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 세르반테스

당신은 어떤 풍차를 향해 달리고 있나요

by 최준기



나는 오랫동안 돈키호테를 그저 웃긴 옛날 이야기로만 여겼다. 기사? 풍차?

머릿속에는 오래된 동화 같은 이미지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딱히 없었다.



그래도 한 번은 제대로 읽어보자 싶었다.

그냥 웃긴 동화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의 눈으로 보니 꽤나 직한 질문을 담고 있다.


“내가 믿는 것들은 진짜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냥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 가고 있는 것 아닐까?"



돈키호테는 기사도 소설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를 기사라 믿고 길을 나선다.

그 길 위에서 그는 허상과 현실이 뒤엉킨 세상을 만난다.

세르반테스는 그의 모험을 통해 17세기 유럽 사회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비틀고 풍자한다.



21세기를 사는 내게 ‘기사도’란 낭만적인 옛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당시의 기사도는 단순한 직업이나 권위가 아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부동산이나 교육처럼

절대 다수가 신봉하던 지배적 매커니즘이었다.



영주는 기사에게 작위를 내리고 신분을 보장했다.

기사는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때로는 목숨까지 바쳤다.

왕, 귀족, 기사, 천민으로 이어지는 계급 사회 속에서 사랑과 명예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기사도 문화는 이런 가치가 얽혀 만들어진 낭만이자, 봉건제를 떠받치는 정신적 토대였다.



세르반테스는 그 관념에 대한 집착을 비웃었다.



기사도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우스꽝스럽다.

명예를 위해 결투하고, 평생 한 여인을 사랑하며, 주군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삶.



르네상스라는 이성의 싹이 피어오르던 시기에, 그는 기사도라는 껍데기 위에 날카로운 웃음을 던졌다.

지금에서야 우리는 그것을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만약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대다수 사람들과 반대로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세르반테스의 풍자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선 통찰이자 용기다.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건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허무하다. 누가 그러겠는가?

그러나 세르반테스 덕분에 우리는 중세의 낭만과 그 속의 허영심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출간된 지 4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풍차를 괴물이라 믿으며 말을 타고 돌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풍차는 누군가에겐 부동산, 누군가에겐 교육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명품욕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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