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문을 50m쯤 앞두고 작은 사거리가 있다. 학교 건너편에는 **마트가 입점해있는 높은 주상복합 빌딩이 있고, 작은 사거리를 좌우로 교회와 빵집 카페가 즐비한 곳이다.
학교는 큰길에서 한 블록 안쪽에 위치해있고, 큰길에는 왕복 8차선 도로가 펼쳐져있다. 드넓은 도로지만 늘 막히는 곳이라, 아침 출근길엔 우리 학교가 있는 골목을 지름길로 이용하는 차들도 적지 않다. 등굣길의 학생들도 바쁘지만 출근길의 직장인들은 더 바쁜 듯...
교육열이 높기로 소문난 동네이지만, 우리 학교는 이 동네에서는 다소 저평가되어 있는 차분한 학교이기도 하다. 수능이 끝나고 학년 말이 되면 대입 결과를 자랑스레 걸어두는 학교들도 있지만 이곳은 다소 조용하고 차분하다.
우리 학교는 입시 면에서는 참 안타깝기도 하다. 인자한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이 각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무엇이든지 도와주려고 애쓰시고, 깐깐한 교감 선생님도 꼼꼼하게 체크 또 체크하시지만... 요상하리만큼 이 학교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그 어떤 아우라 같은 특색이 있다.
"저는 이미 시작부터 늦었어요.", "oo고 애들하고는 좀 다르긴 하죠~.", "스카이는 어렵구요, 중경외시 건동홍숙 국중세단 중에 어디든 들어만 가면 좋겠어요.", "그래도 우리 학교가 시험이 그닥 어렵지 않아 내신 따긴 좋죠. 노력만 좀 한다면요~"라며 애교심도 발산한다.
이 학교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은 아이들의 빛나는 외모! 보건쌤이자 아줌마인 나도 이 나이 되도록 외모를 좀 보긴 하지만, 우리 학교 아이들은 참 잘났다. 부모님이 누구실지 특히 어머님이 얼마나 미인이실지 예상이 될 정도로 말이다.
실제로 길거리 캐스팅을 받아본 적이 있다는 아이도 있고, 연극영화과를 지망하거나 뮤지컬 또는 모델 쪽으로 꿈을 키우는 멋진 학생들도 제법 있는 편이다.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멋남 근육맨들도 많다.
준성이는 학교 검진 때 경도비만이 나왔던 제법 퉁퉁한 아이다. 다치거나 아프지 않고 건강한 아이들 중에서도 보건실에 거의 매일 오는 재미난 그룹들이 있는데, 준성이는 그중 하나였다.
성격이 느믈느믈한 준성이는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난다. 시바 인형을 한 팔에 안고 오레오를 즐겨 먹으며 마스크는 늘 턱스크!
아이들 사이에서 보건실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바디 머신! 헬스장에 가서 pt를 받을 때 또는 다이어트 관련 진료를 보는 병원에서나 측정해볼 수 있는 인바디!! 그 기계가 학교 보건실에 있다. 요즘은 웬만한 보건실엔 한 대 씩 있는 것으로 안다. 쌤들도 자주 와서 측정하신다는;;
저 286만 원짜리 인바디 머신은 기부를 받은 것이었다고 들었다. 모든 물품과 약품은 학교 예산으로 구비하지만, 이 학교 동창회 운영진 중 한 분께서 의료기기 사업을 하시는데 모교에 좋은 기계 하나 기부하시겠노라 하여 들어온 기계라고 들었다. 뽀얗고 반짝거리고 멋지다!
고1 준성이는 178cm, 90kg.
목표 키는 182cm까지, 목표 몸무게는 75kg까지 늘이고 줄이겠다고 선언하고 다닌다. 그러면서 한 손엔 파워에이드와 오레오! 가끔은 만두!
귀여운 준성이는 그렇게 자주 오는 학생이다.
7:40 출근을 완료하여 보건실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컴퓨터를 켠다. 뛰어오는 아이들과 재잘재잘 수다 떠는 아이들이 창 밖으로 보였다.
