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156.5킬로를 5개월 만에 완주하다
비엔나를 떠올리면 오래되고 멋들어진 건물들이 제일 먼저겠지만, 나에게는 비엔나 숲길(Wiener Wanderweg)이 비엔나를 기억하는 조각들 중 하나이다. 고즈넉한 오솔길을 걷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들에 침잠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엔나에는 총 13개의 비엔나숲길 코스가 있다. 1개 코스당 약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
그 길 중 3개를 완주하면 은배지, 7개 이상을 완주하면 금배지를 주는데, 7개 이상 하면 사실 금배지, 은배지 모두 다 준다.
스탬프에 도장을 찍으면서 완성한다는 것은 걷는 것이 좋아서 걷는 것보다 더 강한(?) 의지를 불태우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13개 코스를 완주했다.
그런 기억이 좋아서 서울에 돌아와서 서울둘레길을 찾았다. 귀국 한지 어언 1년이 다 돼서 시작하기는 했지만, 올해 4월에 첫걸음을 떼고 나서 5개월 만에 8개 코스, 28개 스탬프를 다 끝냈다. 비엔나 숲길이 주는 느낌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토요일 새벽 둘레길을 호젓하게 걷는 느낌은 아침잠이 많아 늘 토요일이면 10시 넘게까지 단잠을 즐기던 나를 양재역 새벽 첫 전철을 타고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을 주었다.
그렇게 8개 코스, 156.6킬로를 마쳤다. 사실 길을 잘못 들어 헤맨 거리까지 포함하면 족히 170킬로는 넘으리라.
비엔나는 배지를 준다면 서울은 완주 인증서를 준다. 무언가 성취감을 느끼게 만드는 오브제 아닌가 싶다.
서울에서는 완주 인증서 외에도 파란 리본, 가방에 달고 다닐 수 있는 동그란 배지를 함께 준다.
그리고 전체 서울 둘레길이 표시된 배너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도록 유도(?)한다. 포스도 이미 정해져 있다. 인증서 들고 찍는 샷, 손가락으로 156.6킬로 숫자를 가리키며 찍는 샷. 다들 그렇게 인증샷을 찍는다 하니 거부할 방법도 없다. 이미 내 핸드폰은 그 직원분 손아귀에 있으니 말이다.
무언가 동기나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은 그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모멘텀을 주는 것 같다. 그냥 서울둘레길을 가는 것과 매번 코스별로 빨간 우체통에 든 스탬프를 하나씩 찍게 만드는 것은 분명 마음가짐을 다르게 만든다. 빈 스탬프 종이를 하나하나 채워가는 맛. 코스마다 특징적인 인물이나 배경으로 만든 스탬프를 찍는 재미. 나름 쏠쏠하다.
8개 코스, 총 28개의 세부 코스로 나눠진 서울 둘레길은 다채롭다. 안양천이나 탄천 옆을 걷기도 하고, 야트막한 언덕을 걷기도 하며, 북한산이나 도봉산 코스는 등산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난이도 있는 둘레길을 걷게 되기도 한다.
등산 자체를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내내 한 방향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업 다운이 있는 능선이나 오솔길을 걷는 것이 좋았다. 단조롭지 않으면서 나름 변화가 있어 재미있는 길.
서울에 30년 정도 살았으면서도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들을 가는 느낌도 나름 의미 있다.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팁
시작은 양재시민의 숲이나 도봉구 창포원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두 곳에만 스탬프 찍는 종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앱이나 QR코드로도 인증이 가능하기에 어떤 곳에서 시작해도 되기는 한다. 그러나 아날로그 감성으로 스탬프를 찍고 싶다면 두 곳에서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28개 세부 코스는 코스당 약 2시간 내외로 소요된다. 자신의 체력 상황에 맞춰 걷되, 한 번에 두 개 코스 정도면 적당할 듯하다.
그리고 오렌지색 리본, 동그란 스티커형 안내표시 등을 따라 걸으면 되는데, 간혹 표시가 제대로 안된 구간도 있으니 유의하면서 걸으면 좋다.
나중에 다 끝나고 안 사실인데,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맵에서 '서울 둘레길 4코스' 이렇게 치면 그 길이 나오니 지도를 따라가도 된다. 비엔나 숲길은 비엔나시에서 운영하는 앱에서 지도와 코스를 제공하는데, 내 위치가 나오기 때문에 트레일에서 벗어났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래서 직원분께 여쭤봤더니 유료앱도 있으나 당신은 네이버나 카카오 맵을 이용 하신다 했다.
마지막 정보. 서울 둘레길 걷기와 건강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부터 첫걸음을 떼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시작이 반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