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타잔의 이민 이야기 41

크랜샤워 블루스 1

by 시애틀타쟌


얼마 지나서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보기에는 멀쩡한데 알고 보니 더 멀쩡한 사람이었다.

도저히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아닌 그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인 토끼띠였다.

당시에 명문이었던 전주고등학교를 다니 1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왔단다.


미국에서도 명문인 아이비리그라 불리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거길 아무나 가나 미국에서 태어난 놈들도

죽기 살기로 공부해도 가기 어려운 곳이다.


그것도 고등학교 일 학년에 이민 와서 거길 갔다니

믿기지가 안 더라.

요행으로 들어갔다 해도 졸업은 더 어려운 일인데

대단함에 한참을 우러러보았다.


당시에 그는 IRS 즉 국세청에 다니고 있었다.

그곳 또한 한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던 곳

거기에서도 기업들의 세금 탈루를 귀신처럼 집어내어

탁월한 능력에 상급자들의 미소가 떠나질 않았단다.


수더분하게 생긴 그는 웃음소리가 특이해서

그가 웃으면 따라 웃을 정도였다.

큰 형님은 공인회계사로 엘에이에 사무실이 있고

바로 위에 형은 아버지를 도와 필라델피아에서 그로서리를 운영한단다.


그런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궁금했는데

총각인 그는 큰 형님 집에 머물렀고 집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사돈아가씨가 유학을 와서 그 집에 기거하게 되어서

급하게 나와야 했고 임시로 있을 곳으로 이곳을 택했단다.


잠시 있을 예정이었던 그는 일 년 넘게 그곳에 있게 된다.

각자 처한 환경이 달랐는데 묘하게 마음들이 맞아

조악한 부엌에서 내가 만든 짬뽕을 맛있게 먹어줬고

저녁에는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며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도


박장대소하며 유쾌하게 지냈다.

가끔 캠핑도 가서 밤새 모닥불 피워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고

토요일 오후엔 예정에도 없던 라스베이거스로 달려가기도 했다.

쌩리로 불렸던 그는 우리에게 저녁을 푸짐하게 먹인 후 100불씩 나눠주고


각자 놀라고 한 다음 자기는 카드게임을 하였다.

얼마 후 준비한 만큼의 돈을 잃으면

냉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갑시다 하고 차에 올라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왔다.


그는 우리에겐 상담사였고 해결사였다.

영어가 부족한 우리는 서류가 오면 그에게 가져갔고

싫은 내색 전혀 없이 자세히 알려주었다.

지치고 고단하고 외로운 이민생활에 그는 사막에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이름은 이ㅇ일

지금은 패션디자이너 출신인 젤세가인 아내와 혼인하여

낮에도 사랑 밤에도 사랑 그 사랑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해 결실을 맺었는데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의술을 공부하는 아들과 어바인 대학에 다니는 딸이 있다.

엘에이에서 기업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그야말로 잘 나가는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삼십일 년의 이민을 마무리하면서 쌍둥이 놈들과

떠난 가족여행

맨 처음 갔던 행선지가 엘에이였다.


그곳에서 방ㅇ백 이ㅇ규 이ㅇ일 세 사람을 만나서

부둥켜안고 수채화 같았던 시간들을 회상했다.

아무것도 몰라 막막했던 이민초기 살얼음판 같았던,

거칠고 뾰족한 돌들이 발걸음을 괴롭히던 이민생활이었다.

푸른 잔디가 끝없이 펼쳐진 그곳은

마음껏 뛸 수 있었고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받았다.

넘어지면 손잡아 일으켜주고


서러우면 어깨동무하고 춤추었다.

껄껄 큭큭 웃던 봄 햇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곳이었다.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웃고 울던 곳

아련한 추억들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처럼 달려오는 그곳


갓 낳은 달걀을 손에 감싸 쥐면 따스한 온기가

은은하게 퍼지던 그곳은

꿈결 같았던 우리들의 블루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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