잘 살 것 같은 학생들도 있지만, 사춘기 강을 갓 건너 고등학생이 된 1학년들은 그들 본연의 모습을 알아채기까지 약 한 두 달의 시간은 걸리는 것 같았다.
고1에 대한 걱정과 긴장감은 학령기 모든 학년을 통틀어 최고다. 첫 시험을 앞두고 우리 학교에서 내 성적은 어느 정도일지, 내신은 몇 등급을 받을지, 모의고사는 어느 정도 나올지 모든 것이 걱정되고 두려운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2학기가 되면 이미 고등학생 모드가 되어 열심히들 준비한다고 하니, 고1 첫 내신 준비는 대체 몇 달을 공부하는 것인지... 제법 지겨웠다고들 말하기도 한다.
보건쌤 김엄마는 선생과 엄마 그 사이 어디쯤에 있다.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고 수행 평가를 시키고 시험 출제와 내신 산출을 하며 타이트하게 돌아가는 선생님들의 세계에 비해 보건이라는 과목은 비교과 교양 수업 같은 존재이다 보니 몇 걸음 뒤로 쑥 빠져있다.
엄마들은 생각한다. 내 자식 놈이 학교에서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을지 급식시간에 밥은 잘 먹고 있을지 등등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이니 자기가 알아서 잘 지낼 거라 믿고 직장 생활을 하거나 자기 계발에 집중하는 삶! 나도 그 사이 어디쯤 보건쌤이자 엄마인 내가 있는 것 같다.
보건 수업은 사실 참으로 중요하다. 살면서 겪는 위기와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건강과 질병 약물과 치료에 대한 기본 지식을 제공한다.
알아두면 참 쓸모 있는 소양인데, 아이들은 신생아처럼 쿨쿨 잘도 잔다. 그러다 음주와 흡연 교육이 시작되면 반쯤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종양에 대해 설명하면 징그럽고 걱정되고 주변 친인척 중에 있는 암 환자를 떠올리며 눈을 뜨고 수업을 듣는다.
그러다 드디어! 성교육을 실시하는 날이 되면 잠자는 녀석 없이 꼿꼿하게 앉아 옥구슬 같은 눈과 반달 같이 미소 지은 입 매무새로 날 쳐다본다.
성교육을 접하는 아이들의 인식 정도는 1단계부터 10단계쯤으로 나뉘는 느낌이다. 책과 유튜브를 통해 자기 주도적으로 성 전문 지식을 습득한 이론 전문가부터~ 뭐든 체험이 우선이다 부르짖는 연애 실천 전문인!
시시덕거리며 깐족거리는 성 분야 농담 전문가와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일정 부분 민망해하는 큰 귀 소유자! 까지 그 범주가 제법 폭넓다.
뱃속 아가 모형을 시작으로 자궁, 질, 음경, 항문 모형이 나오고 콘돔과 피임약이 소개되면 "유후", "쌤 아기는 어떻게 생기나요? 아기는 배꼽으로 나오나요? 뽀뽀하면 임신이 되나요?"라는 질문을 필두로 난리가 난다. 그런 호기심과 집중력으로 쭉 공부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성교육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매우 많으므로 다음에 학령기 단계별 성별 나이대별에 따라 더 자세히 적어보겠다.
입시에 대해서 보건 교사인 난 뭘 잘 모른다. 학생들의 내신 성적도 내가 꼭 알아야 할 부분은 아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나에게는 똑같이 귀한 학생들이고 남의 집 귀한 아이들일 뿐.
내게 중요한 자료는 아픈 아이들이 있는지, 지병이나 수술한 이력이 있는지, 음식과 약물에 알러지가 있는지, 학교 생활에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은 어떤 것인지 체크하고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인후통과 두통이 있으면 곧바로 조퇴 처리가 되고,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경우 2주 자가격리를 해야 하므로 학교를 길게 못 오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 관련 공문은 쏟아지고 매일이 비상사태이다. 아침이면 자가 진단 내역을 보고 출결 관리를 하는 것이 첫 일과이고, 보건실 벽면에 새로 걸어둔 대형 보드에는 학년별 반별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자 관련 현황판이 걸려있다.
역병이 돌아도 해야 할 공부는 해야 하고 산출할 내신은 산출해야 하니 학교는 원래의 역할대로 돌아가고는 있다. 그러나 대체로 아이들은 해이해졌고 불안해하고 있으며, 난 보건소의 코로나 질병 관리 본부에서 전화만 오면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휴우우
<보건쌤 김엄마> 글 연재를 통해 학교 이야기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의 일들을 기반으로 쓰되, 아이들과 나눈 개인적 이야기는 그 비밀을 지켜주어야 하므로 소재만 가져와 소설처럼 풀어서 써보려고 한다.
교사와 교직원 그리고 학생들 수만큼 학교에서는 매일매일 수백 개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피어난다.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이름은 실제 아이들 이름이 아니며 각색한 이야기들이다.
우리 집 애가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을지 궁금한 엄마들에게, 아이들이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지 얼마나 웃기고 얼마나 긴장하며 지내고 있는지 그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고 공감하고 싶다.
앞으로 재미난 이야기들 기대해주시기 바라며... 보건실을 다녀가는 아이들 뒤통수에 대고 내가 늘 하는 말을 전한다. "또보자~ 언제든 와~ 아프지 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