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 베르나르 베르베르

사후세계에 대한 강렬한 상상력

by 최준기

“죽음 이후, 우리는 과연 어떤 기준으로 평가받게 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

돌이켜보면 꽤 오래전부터 그의 책들을 읽어왔다. 기억나는 작품만 해도 『신』 시리즈, 『타나토노트』, 『나무』, 『파피용』 등…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한 작가의 책을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읽게 된다는 건 그만큼 그의 이야기가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전히 베스트셀러 작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부럽기도 하다. 결국 꾸준함이야말로 재능 못지않게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닐까.


『심판』은 좀 색다른 작품이었다. 내가 읽어온 그의 책 중 처음으로 희곡 형식이었다. 인물의 대화만으로 전개되는 구조. 배경도 설명도 없이, 대사 속에서 모든 걸 유추해야 하는 방식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몰입하게 됐다. 묘한 긴장감 속에서 휙휙 읽히는 속도감도 좋았다. 소설보다 빠르게 읽히면서도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반복적으로 떠오른 질문.

“만약 이 생이 끝이라면, 그것만으로 정말 괜찮을까?”

전생도, 내생도 없다면… 이 짧은 70~80년이 ‘나’라는 존재의 전부라면.

그렇다면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인생은 그저 실패로 남는 걸까?


베르베르는 그 질문에 대해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니,”라고.


『심판』 속 사후 세계에서는 우리가 지상에서 이룬 지위나 업적, 물질은 중요하지 않다. 그건 애초에 ‘신’이 부여한 것이니까. 평가의 기준은 단 하나, “당신은 그 재능을 어떻게 썼는가?”

높은 자리에 올랐든, 남들이 부러워하는 무언가를 가졌든, 그것은 진짜 ‘당신’의 능력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했느냐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단 하나의 과제.

그리고 그 과제를 수행한 이만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천사’가 될 수 있다.


그 기준은 어쩌면 위로가 된다.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할까”,

“나는 왜 이룬 게 없을까”라고 자책하며 살던 사람들에게

베르베르는 말한다.

“그건 아무 상관 없어. 중요한 건 ‘어떻게 살았느냐’야.”


비종교인인 나에게 이 이야기는 가톨릭적인 맥락에서는 다소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딘가 따뜻했다. 설령 이런 사후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삶을 바라보는 방식은 분명 달라질 수 있다.


요즘처럼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는 시대.

SNS 피드에서 남의 삶을 부러워하고, 나를 초라하게 느끼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일종의 해방구가 되어준다.

‘죽음 이후’라는 상상은 지금의 고통을 상대화시켜 준다.

삶의 기준을 바꿔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 실험’이다.


오늘도 자신이 제자리걸음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이 책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당신은 이미 당신의 길을 걷고 있어요.

그러니 초조해하지 말아요.

우리는 각자 다른 속도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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