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40

올림픽 블러바드 4

by 시애틀타쟌


충무공의 후예 아니랄까 봐 해군선배 지사장은

전별금 봉투하나를 내밀더라.

마음은 빨리 받으라 성화인데 두 손은 완강히 흔들며

사양했지만 사장은 내 주머니에 봉투를 쑤셔 넣었다.


집안에선 원수라도 밖에서 만나면 없던 정도 솟아난다는데

거친 파도와 싸웠던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해군이 아니던가 간이라도 빼줄

전우애를 그 누가 감히 흉내조차 낼 것인가?


우린 마치 명량해전에서 살아남은 수군처럼

얼싸안고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이삿짐이래야 카시미론솜이 듬성듬성 들어간 얇은 이불하나

그 이불은 여기 오기 전 그러니까 은퇴하기 전까지 30여 년을 부적처럼


가지고 다녔더랬다.

생활이 펴진 다음에도 가끔씩 옛날을 되새기며 펼쳐보았는데

아내는 궁상맞다고 버리라는 것을 눈을 부라리며 막았다.

처가에서 나올 때 케이마트에서 산 감색과


회색이 들어간 체크무늬 이불이었다.

그것은 난방도 안 되는 방 안에서 오들오들 떨 때

체온을 감싸주었고, 고단한 시간들이 솜처럼 뭉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옷가지 몇 개 그리고 검은 가죽가방이 전부였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나그네의 설움이 북받치는데

청명한 캘리포니아 하늘에서 난데없이 소낙비가 떨어지더라.

그렇게 비를 맞으며 이사를 하였다.

이사한 집 이층에는 나를 포함 세 명이 살았는데


이곳을 소개한 사람 즉 안수집사님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사람과

백수 비슷한 사람하나가 살고 있었다.

그로서리에서 일하는 사람은 우연은 겹치는지

해군 출신이었다 그것도 특수부대 UDT


눈은 뱁새눈 눈에 어울리게 작은코 그 코에 발란스를 맞춘 듯

얇은 입술 거기에 귀도 작은데 오호통재라 눈웃음이 압권이더라.

군복이라도 입혀놓으면 영락없는 인민군과 구별이 어렵겠더라.

다부진 체격에 걸음걸이도 로봇처럼 뻣뻣했다.


이름은 방태백

당시 미혼이었고 말수가 적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해군출신이란 말을 듣고 얼굴이 환해지면서

몇 기냐고 묻는다. 216기이며 진해 통제부 사령부 예하 원호대에서


근무했다고 하니 반가워 죽는단다.

그렇게 만난 인연이 삼십 년도 더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 사람은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행동도 굼뜨고 머리는 항상 헝클어져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삐져나온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대를 나왔고 당시 아버지가 펭귄표 통조림 사장이었단다.

이름은 이ㅇ규

나이는 UDT 선배와 동갑인 서른여덟이란다.


자기 어렸을 때는 가사도우미 하고

자가용 운전기사가 있었노라고 자랑이 늘어지더라.

속으론 그런데 왜 이런 데서 사니?라는 의문이 들더라.

그는 하루종일 먹고 자는 게 일이었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는 그가 신기할 정도였다

지금은 엘에이에서 한의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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