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의 〈아주 환한 날들〉
백수린은 2011년 경향신문에 〈거짓말 연습〉으로 등단한 작가다. 《여름의 빌라》(2020), 《눈부신 안부》(2023) 등으로 알려진 작가는 올해 초 작품집 《봄밤의 모든 것》을 출간했고, 그 책의 맨앞에 실린 작품이 바로 〈아주 환한 날들〉이다. 원 게재지는 《릿터》(2021.8/9).
백수린 소설들이 대개 그렇듯이, 〈아주 환한 날들〉 역시 특별한 것 하나 없는 한 인물의 잔잔한 일상을 담고 있다. '옥미'는 남편이 죽고 홀로 지켜오던 과일 가게를 6년 전에 접은 후, 자신의 일과를 아주 정교하게 계획하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일흔이 넘은 여인이다.
일흔이 넘은 여인들은 대체 뭘 하면서 사나, 궁금한가. 그녀는 월요일 오전엔 화장실, 화요일엔 베란다, 수요일엔 냉장고 청소를 했고, 월요일 오후엔 장을 보러 갔고, 화요일엔 상가 안에 위치한 실내 수영장에서 아쿠아로빅을 했다. 수요일 오후엔 평생교육원 수업 듣기가 그녀의 루틴이다. 그게 어느 강좌이든 상관없다. 항상 저녁 식사 후에는 1만 보씩 걸었고, 집에 돌아와 매일 밤 연속극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전형적인 극J의 루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평생교육원에 신설된 수필쓰기 수업의 강사가 한 말이다. 남들은 뭐든 척척 써내는데, 옥미만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옥미의 일상을 비추던 소설은 어느 순간 옥미의 마음 깊은 곳으로 이동해 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녀가 혼자 산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종종 안쓰러워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남편이 죽은 이후 그녀는 변기가 막히면 배관공을 부르고, 바퀴가 나오면 슬리퍼로 죽이고, 직접 구입한 실내용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형광등의 전구를 갈아 끼우며 살아왔다. 그녀는 뭐든지 스스로 해결하며 살았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다소간 자부심을 느꼈다. 혼자 집에 있으면 누군가를 뒤치다꺼리하거나 누군가로부터 귀찮은 잔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었고,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는 이유로 뜻하지 않은 비난을 받을 일도 없었다.
서른이 다 된 나이에 돌봐야할 동생이 주렁주렁 있는 남자와 결혼하고 이후 남편 밥 차려주고 아이 키우느라, 장사하느라 부대끼며 정신없이 살아온 옥미. 그래서인가 그녀는 마침내 찾아온 일상의 평화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자족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는 옥미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 건 어느날 사위가 들고 온 앵무새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 사왔지만 아이들이 무서워하니 한달만 맡아 달라는 것이다. 그동안 아이들이 앵무새와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앵무새는 시도때도 없이 시끄럽게 울어댔고, 먹이 그릇을 엎고 깃털을 뽑아놓았다. 귀찮고 짜증스런 존재.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앵무새가 깃털을 엉망으로 뽑아놓은 채 꼼짝도 않고 졸기만 했다. 놀란 옥미는 앵무새 진료가 가능한 동물병원을 검색해 40분이나 택시타고 달려간다. 의사 왈, 앵무새는 관심을 많이 필요로 하는 동물이라 하루에 몇 번씩 새장 밖에 꺼내 주고 놀아주어야 한단다.
안 그러면 외로워서 죽어요.
참 이상도 하지. 앵무새를 키우며 옥미는 자꾸 어린 딸의 얼굴이 떠오른다. 먹고 사느라 바빠 딸아이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던 과거가 함께 딸려온다. 하루만 가게 쉬고 운동회에 와달라는 딸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고, 딸이 키우던 병아리가 닭이 되자 닭똥냄새 때문에 빌라의 민원이 들어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치웠는데, 딸은 닭이 없어졌다며 목놓아 울며 "난, 엄마가 진짜 싫어"라고 말했던 기억들.
모든 일에 늘 선비처럼 뒤로 한 발 물러나 있던 남편 때문에 옥미 혼자 억척스럽게 악다구니를 쓰며 살 수밖에 없었던 날들.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배운 적 없고,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는 시절이었다. 그때부터였나. 딸과의 관게는 아직도 데면데면하다.
