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말할 곳이 필요하단다. 그저 늘 네가 궁금하지

영유아기 미취학 아동기 초등 저학년 때 보였던 엄마의 열정은 어디로 갔나

by 보건쌤 김엄마

연애하다 헤어지기 싫고 너무 사랑하여 결혼을 한다. 임신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먹이고 재우고 키워낸다!


임신 기간 동안에는 아이가 뱃속에 있으니, 애미로서 그저 몸이 무겁고 숨이 차고 잠이 오고 아파도 약을 먹을 수 없으며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생각 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애를 쓰며 지낸다.


뱃속에 품은 채 키우고 또 키워 건강히 태어나면 그때부턴 예상치 못한 불구덩이를 맞이하게 된다. 낮 밤 뒤바뀌어 시도 때도 없이 울어재끼는 아기를 보면 귀엽다기 보단 두렵기까지 했었다.


도대체 뭘 어쩌란 거냐? 나도 같이 울었고, 남편 손 엄마 손 바꿔가며 안아보고 업어보고 '어휴' 생각만 해도 힘든 기억이다.


산후조리원에서 퇴원 후 친정에 조금 더 머물며 친정 엄마와 함께 아기를 돌보았고, 두 달쯤 지나서 남편과 내가 사는 우리 집으로 이동했을 땐 막막하고 참 두려웠다. 내가 이 아기를 잘 돌볼 수 있을지 불안하고 걱정되었다.


상식과 경험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고, 육아 카페와 인터넷 검색 그리고 엄마 찬스를 써가며 체득해야 했다.


정리된 정보도 별로 없었고, 육아 서적이 있었지만 출산 전 태교나 출산 후 식이에 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그 이후 시기인 어린이 교육에 관한 책들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제일 외롭고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독박 육아! 세상의 모든 애엄마와 아줌마들이 얄밉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이런 힘든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나, "너도 당해봐라, 직접 겪어봐야 알지, 나 때는 더했어." 그런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산고와 육아 통을 겪고 스스로가 받아들이며 지나가기를 반복해왔던 것이라 생각했다.


티비에서는 여전히 사랑하고 행복해했고, 뉴스에서는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만 나와댔으니, 2006년 첫 째 아이는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 시청으로 태교를 했고, 출생 이후에도 CSI 라스베이거스, 마이애미, 뉴욕을 틀어놓고 먹이고 재우고 했었으니 잔인한 형사물 미드로 영어 조기 교육을 한 셈!


아기와 나 홀로 집 콕하는 고립기를 지나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나와 아이의 동반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만 2세, 백화점 문센! 쭉쭉 성장체조, 오감 발달 점프 아이, 소근육 발달을 위한 조물조물 클래스, 쿠킹 클래스, 글렌도만, 클래식 음악과 함께하는 종이접기 수업 등등. 두세 가지 정도 돌아가며 수강했던 것 같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여유로운 엄마,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 녀자, 애 하나에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총출동한 어화둥둥 내 아기, 원어민 수업에 아이보다 자신의 영어를 뽐내는 좀 이상한 엄마!


특별한 내 새끼는 어린이집 보단 놀이 학교로, 일반 유치원 보단 영유로, 공립학교 보단 사립초로 시기 시기별 적절하고 더 좋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주기 위해 엄마들은 그 누구보다 큰 눈과 큰 귀로 살피고 집중한다.


내 자식이 중딩인 지금에서야 찬찬히 회상해보면, 저런 코스로 열심히 돌리고 돌린 열혈 엄마들이 절반이요, 노는 게 최고란다, 나가자 놀자! 외치던 놀이형 엄마가 있었고, 독서가 최고다! 읽고 또 읽자 외치는 도서관형 실속파 엄마들도 많았던 것 같다.


엄마이자 선생이자 직업적으로는 간호사인 '보건쌤 김엄마'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빗대어 말하자면 하루살이 같이 지내온 것 같기도 하다.


남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뭐하며 지내나 관심이 많았고, 내 자식 놈이 어떤 놈인가 뭘 잘하나 알고 싶어 부둥켜안고 많이도 함께 놀았던 것 같다.


학교에선 다소 오버쟁이 보건 쌤 같은데,,, 이건 뭐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는 없지만... 보건실을 찾는 학생들이 날 재미있는 사람이라 말해주긴 한다.


뭐 하나라도 더 따뜻하게, 정성을 다해 챙겨주자 늘 생각한다.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 진짜 두통인 것인가 마음의 문제인 것인가, 배가 아프다는 것이 진짜 복통인 것인가 마음의 문제인 것인가!


