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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미네소타

by 정윤호

드디어 마지막 여행지로 향했어요. 목적지는 노스 다코타의 파고였고 호텔은 미네소타주의 무어헤드로 두 개의 주를 왔다 갔다 하며 여행하기로 했어요.


사실 미네소타는 공항만 들른 주로 이야기가 마무리될 뻔 한 곳이에요. 미네소타주의 미네아폴리스공항은 세계에서 제일 큰 항공사 델타항공의 허브 공항으로 우리 여행의 다리 같은 역할을 해주는 곳이에요. 그래서 매번 여행할 때마다 자주 들렀지만 공항 밖을 나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집에서 몇 시간 날아오지 않았는데도 눈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영화 ‘인사이드 아웃’ 주인공의 고향이기도 해요. 그래서 미네소타 공항에서 우리는 늘 라일리의 이야기를 해요. 하키를 좋아하던 라일리는 눈이 없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와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나처럼 말이에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우리 아들은 이역만리 땅 한국에서 왔으니 더 힘든 일을 해낸 거라고 늘 격려로 마무리해주세요. 미네소타공항을 들르면서 활주로를 볼 때면 라일리의 고향 연못에 가서 스케이트를 타 보고 싶어요.


비록 이번 여행에서는 꽁꽁 얼은 빙판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숙소에 도착해 보니 굉장히 클래식한 중부의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건물이 적당히 촌스러웠고 가는 길에 봤던 상점들도 옛날 드라마에 나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어요.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으니 출출함이 몰려와 캔자스 시티의 한국마트에서 챙겨 온 비상식량들을 먹기로 했어요. 컵볶이와 컵밥.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불닭라면이에요. 호텔로비의 매점에 있는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 음식을 하기로 했는데 운전으로 피곤한 아빠는 쉬겠다고 선언했어요. 저는 엄마와 함께 한참 떨어진 로비까지 걸어가서 음식을 완성해 방으로 돌아와 먹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빠의 떡볶이가 덜 익었지 뭐예요……그래서 밥을 제일 빨리 먹은 제가 혼자 매점으로 다시 가서 떡볶이를 익혀 오기로 했어요. 덜 익은 떡볶이를 마침내 완벽하게 조리해서 뿌듯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뒤따라오던 형들이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우게 됐어요.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게 된 형들은 이게 무슨 냄새냐며,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난리 법석이었어요. 그리고 연이어 학교의 이야기들도 끊임없이 했지요. 대부분 서로에게 여자친구를 조금만 만나라고 핀잔을 주거나 학교에 있는 예쁜 이성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 사이에 찡겨서 요뽀끼를 들고 있자니 이 뻘쭘한 기분을 어찌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아빠를 위해 고개를 숙인 채 형들의 이야기를 귀로 들으며 요뽀끼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있어야 했지요. 이번 중부여행에서 아빠의 운전시간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떡볶이었지만 형들이 너무 궁금해 한 나머지 우리 방으로 먹으러 오라고 마음속으로 초대하고 서둘러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어요.


그런데 이 초대를 어떻게 알고 받아들였던 것인지, 그 뒤로 그때 만난 형들은 계속 우리 여행에 들어오는 인연을 갖게 됐어요. 호텔 방에서 테라스로 나가면 형들의 하키장비들이 즐비해 있는 모습을 보게 됐고, 로비에 나가면 모두 모여 전략회의를 하고 있었지요. 주차장에서는 형들의 버스를 마주하게 됐고, 우리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찾아가게 된 식당에서는 우리 테이블을 중심으로 빙 둘러싸는 형태로 운동부 형들과 저녁을 함께 먹게 됐어요.


엄마와 아빠는 볼수록 형들이 귀엽고 멋지다며 좋아했어요. 밀워키에서 온 하키팀 형들은 파고에 며칠 동안 머물면서 경기 중이었어요. 엄마는 팀원들과 함께 시합 준비하는 것이 성실해 보이고, 저녁식사에는 정장차림으로 참석해서 식사하는 모습이 예의 바르고 기본을 지킬 줄 아는 모습이라고 기특해하셨어요. 비록 내 뒤에서 욕이 난무하는 대화로 저녁시간을 꽉 채우기는 했지만 그 모습이 저도 아주 나빠 보이지는 않았어요. 형들의 욕으로 꽉 찬 대화, 쉼 없이 하는 휴대폰게임, 음식으로 때리는 장난, 그래서 부모님께 가끔 호출을 당해 잔소리 듣는 모습까지 나와 친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니까요.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운동부 형들이어서 모두 키가 크고, 몸도 좋고, 중부라 그런지 대부분 백인으로 동양인 선수는 없었어요. 친구들과 투어를 하는 모습이 부러웠지만 그 속에 내가 있었다면 즐거웠을까요? 그랬다면 나도 멋지게 보였을까요? 가끔 내 머리카락이 더티블론드였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보긴 하지만……그렇다고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내 머리카락이 곱슬인 것이 불만이지 다른 것은 괜찮거든요. 우리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는 금발 투성이인 운동부에 내가 있었다면 내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 신경이 쓰이기도 하는 저녁시간이었어요.