옥미는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에 딸에게 충분히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에, 딸아이는 사는 데 바빴던 엄마를 자신이 엄마가 되고 나서야 이해하기 시작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더 퉁명스럽게 대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녀는 그렇게 서로를 오해한 채 각자 아픈 상처를 지니고 살아간다. 하긴 가족 간의 오해나 갈등은 쉽게 풀지 못한다. 미안한 마음과는 달리 자꾸 어깃장한 단어들만 쏟아내기 일쑤기 때문이다.
새장에서 꺼내 놓은 앵무새는 20분에 한 번씩 똥을 싸고 돋보기며 리모컨을 부리로 쪼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앵무새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옥미는 일주일 만에 살이 3킬로그램이나 빠졌고, 초저녁만 되어도 잠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미는 자신의 손주처럼 알뜰살뜰 앵무새를 돌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아주 작고 연약한 것을 돌보고 있으니, 그 온기 때문인지 오래전 까마득히 잃어버린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다. 딸을 키우던 시절은 물론, 옥미 자신의 어린시절까지 줄줄이 올라온다. 인생의 뒤편, 오랜 시간 동안 묻혀 있던 옥미 인생에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던 순간들, 서운함과 안타까움과 미안함과 상처들. 그땐 그렇게 사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 와 돌아보니 그 시절도 충분히 환한 빛 속에 있는 것 같다. 앵무새를 돌보는 일은 결국 옥미 자신의 삶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일이 된다.
저녁마다 앵무새와 천변을 산책하며 옥미의 일상은 다시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그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자족적이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것이 사실상 얼마나 허무하고 고독한 일이었는지. '마음' 없이 그저 루틴대로 움직이는 허깨비, 사랑 없는 삶.
앵무새를 목련 송이처럼, 조금만 힘을 주면 망가지는 봄날의 목련 송이처럼, 두 손 가득 조심스럽게 들어 무릎 위에 올려놓자 새가 그녀의 웃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처음 나와본 세상이 무섭다고 멀리멀리 날아가는 대신, 그녀의 품속으로,
"아이고, 간지럽잖아."
너무 간지러워 웃음이 났다. 한번 터지자 웃음이 계속, 계속 나왔다.
옥미의 무미건조한 삶에 어느날 뛰어들어와 일상의 모든 것을 교란시키고, 마음까지 뒤흔들어 '극성스러운 손주'가 되었던 앵무새는 두 달만에 다시 사위가 데리고 갔다. 귀하고 사랑스러운 손주, 앵무새는 이제 옥미 곁을 떠났고, 옥미의 일상은 텅 비어 버렸다. 그녀는 더이상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새벽 3시 옥미는 노트를 꺼내 빈 페이지를 펼쳤다. 무언가 쓰고 싶었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강사는 수업 시간에 그렇게 말하곤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선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너무 무서운 일이지, 너무 무서워.
그녀는 식탁에 앉아 앵무새, 라고 써봤다. 앵무새가 갔다, 라고 쓰려다 가버렸다, 라고 썼다. 앵무새가 가버렸다,라는 문장을 보자 너무 고통스러워 그녀는 눈을 감아야 했다.
'앵무새'라는 명사는 주어가 되면서 특별해졌고, '갔다', '가버렸다'는 서술어를 동반하게 되면서 온전한 문장이 되었다. '~버리다'는 합성동사로 주로 어떤 행위가 끝났음을 강조할 때 쓴다. 앵무새는 떠나버렸고, 옥미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옥미는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글쓰는 행위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앵무새를 키우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들여다본 옥미. 자신에게도 한때 아름답던 시절이 있었고, 소소한 스토리가 있었고, 그것들이 결국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음을 확인한 옥미. 이게 바로 '사랑'일까. 사랑은 일흔이 넘은 자신에게는 더이상 찾아오지 않을 감정인 줄 알았다.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과거의 추억이든, 그 어떤 것이든 누구나 살아있는 한 또다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감정,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그 마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 아니겠나.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 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망각이 없다면 생은 참 고통스러울 것이다. 사랑과 실연이 우리 생애에 단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 것도 망각 때문이다. 고마운 일이다. 죽을 것만 같던 실연의 아픔도 새로운 사랑으로 잊혀진다. 상실과 이별의 슬픔은 수없이 다가오지만, 우린 바보처럼 또다시 사.랑.에. 빠.지.고. 만.다, 기.어.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