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렌샤워 블루스 3
엘에이 폭동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 같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쌓인 앙금들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한인들의 근면함은 어떤 인종도 따라 올 수없을 정도로
강렬하여 뭘 한번 하면 단시간에 이루려는 욕망이 가득했다.
얼마간의 돈이 모아지면 조그만 가게라도 열어서
남들이 따라 올 수없는 성실과 부지런으로 일으켜 세우곤 하였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느릿느릿한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은
한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한참이나 낮게 보였으리라.
그러다 보니 기준에 못 미치면 게으름으로 인식되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한인들이 볼 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한인들 가게며 식당엔 흑인 종업원이
거의 없다고 보면 지나치지 않으리.
그러나 흑인이나 히스패닉 사람들은 부지런함과는 거리가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세월아 세월아 어디 가니
하면서 느긋하다.
오죽하면 빨리빨리를 제일 먼저 아는 단어다.
한인들은 영어로 허리업 허리업 스페인어로 안 달래 안 달래를 외칠까?
한국사람들은 일전이라도 싼 주유소가 있으면 멀어도
그곳을 간다는 말이 있다.
오고 가는 비용이 페니 하나보다 더 많았지만
그래도 기를 쓰고 가는 이유는 그만큼 절약하는 습성이
몸에 배였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한국사람들은 지독하게 사업을 일구었고
그 애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가족이 경영하는 그로서리에 강도가 침입해
아들 하나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있었다.
경찰 조사가 마무리되자마자 아버지는
아들이 죽어가며 흘린 피를 닦아내며 문을 열었다.
장례일정도 잡지 못했는데 문을 여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람들은 그런다 참으로 비정한 아버지라고
하지만 하루속히 문을 열어야 기존 손님들을 잃지 않으며
하루 매상이 감당해야 하는 지출을 슬픔이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쟁터 같은 삶을 살아내는 게 타국생활이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산도 다르고 물도 다른 그곳은
화려하고 낭만이 넘친 티브이 속 장면과는 사뭇 달랐다.
그날이 오기 전 티브이에선 음주 운전하던 흑인 로드니 킹이
경찰의 제지에 불응하여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하였고
그것을 한 주민이 비디오카메라로 찍어 방송국에 제보하였다.
이에 구타에 가담했던 경찰들이 재판에 넘겨졌고
이후 무죄평결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마침 편의점을 운영하던 한인 두순자에 의해 살해된
여고생 나타샤 할린스 사건이 폭동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어
흑인들은 분노의 타깃으로 한인들에게 옮겨 붙고 있었다.
백인들의 갈라 치기로 인해 소수계인 흑인들이
같은 소수계의 한인들에게 화풀이를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흑인들의 소란스러움이 여느 때 와 달랐다.
고무줄 같은 팽팽한 긴장이 거리 곳곳에 감지되자
양 사장은 배달을 멈추고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돌아오는 도중에 흑인들은 도로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도착하여 TV를 켜보니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차를 타고 가는 백인들을 끌어내어
무차별 폭행하였다.
그야말로 도시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