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콜로라도

by allicalicoco

35번째 주 콜로라도입니다. 36시간 동안 기차여행 끝에 내린 곳 덴버. 유니언 스테이션에 발을 디딘 순간은 다른 여행보다 훨씬 감동스러웠어요. 활기차게 뿜어내고 있는 분수광장, 고풍스러운 건축물 사이로 클래식 카를 즐기고 있는 아저씨, 그리고 친절하게 내 짐을 받아주신 역무원 아저씨의 인사에 덴버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어요.


기차역에서 멀지 않았던 호텔에 도착하자마 내가 첫 번째로 한 일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는 것이었어요. 기차에도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기는 했지만 저는 스스로 목표를 정했었거든요. 36시간 동안 씻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으며, 한 발짝도 기차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혼자만의 챌린지! 그리고 마침내 그 도전에 대해 마침표를 찍는 순간 승리의 만세를 외치며 개운하게 씻었어요.


그리고 이번여행의 테마, 아빠를 응원하기 위한 아빠 편들기는 생각보다 빨리 시작됐어요. 첫날 아침부터 엄마가 아빠에게 굉장히 화가 나 있었거든요. (이유는 이제 오래되서 생각나지 않아요). 아빠는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 브런치 식당으로 우리를 꾸역꾸역 이끌었어요. 기분이 풀릴 듯 말 듯 했던 엄마는 음식이 나온 뒤 더 삐쭉거리기 시작했어요. 웬만한 음식은 모두 맛있게 먹는 엄마이지만.. 이날만큼은 차갑게 나온 빵 때문에 또다시 화가 나셨어요. 식당직원에게 이곳의 빵은 원래 차가운 것이냐며 한국의 중부지방 출신답게 화가 난 것을 참으며 표시나지 않게 빙빙 둘러 빵에 대한 불평을 하셨어요. 하지만 그 답변으로 미국 중부지방식의 베네닉트 빵은 원래 차갑게 나온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엄마의 기분은 주체할 수 없이 더욱 땅으로 꺼지기 시작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빠의 지원군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든 그 브런치 식당의 음식이 맛있다고 표현했어요. 분위기가 풀릴까 싶어 엄마가 남긴 베네딕트의 소스까지 모두 먹었지요. 사실 제 입맛에는 좋기도 했고요. 하지만 식당에서 우리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어요.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요?


음식으로 엄마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첫 번째 노력은 실패했지만 곧바로 뒤이어 아빠는 우리를 덴버 아트 뮤지엄으로 이끌었어요. 엄마는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니까 기분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사실 엄마는 미술관에 가면 기념품샵에서 작은 소품들을 사면서 굉장히 행복해해요. 저는 잘 안 사주면서, 아빠가 늘 엄마의 소비를 응원하는 곳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관람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념품 샵으로 가서 엄마의 쇼핑시간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몇 바퀴를 돌아도 도무지 살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엄마와 미술관 관람까지도 어색한 분위기로 해야했어요. 저는 그래서 이번에도 아빠를 응원하기 위해 미술작품들을 더욱 관심 있고 재미있게 감상하려고 노력했지요. 그리고 실제로 정말 재미있는 미술관이었어요. 감상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입구에 있던 청소하는 조형물을 보고 엄마는 드디어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모든 것을 치워버리고 싶다고 아빠와 저를(저는 덤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우리 반 여자아이들이 화났을 때처럼 쏘아보더니 다행히 웃음으로 마무리했어요.

드디어 덴버의 평화가 왔어요. 기차에서 내릴 때처럼 우리 가족의 기분은 리셋됐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문제였어요. 해발 1600미터인 MileHighCity, 덴버에서 저는 고산병에 시달리기 시작했어요.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지끈 거리는 두통으로 걷다가 멈추기를 여러 번이 이었어요. 이번에는 엄마가 그런 저를 응원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콜로라도 여행의 출발점인 덴버 유니언스테이션으로 급한 대로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쉬었어요. 기차역 대합실 내부가 멋진 인테리어와 함께 휴식하기에 좋게 꾸며져 있어서 오랜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쉬는 동안 그곳에서도 엄마는 기념품샵 구경을 하셨고 미술관에서 찾지 못한 ‘필요 없지만 갖고 싶은 물건’을 발견하고 기분이 완전하게 좋아진 듯보였어요. 가게에서 만난 마음이 딱 맞는 할머니와 이것저것 한참 서로 추천하면서 웃더니 컵받침을 하나 선택하셨어요. 아빠와 저도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 골라봤어요. 그리고 계산하면서 기념품가게 아저씨가 덴버까지의 기차여행은 탁월한 선택이라는 기분좋아지는 칭찬도 해주셨어요. 덴버를 지나면 계속 똑같은 풍경인 옥수수밭이 펼쳐지기 때문에 너무 지루했을 것이라고요.


그 이후로 이곳저곳 좀 더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마지막까지 말끔히 사라지지 않은 두통 때문에 덴버는 다시 올 수 없는 곳으로 정하게 됐어요. 하지만 우리 가족이 서로를 위해 가장 많이 배려하고 노력한 곳으로 절대 잊지 못할 곳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먹을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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