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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숲 둘레길을 걷자

목표가 실천 의지를 만든다

by 비엔나 보물찾기

비엔나의 삶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황사와 미세먼지 '나쁨'이라 뜨는 날, 아침 출근길에 맞은편에서 '질서 없어 예측이 안 되는' 사람들과 왼쪽으로 가야 할지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망설여지는 순간엔 비엔나가 생각난다. 알프스 산맥이 동쪽으로 달려 끝나는 곳이라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어 소위 마스크 프리(mask-free)라 할 정도로 공기가 깨끗하고, 인구 밀도가 낮아 서로 부딪칠 일이 거의 없어 조금이라도 서로 스칠라치면 미안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비엔나.


비엔나에 있는 동안 비엔나 숲 하이킹을 즐겼다. 처음엔 회사 등산 동호회를 따라 초급 하이킹을 가면서 하이킹을 시작한 이후로 혼자서 비엔나 숲을 다녔다. 여름엔 해가 길어 일과 마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가거나, 어디 여행을 가지 않는 주말을 주로 할애했다.


처음엔 그냥 숲이 좋고, 숲 속에 나있는 그늘진 오솔길이 좋고, 가끔 지나가는 다람쥐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미달팽이가 좋고, 나무 숲에서 느낄 수 있는 피톤치드의 청량함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목표가 생겼다. 비엔나 시에서 조정한 숲길 Wiener Stadt Wander Weg, 이름하여 비엔나시 산책길이다. 총 13개 코스가 있는데, 그중 3개를 완주하면 은색 배지를, 7개 이상 완주하면 금색 배지를 준다. 지정된 곳에 가서 스탬프를 찍으면 되는데, 내가 가던 시간엔 스탬프를 찍을 수가 없어서 핸드폰에 인증샷을 찍었다.


여담이지만, 라틴어에서 갈라진 언어들이라 한 언어를 잘하면 다른 언어 배우기가 참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어로 산책하다, 소요하다란 의미의 wander는 영어와 같다. 영어로도 wander는 거닐다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냥 숲길이 마냥 좋아서 비엔나 숲길을 걸었으면 평상시 나의 성향으로 볼 때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숲길을 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 계획할 필요가 없는 것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계획해야 하는 것들은 한 페이지에 전략, 방향, 해야 할 일, 스케줄을 정리하면서 한다.


그런데 7개 이상, 아니 13개의 모든 비엔나 숲길을 완주하겠다는 목표를 떠올리는 순간, 어떤 일정으로 어떤 순서로 하이킹을 갈지 전체 그림을 머릿속에 그린 다음 하나하나 도장 깨기 하듯 완주해 나갔다. 그렇게 얻은 비엔나 숲길 완주 배지는 집 장식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이 배지를 받은 이후 주변 지인들에게 널리 소개했다. 생각보다 비엔나에 오래 거주한 분들도 비엔나 숲은 많이들 가지만 정작 이 배지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적었다. 그 중 지인 K가족에게 저녁 식사자리에서 소개했더니 그 집 아들 둘이 배지를 받아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주말에 피곤해 쉬고픈 엄마, 아빠를 붙들고 귀국 전에 배지를 받아야 한다며 손을 끌고 나서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 역시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없이 목표가 실천의지를 만드는 구나'하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된 기억이 있다.


서울에서도 서울 둘레길 완주 인증서가 있다는 얘기를 귀국 전에 들었다. 비엔나 숲길에서 그러했듯 서울 둘레길도 또한 156.1킬로를 완주해서 인증서를 받아야지 하는 목표가 생겼다. 토요일에 가야 하면 금요일 저녁 술 약속을 가급적 줄이고, 일요일에 가야 하면 토요일에 새벽 3시, 4시까지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던 습관을 잠시 접고 일찍 잔다. '늦은 새(late bird)' 형인 나는 아침잠이 많아 일찍 일어나는 것을 정말 못하는데도, 6시 언저리에 울리는 핸드폰 알림에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목표가 나의 실천 의지를 깨우고, 내 삶을 바꾸는 순간이다.


총 8개 구간, 각 구간당 2~3개의 세부 구간으로 되어 있는 서울 둘레길. 어린아이 마냥 증명서에 스탬프 찍으면서 신나 하는 나를 보면 웃기기도 하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중간중간 기록으로 남길 핸드폰 사진을 찍으면서 오늘도 한 코스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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