늘 1등으로 등교하셔서 운동장 몇 바퀴 산책까지 하시는 우리 교장님은 오늘도 교문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고 계셨다. 교문에서 오르막길로 쭈욱 올라와서 건물로 들어오면 첫 번째 교실이 보건실이라, 내 자리 창 밖으로 전망이 참 좋다.
7:55 무렵. 뭔가 소란한 소리가 들려오고, 학생부장님으로부터(내선 231번) 전화가 왔다.
"네 보건실입니다."하고 받자마자 부장님께 듣게 된 내용은, 학생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났다고 빨리 와보라고 하셨다.
소싯쩍 100m 15초 5까지 찍고 체대를 꿈꾸기도 했던 나는, 빨간 구급가방 하나 들고 핸드폰 손에 쥔 채 전속력을 다해 뛰었다. 체육부장님께서 119에는 일단 전화를 하셨다고 하고, 담임 쌤은 학부모에게 전화하실 테니 일단 나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누가 다쳤을지 얼마나 다쳤을지 걱정이 되어 머리가 하얘졌다. 교문을 지나 작은 사거리에 다다르니 자전거는 길가에 치워져 있고, 부장님 부축을 받아 옷을 털며 일어서는 학생은 큰 키에 퉁퉁한 체구의 준성이었다.
큰 사고가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작은 눈으로 날 바라보며 괜찮다고 말하는 녀석을 보니 왈칵 눈물이 났다. 왼쪽 무릎 아래는 지난번 축구하며 슬라이딩하다 다쳐 소독해주고 딱지 앉은 그 부위인데, 그 위에 더 깊고 넓게 찰과상을 입었다. 한마디로 피부가 도로에 쓸려 싹 다 까져있었다. 팔꿈치에 피가 나고,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
학교 교문을 기준으로 하여 교내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보건실, 외부면 곧장 병원으로, 뭐 그딴 건 필요 없다. 우리 학교 학생이 다쳤고, 상대방 오토바이 운전자도 다쳤으며 이는 명백한 교통사고로 추후 조사도 받아야 할 것이다. 우선은 준성이가 병원에 가야 한다.
소독은 내가 진짜 잘해줄 수 있지만, 준성이는 엑스레이 검사를 받고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께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다행히 어머니가 금세 도착하셔서, 엄마 차를 타고 인근 종합 병원으로 이동했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망가진 자전거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이 큰 놈이 탈만한 자전거는 아닌 것 같았다. 작아 보였다. 휴우. 자전거는 많이 망가졌고, 덩치 큰 놈이 자기도 너무 놀라서 살짝 울먹였다. 다독다독 두드려주고 손도 잡아주며 괜찮을 거라 말해주고 병원엘 보냈다.
다행히 찰과상 외에는 골절 없이 퇴원했다. 통통한 체지방들이 쿠셔닝이 되었을까? 농구 축구를 잘하는 순발력으로 잘 넘어진 것이었을까? 하늘이 도왔다.
차량 통행도 많고, 인근 대형 마트에 들어가는 탑차도 있고, 오토바이도 많이 다니는 골목길이라 더 큰 사고가 났을 수도 있는터, 이만하길 천만다행이었다.
준성이는 그 후로도 보건실에 자주 온다. 오늘도 시바 인형을 안고, 오레오를 먹으며 친구들과 인바디를 재러 왔다. 그날은 오토바이를 피하려다 넘어졌고, 공중에서 10m쯤 날아서 세 바퀴 돌아 바닥에 착지했다며 굉장한 모험담을 늘어놓는다.
보건실에 파스 받으러 잠깐 들린 60대 한문쌤은 오토바이와 부딪혀 10m쯤 날아 공중에서 세바퀴 돌고 공중 부양하듯 무사히 착지했다는 준성이 얘기가 진짜인 줄 알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날 쳐다보신다."선생님~ 사고는 진짜였구요, 공중 부양은 msg가 좀 챡챡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