고등학교 학생들을 지켜보노라면, 이제는 엄마와 대화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일부러 대화를 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바쁜 일상에 지쳐 대화할 시간이 거의 없다. 아침 일찍 등교하면 밤 10시가 넘어 만날 때가 많다 보니, 문자나 카톡으로 짧게 대화하는 정도!


3,4살짜리 아가 손을 잡고 도란도란 소풍 가던 시절은 이미 십수 년 전의 일이고, 유치원에서 보내주는 코멘트는 신기하고 값졌으며, 초등학교의 상담 시간엔 눈물울 훔치는 엄마들도 있었다.


내 아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은 엄마들은 학부모 모임이나 학원 간담회 등을 통해 또래 엄마들과 양육과 교육에 대해 상의하기도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아이들은 독립적으로 커가고, 엄마들은 손 갈 일이 적어져 수월해지긴 했지만 마음의 부담은 커지기만 한다.


성적도 성격도 성품도 성장상태도 좋으면 이 세상 부러울게 뭐가 있으랴! 말 수가 적어진 아이는 성적은 보통, 성격은 까칠, 성품은 알 수 없을 뿐, 성장은 키 작은 부모로서 미안할 따름!


성적은 학교에서 상담받아야겠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는 녀석을 담임 쌤이 붙잡아놓고 공부시킬 수도 없고 공허한 메아리 상담 같기만 할 뿐, 이런 점에서 사업 수완이 좋은 학원 원장과 상담쌤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들의 지갑을 노린다. 상담 후엔 테스트, 등록, 특강, 간담회. 필요할 땐 개인지도를 붙이자 하니 돈이 술술술~


번화가를 걷노라면 타로 카드, 운세 상담, 철학관이 더러 보인다. 저들에게 내 자식의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발길이 그곳을 향하여 들어가 보기도 했고 이상하게 생긴 카드를 뽑아들며 애매한 대화를 나누어본 적도 있다.


엄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자식을 살펴보고 싶은데, 하루하루 어른이 되어가는 저 아이들은 입을 열지 않으려고 한다.


보건실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몸이 아픈 것 이면에 다양한 가정사들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근무하는 곳은 경제 상태가 좋은 동네에 학력이 좋은 부모 아래에서 이것저것 모두 누리며 자란 학생들이 많은 학교이다.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갸들에게도 나름의 고충들이 있긴 있었다.


아파서 조퇴할 때는 부모님과 통화할 일이 생긴다. 요보호 대상자라고 하여 질병과 질환 및 수술 이력이 있는 학생들은 별도로 관리를 하기 때문에 부모님과 통화할 일이 또 생긴다.


지병이 있더라도 고딩 쯤 되면 스스로 처신도 잘하고 약도 꾸준히 먹어가며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보건쌤이 전화를 했지만 어머니들은 학교 번호가 뜨면 일단 많이들 놀라신다. "보건교사입니다~" 차분히 말씀드리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아이의 학교 생활을 걱정하시고 궁금해하신다.


그저 아이들이 잘 생활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지 그 일상이 궁금하실 뿐, 아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고 알고 싶을 뿐, 늘 기다려주는 따스한 엄마들!


돈이 있다고 부유하다고 하여 자식 고민이 없으랴! 엄마들은 아이를 키워가며 함께 성장하는 생애 과업을 이행하고 있다.


숙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받아드는 것처럼, 아이도 배우고 익히고 성장해간다. 아롱이다롱이 하나같이 달라서 그 귀하디 귀한 특색을 다 꼽을 수는 없겠지만, 보건쌤과 학생으로 만나는 몇 분 동안에 아이들의 눈을 보면 그리 귀한 사람일 수가 없다.


교사는 수업과 수행과 성적으로 너희를 바라봐주고, 학생들은 그런 선생들을 잠시 바라봐주다가 대체로 그냥 엎드려 잔다.


"그래 고단하겠지... 몸이 아플 땐 그래도 보건쌤이 도와줄 게 있어서 다행이구나, 언제든 찾아오렴."


오늘도 보건실 약장 옆 책상에 앉아 아이들을 기다린다. 좋은 보건쌤이 되길, 즐거운 김작가가 될 수 있길, 따뜻한 김엄마가 되어보리라 마음먹는다.



---얘들아 또보자, 언제든와 아프지말구---

이전 05화장화백! 제발 그냥 '미술 전공' 계속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