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공항에 지인을 배웅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비엔나 시내의 높다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 차량 통행이 많아 교통 체증이 생기면서 편도 2차선 도로에 차들이 길에 늘어섰다.
"그래. 뭐. 서울도 아니고 막혀봐야 얼마나 막히겠어?" 하는 너그럽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브레이크에 발을 올렸다.
그런데 무언가 앞에 선 차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1차선에 있던 차들이 왼쪽 차선을 차 중간에 걸칠 정도로 왼쪽으로 바짝 붙는가 싶더니, 이내 오른쪽 2차선 차들도 오른쪽 차선을 물고 달릴 정도로 오른쪽으로 바짝 붙는 것이 아닌가.
마치 모세의 기적으로 홍해가 갈라져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랬더니 금세 차선이 사실상 세 개가 되더니 가운데에는 큰 트럭이 지나가도 될 정도의 차선이 하나 만들어졌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라 '로마에 가면 로마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라'는 말처럼 1차선을 달리고 있던 나도 얼떨결에 차를 왼쪽으로 바짝 붙여 운전했다.
순간 감각적으로 앞 쪽에 무슨 사고가 났고, 그 사고를 처리하기 위한 구급차나 경찰차가 뒤에서 오겠거니 했다. 그러나 한참을 그렇게 달려도 모든 차들은 그대로 열을 지어 운전할 뿐 그 사이로 무언가가 지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서야 겨우 차량 한 대가 뒤쪽에서 비상등을 켜고 지나갔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실제 앞 쪽에서 교통사고가 나지도 않았었다.
나중에 비엔나 지인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더니, 그 지인의 말.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히면 혹시 긴급차량이 있을지 모르니 모두들 자연스럽게 차를 양쪽으로 붙이고 가운데로 지나갈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기를 낳으러 병원에 긴급하게 가야 하는 차일 수도 있고, 그 외에 개인적이든 공적으로든 긴급한 차량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운전자들이 그런 차량이 빠르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
30분여를 그렇게 운전했지만, 빨리 가겠다고 앞다투어 그 사이를 비집고 가는 차량은 없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다 같이 한 마음으로 길을 만들어 주는 문화 자체가 없기도 하겠지만, 길을 만들어 준다 해도 너도나도 서로 먼저 가려고 그 사이로 차를 들이대지 않았을까?
홍해처럼 갈라지는 차량 행렬. 모두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누구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인 것인지 일사불란하게 가운데를 터주는 신기한 경험.
그것이 오스트리아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 등극하게 하고, 모든 사회제도적인 면에서 선진국, 선진 시민으로 자리매김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한다.
자기의 시간, 자기의 이유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시간, 남들의 이유에 대한 배려, 그 배려를 위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선진 시민의식.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비엔나의 그 여유가 부러운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