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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란 원래 그추룩 요망진 거였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by 바다와강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넷플릭스 시리즈다. 아이유와 박보검이 주연을 맡고, 임상춘이 극본, 김원석이 연출한 총 4막 16부작(2025.3.7-3.28) 드라마다. 이 작품은 개봉 즉시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 1위에 올랐고, 2025년 상반기 최고의 드라마라는 호평에 걸맞게 현재까지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제주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의 중심은 광례, 애순, 금명, 3대에 걸친 여성 서사다. 1960년대부터 2025년까지 가난해서, 여자라서, 섬이라서 겪어야 했던 세 여성 삶의 굴곡들을 해학과 유머로 풀어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특히 자신의 이름을 잊고 육아와 가사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삶을 재현한 것 같아 보는 내내 짠하고 아팠다.


또 하나의 중심 축은 애순과 관식의 러브스토리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조차 볼 수 없는 그들의 지고지순한, 가히 운명적이라고 부를 러브스토리가 우리를 웃기고 울린다. 심지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박장대소하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들 인생의 사계를 지켜보며 내 삶의 사계까지 반추하게 되는 신기한 드라마다.


《폭싹 속았수다》 16화 중 난 1막 봄 시리즈(1~3화)가 가장 좋았다. 봄은 항상 춥고 불안정하고 어수선하다. 뭔가 새로운 것이 시작될 거라는 기대에 들뜨지만, 얄밉게 불어닥치는 봄바람에 늘 옹송거릴 수밖에 없는 시절이 바로 봄이다. 요즘 날씨도 딱 그렇다. 변덕스러운 연인처럼 조석으로 날씨가 바뀌고, 바람불다 햇빛나다, 춥다 덥다 한다. 그래도 봄은 봄,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바람많은 섬, 제주의 봄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 봄을 배경으로 《폭싹 속았수다》의 1~3화에는 애순 모녀의 애틋한 정과 이별이 있고, 서로를 위해 서로를 떠나려 했던 애순과 관식의 러브스토리가 있어 마음 졸이게 했다. 특히 3화 〈예스터데이. "그들의 봄은..."〉의 스토리 구성과 대사는 가히 압도적으로 빛났다.


나는 정학인데요! 근데 왜, 왜 얘만... 왜 얘만 퇴학이래요? 왜 애순이만?
그걸 몰라서 물어? 둘이 똑같이 붙어 놀아도 사내 치기는 호걸 짓이고 지집애 순정은 화냥질이라는 걸. 어째 그걸 몰라서 남의 판을 엎었느냐고.


부산으로 도망갔다가 붙잡혀 온 애순과 관식은 결국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애순이 꿈꾸던 미래는 육지, 대학, 시인. 그러나 육지는커녕 학교는 퇴학당하고 당장 갈 곳도 없는데, 자신이 수영선수 관식의 앞길을 막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 때문에 결국 이별을 통보한다. 그 이별은 상대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고 상처내는 방식이어서 마음아프다.


오빠랑 살면 어차피 도 아니면 개잖아.
뭐?
바락바락 억척 떨고 살기 싫어.
나 싫다는 사람 집에 얹혀 살면서
눈칫밥 먹는 것도 지긋지긋해.

오빠가 나 좀 살려줘.
내가 너를 못살게 해?
오빠, 오빠가 없어야 내가 살아.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애순의 집에 찾아와 우는 관식. 나무 상자에 담긴 생선들을 마당에 하나씩 내려놓으며 애순의 할머니와 작은아버지한테 외친다. 평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전봇대처럼 서 있기만 하던 관식이기에 그의 절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깊고 무겁다.


나도 애순이 안 굶겨요.
맨날 고등어 한 마리 혼자 다 먹게 할 수 있어요. (중략)
나 줘요, 나!
애순이 조구도 내가 챙겼고
애순이 양배추도 내가 다 팔았고
이 세상에서 내가 애순이 제일 좋아하는데!


18살의 꽃다운 애순이 30살의 아저씨 부상길 재취로 간다니, 학씨!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관식은 콩 튀듯 팥 튀듯 뛰어다니다 드디어 애순을 만나 유채꽃밭 가운데에 선다. 관식은 준비한 반지를 애순에게 억지로 끼워 주며 결혼하자고 한다.


가지 마. 나랑 해.
반지 꼈어, 반지 끼면 땡이야.
이걸로 뭐? 뭐, 천년만년 먹고 살아?


어렸을 때부터 애순의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관식. 행여 애순이 조기새끼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할까봐 매일 생선을 나르던 관식. 광례가 죽었을 때 애순 곁에서 같이 울어주던 관식. 애순이 어촌계장하고 대통령도 다섯 번이나 해먹을 거라고 말할 때에도 그 곁에 앉아 자신의 꿈은 '영부인'이라고 말하며 웃던, 순애보 관식.


너는 인생의 팔 할이 애순이냐?
십 할...



누군가가 내 인생의 100%인 적이 있었던가. 그 누구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고 맹서한 적이 있었나. 그 누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기댔던 적이 있었던가. 지금 내 인생의 100%, 아니 80%, 아니 50%는 누구인가. 어떻게 관식이는 저렇게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내 인생의 십 할이 애순"이라고 말할 수 있나.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이 애순이라면, 관식은 바다에서 죽더라도 배에서 뛰어내릴 수밖에, 애순에게로 헤엄쳐 올 수밖에 없다. 마음이 온통 애순에게 있는데 어떻게 돌아설 것인가. 또 관식의 발목을 잡기 싫어, 그의 미래를 위해 그를 포기하려 했던 애순 인생 역시 100% 관식으로 가득 차 있었을 거다. 그러니 대학을 보내준다는 부상길을 외면하고 관식이 떠난 부두로 달려가 목놓아 울 수밖에. 그래서 그들은 청춘이고 연인이다. 그 장면이 바로 그들 인생의 가장 찬란한 봄이다.


봄인 걸 어쪄, 봄인 걸
그놈의 봄이 사람 잡는 걸

원래 제주의 봄은 유난히 빠르고
유난히 요망진 거였다

유독 호로록 빨랐던 인생의 봄날
열여덟 엄마는 엄마를 잃고 엄마가 됐고
열아홉 아빠는 금메달 대신 금명이 아부지가 됐다
그들의 봄은 꿈을 꾸는 계절이 아니라 꿈을 꺾는 계절이었다, 그렇게도 기꺼이.


각자 자신의 꿈보다 사랑을 선택하고, 그 속에 '기꺼이' 만족하는 것. 그건 서로가 서로의 꿈을 꺾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꿈이 된 운명의 봄이었다. 원래 운.명.은. 그.토.록. 요.망.진. 것.이니까. ♣



* 사진 출처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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