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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작은 공간 II

학창 시절을 회상하면서

by 점식이

[학창 시절을 회상하면서]


너는 오늘 인력양성을 목적으로 고등학교를 방문하였다. 연구원의 생활과 리튬이차전지를 소개하고자 고등학교로 갔다. 학교는 바다가 잘 보이는 학교였다. 연구원 교육 담당 부서의 부탁으로 가게 되었다. 연구원의 경영자에 따라 업무의 가치가 달라진다. 그래서 요즈음은 교육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출연연 업무 중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승낙하였다.


처음 가는 목적지가 되어서 T-map이 가르쳐 주는 방향으로 목적지를 설정하여 이동하였다. 톨게이트가 너무 많다. 목적지까지 4번의 톨게이트를 지난다. 출장 증빙을 위하여 하이패스로 지나지 않고 현금 납부하는 곳으로 지나갔다. 바다를 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기분을 달랬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담당 교사에게 전화하여 강의를 시작하였다. 전교생 중 관심이 있는 학생만 강의실에 들어왔다고 하였다. 약 50명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방문하니 옛날 생각이 난다. 당시의 고등학교는 한 학급에 약 60명의 학생 구성이었다. 한 학년당 10 학급으로 해서 약 600명, 전교생은 약 1800명이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학생 1800명 학생이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학교건물 중앙에 닭장 같은 창문(약간 돌출되어 있고, 보통의 창문 사이즈 보다 작은 사각 창문)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 교실이 학교 중앙에 위치하여 닭장 같은 창문을 통하여 외부를 볼 수 있었다. 1800명의 학생들 속에서 여자 교사분은 한 명도 없었다. 그 당시, 여자 교사는 거의 없었다. 지금은 여자 교사가 약 80-90%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학교 내에 여자분은 식당에 아주머니 몇 분, 학교 행정을 담당하시는 몇 분 정도, 전체 합해도 약 5분 정도였다. 지금 기억으로는 학교 정문에 여자분이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모두 닭장으로 모였다. 수업을 하고 있는 중에도 여의치 않았다. 물론 선생님은 야단을 치곤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다. 이러한 해프닝을 가끔은 하곤 하였다. 학교 운동장이 1800명이 모두 운동장에 모이기 힘들 정도의 크기 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교련수업과 체육 수업이 동시에 있으면 운동장 관계로 체육 수업을 학교 밖으로 달리기를 하러 가곤 하였다. 체육 선생님은 자전거를 이용해서 우리를 지도하였다. 학교 근처에 여학교가 여러 개가 있었다. 빨리 달려가서 학생들은 여학교 정문에서 멈추어 기웃거리곤 하였다. 선생님 도착하면 그때 다시 달리고, 다음 여학교 앞에서 멈추어 서곤 하였다. 여러 가지의 추억, 3교시가 끝나면 도시락을 비운 추억, 맛난 반찬을 허가도 없이 비운 추억, 가까운 친구들과 포장마차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추억, 학력고사를 마치곤 오징어, 군밤 등을 판매한 추억 등을 회상하였다.


오래 만에 고등학교를 방문하니 학창 시절이 회상되고, 얼굴에 미소를...... 강의를 마치고, 몇 개의 질문을 받고는 수업을 마쳤다. 학생들이 만족했을 것으로 자책하고는 T-map의 지시를 따랐다.


-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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