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아무렇지 않았나요
혹시 후회하고 있진 않나요
다른 만남을 준비하나요
사랑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봐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어요
〈헤어진 다음날〉은 1997년에 발표한, 이현우의 정규 4집 앨범 《Freewill of My Heart》의 타이틀곡이다. 이현우가 작사하고, 이현우와 김홍순이 함께 작곡했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바탕으로 블루스적인 느낌의 코러스를 입힌 이 노래는, 당시 KBS '가요 톱10'에서 5주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었다. 거의 30년 전에 발표된 노래인데도 지금도 여전히 이별한 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매력적인 노래다. 무심하고 절제된 이현우의 보컬과, 누구나 한번쯤 읊조려 봤을 법한 후렴구가 한번 들으면 잘 잊혀지지 않는다.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헤어진 다음날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잘 드러낸 노래가 또 있을까. 아직 이별이 실감나지는 않지만, 다시는 그(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 축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던 절망. 나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어 어쩔 줄 모르는데, 그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매일 똑같이 맞이하는 하루지만, 어제와 오늘은 마치 레테의 강을 건넌 것마냥, 생(生)과 사(死)처럼 멀고 낯선 느낌.
날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어제 아침에 이렇진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요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이별 후에도 우린 네가 날 사랑하긴 했는지가 궁금하다. 왜일까. 그동안 날 사랑했다면 실연의 상처가 덜해지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고 확인한다. 그건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헤어진 다음날, 그 슬픔 속에서도 여전히 네가 날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궁금하다면, 어쩌면 우린 태생적 관종인지도 모르겠다.
이별은 모든 것을 지우고, 버리고, 잊는 것이다.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은 이제 더이상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그런데 네가 날 잠시나마 사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면, 그랬다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려나.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가져갈 수는 없나요
사랑이 떠나면 뜨겁던 마음이 식어 서서히 굳어간다. 굳고 딱딱해진 마음은 딱지가 앉고 모가 난다. 자신도 모르게 날이 서버린 그 모난 돌은 스스로의 가슴을 찌르고 후벼판다. 모든 원인이 네 탓이었다가 내 탓이었다가, 이별을 인정했다가 부인했다가, 취했다가 깨는 과정을 반복한다. 어차피 떠날 거라면 사랑했던 마음도 가져갈 것을, 이미 내 것이 아닌 그 마음은 왜 내게 두고 가나. 내 마음은 물론, 네가 남긴 마음까지 내가 왜 다 싸안고 그 기억들을 되새기나.
오랜만에 이현우의 노래를 들으며 난 젊은 시절로 잠시 타임슬립했다. 한때 사랑하고 이별했던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억새처럼 허얘진 흰머리를 쓸어넘기며,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겠지. 그러고 보면 사람 때문에, 사랑 때문에 울고불고 뜨거워지는 것도 다 한때고, 이별조차 정녕 행복한 일이었다.
헤어진 다음날 취한 채, 노래방 한구석에 앉아
"날 사랑했나요오오~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오오~~"라고 악쓰던,
아주아주 오래전 나의 모습이 오늘따라 어여쁘게 떠오른다.
청.춘.이.었.네! ♣
https://youtu.be/DmXe-w56mAo?si=KTj5vpL7BRnmxy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