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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상처로 써내려간 생명의 존엄

by 최준기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굉장히 독특한 소설이다.

중간중간에 시도 나오고, 생태계에 대한 꽤 해박한 지식이 소개되며,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기도 하고, '카야'라는 소녀의 성장 과정도 주요한 이야기 축을 이룬다.

인터넷에선 이 책을 ‘대중소설의 모든 형식을 갖춘 책’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 말만으로 이 책을 설명하긴 부족하다고 느꼈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과 구성이 진짜 좋았고, 인종 문제, 종교, 전쟁, 가정폭력 같은 사회 문제까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카야는 술주정뱅이에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 습지 한가운데 있는 오두막에서 살고 있다.

엄마는 버티지 못하고 먼저 떠났고, 형제자매들도 하나둘 도망치듯 집을 나가버린다. 결국 다섯 살밖에 안 된 카야 혼자 남는다. 제대로 돌봐줄 사람도 없고, 학교는커녕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가르쳐줄 이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마시 걸'이라 부르며 따돌리고, 손가락질하고, 흉을 봤다.

그런 속에서 카야는 혼자 생존법을 익혀 나간다.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며 살아남았고, 결국에는 그 습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연구하는 과학자가 된다. 그녀는 책도 내고, 오랜 친구였던 테이트와 결혼도 하고, 자기가 태어난 습지에서 조용히 삶을 마무리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정관념’이나 ‘낙인’ 같은 것들이 사람의 생각을 얼마나 쉽게 왜곡시키고,

또 그 대상에게는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계속 생각하게 됐다.

체이스가 죽고 나서, 카야는 살인 용의자가 되어 감옥에 갇히고, 정식 재판까지 받게 된다.

그런데 카야가 유력한 용의자가 된 이유는 ‘증거’보다도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훨씬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어두운 밤, 50미터쯤 떨어진 습지 위에서 누군가 보트를 타고 지나가는 걸 봤다는 목격자는, 그게 분명히 카야였다고 단정한다. 카야는 그날 다른 마을에 출판 관련 미팅을 하러 가 있었다고 했지만, 버스기사는 "잠깐 돌아왔다가 다시 갔다"고 기억하고, 나중엔 그 기억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을 바꾼다. 그런데도 보안관 앞에서는 "틀림없이 카야였다"고 확신한다. 마을 사람들은 카야를 평생 미워하고 박해해왔고, 사실 존재 자체가 거슬렸던 거다.그래서 이 참에 없애버리자는 무의식이 작동한 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강한 믿음은 결국 자신의 감각마저 속이게 만들고, 자기 확신만 남긴다. 고정관념이라는 게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말. 사실 체이스를 죽인 건 카야였다는 게 그녀의 죽음 이후 밝혀지긴 한다. 너무 놀랐지만, 동시에 이해도 됐다. 체이스는 카야를 찾아와 폭행하고 성폭행하려 했고, 카야는 자연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그 상황을 끝냈다.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반딧불이’ 얘기가 떠올랐다.

암컷 반딧불이는 자기가 배가 고프면 다른 종의 수컷을 춤으로 유혹해서 잡아먹는다. 자연스럽게.

문명의 시선으로 보면 범죄지만, 자연에서는 그저 생존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 방식으로 체이스를 처리한 것도 너무나 ‘카야다웠다’고 느꼈다.




책을 덮고 나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이 책은 단순히 소녀의 성장담도, 법정 드라마도 아니다.

인간 본성과 사회의 시선, 편견과 생존에 대한 아주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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