그 식당 안에서 우리 테이블이 유일한 동양사람이었거든요. 이런 상황이 이제는 낯설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전히 신경이 쓰이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가끔 일어날 뿐이지요. 우리 담당 서버 누나는 음식도 굉장히 늦게 주고, 우리의 테이블은 신경도 안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운동부 형들과 수다 떠느라 진짜 바쁜 것도 사실이었고요.


아빠는 이곳에서 유명한 음식에 대하여 식당에 오는 내내 약 50번은 넘게 이야기한 것 같아요. 그 메뉴는 월아이(Walleye) 생선요리였고, 엄마는 아빠의 설레발에 넘어가서 그 음식을 주문했어요. 그런데 주문과정에서 아빠와 서버누나의 실수로 애피타이저와 메인요리 두 가지 모두 월아이 요리를 주문하게 됐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말 맛이 별로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처럼 휙 지나가면서 묻는 미국식 서빙 멘트 “Is everything alright?”이라는 질문에 엄마랑 아빠는 기계적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All good”이라고 대답했어요. 사실 엄마는 민물고기 요리를 처음 먹어보면서 이제야 스스로가 민물생선을 못 먹는 사람이라고 알게 됐는데…….. 그 음식을 실수로 두 개나 시키게 만들어 버렸다고 말을 못 하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불평이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어요. 평소 같으면 음식값이 아깝다고 어떻게든 먹는 엄마인데 이번에는 메인요리를 고스란히 남겼어요. 그리고 그 뒤로 계속 외면당한 서비스 때문에 적은 팁과, 포장 용기도 요청하지 않은 채 모든 음식을 버려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어렵게 찾은 식당의 음식이 아쉽게도 엄마께는 여행 중 최악의 음식으로 선정된 메뉴가 됐지만 동네 식당분위기를 느끼면서 호텔형들의 운동부 생활을 재밌게 엿본 것으로 퉁치자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 테이블 대신 운동부 테이블에 집중한 누나도 이해해 줄 수 있대요. 엄마는 운동부를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유일하게 저 혼자 치킨요리를 시켰던 것이에요. 아직까지도 그 부드럽고 탱글한 치킨맛이 기억날 만큼 저에게는 훌륭한 저녁이었어요. 그곳은 월아이 맛집이기보다는 치킨 맛집이었어요.

절반의 성공을 한 저녁식사의 대안으로 맛있는 디저트를 찾아 나서기로 했는데 뾰족한 수는 없었어요. 모두 일찍 문을 닫아서 다음날까지 기다려야 했거든요. 결국 우리는 아침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어요. 조금 남다르게 보였던 DQ매장을 검색해 보니 역사가 있는 매장이었어요. 최초 버전의 사인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매장으로 가장 오래된 데어리 퀸 점포였어요. 우리가 여행한 미네소타는 아직 한파가 밀려오기 전 날씨였지만 조금만 지나도 영하 10도는 기본인 이곳에서 추운 날씨와 동시에 아이스크림 판매가 곧 종료되고 따뜻해지는 3월이 되어야 아이스크림을 다시 개시한다고 해요. 그날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매장 앞으로 길게 줄을 서서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것이 이곳의 봄맞이 행사 같은 것이에요. 봄이 되어 처음으로 꽃망울이 터지는 날과 같은……. 축제! 우리가 이곳에서 봄을 맞이할 수는 없었지만 지난 알래스카여행에 이어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는 날씨에 감사하며 아침식사를 하러 향했어요. 엄마는 몽키테일, 아빠와 저는 클래식한 딜리 바를 아침으로 먹었어요. 이름만 보고 주문한 엄마는 기대를 했지만 진짜 바나나가 나왔고, 아빠의 체리맛 딜리바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팝컬러였어요. 역시 이번에도 제가 가장 맛있는 메뉴를 주문했어요. 오리지널 초콜릿맛 딜리바!


평소에 동네에서 즐겨 먹던 칠리도그 메뉴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훌륭한 아침식사였어요. 추위를 피해 차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창밖을 보니 옆에 차에도 7명의 대가족이 딜리바를 하나씩 들고 먹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어요. 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차 안의 모습에, 나도 겨울을 맞이하는 미네소타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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