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동네 한 바퀴
오늘은 벌초를 마치고 막걸리를 아버님에게 잔을 치고, 남은 막걸리를 집으로 가져와서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어릴 적에 다니던 동네길을 따라 걸었다. 50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사골 동네에 동네 중앙을 따라 원형으로 길이 있다. 리어카가 다닐 수 있는 폭의 길이다. 물론 차도 조심조심 다닐 수 있는 길의 폭이다. 그 길을 밤늦게 걸었다. 가로등이 비추고 있다. 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다. 빈집이 많다. 동네 어르신은 초저녁부터 주무시거나 TV를 보고 계신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청력에 문제가 있어서 TV 동영상 화면만 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집의 윗집은 빈집이다. 모두 고향을 떠나고, 가까이 계신 분들은 농사철이 되면 와 있는 것을 보았다. 오늘은 빈집인 것 같다. 우리 집의 뒷집은 외숙모가 사시는 집이다. 외숙모는 90세가 넘었다. 그래도 아직은 건강한 것 같아 보인다. 노인이라 건강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아직은 건강하신 듯하다. 외숙모는 인정이 많으신 분이다. 우리를 보면은 가진 것을 아끼지 않고 내어 놓으신다. 식사를 할 때는 고봉밥(밥 그룻을 넘치도록 볼록하게 그릇을 채운다.)을 주신다. 밥을 먹고 왔다고 하였도 막무가내다. 남길 수가 없다. 오늘도 외숙모 방에는 불이 켜져 있다. 항상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빌어 본다.
동네의 반원호를 걸다보면 같은 나이 또래의 친구의 집이다. 친구의 아버님은 어릴 때 우리의 머리를 깎아 주셨다. 중학교 시절에는 머리를 짧게 깎고 등교하였다. 그래서 아버님에게 머리를 부탁하였다. 얼마 전에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이제는 아주머니만 계신다고 친구가 얘기하였다. 아주머니 방에서 불빛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반대편 집에는 동네에 유일한 가계가 있다. 가계에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과자를 파는 가계였다.
이제는 골목의 3/4 지역으로 발길을 옮기면, 또 친구의 집이다. 친구의 집은 그 당시 상대적으로 과수원을 운영할 정도로 부자였다. 고향 마을에서 유일하게 TV가 있었다. 1974년 육영수 여사의 별세를 친구 집에서 지켜보았던 기억이 있다. 저녁을 먹고 빨리 가면, 친구의 집 마당에 설치한 의자에 앉아서 TV를 볼 수 있었고, 늦게 가면 서서보던지, 자리를 마련하여 앉아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아주머니만 사시고 계신다. 간혹 농번기 시절에 친구가 와서 집안일을 한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 집 앞집에 도착하였다. 앞집에는 큰 외숙모 댁이다. 우리보다 빨리 TV를 구입하였다. 사랑방에 TV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75년 첫 방송 한 "전우"라는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을 시청한 기억이 있다. 군인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보던가, 전설의 고향을 보고 나면 혼자 집으로 가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앞집에도 큰 외숙모 혼자 사신다. 명절에 고향에 오면 형님, 누님들을 뵙는다.
어릴 적 기억을 돌아보면서 고향 동네 한 바퀴를 관광하였다. 낮이나 저녁이나 너무도 조용한 동네, 이제는 젊은 사람 찾기 힘들고 약 90세 이상 노인들만 사시는 시골의 풍경이 되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고향 50가구 공동체 어르신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