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다코타로 올라가면서 들른 휴게소에서 재미있는 티셔츠를 발견했어요. 관광객이 소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가 공격하는 소에 들이 받힐까 놀라 도망가는 그림이 있는 티셔츠예요. 생각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구매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기억에 남아요.
사우스 다코타에서 노스 다코타로 이어지는 풍경은 소와 밭이 전부였거든요. 이 모습이 바로 노스다코타의 상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도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밖에 내렸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파리와 벌의 공격을 받아서 낭만적으로 풍경을 즐기기는 어려웠어요. 그림에서처럼 소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소들과 함께 도착한 파고에서 우리는 노스다코타 주립대학교 구경을 하기로 했어요. 겨울이 되면 날씨가 굉장히 추워지고, 워낙 스포츠에 열광하는 지역이라 그런지 거대한 실내경기장이 많이 보였어요. 물론 야외 필드도 많이 있었고요. 여기저기서 운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운동장이 경기나 훈련으로 이용되지 않는다면 밴드부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어요. 소문대로 스포츠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지역이라는 것이 실감 나는 모습이에요.
그리고 한편에 끝없이 펼쳐진 비닐하우스를 보자, 엄마가 반가워하며 이곳은 농업대학교의 연구실이라고 알려주셨어요. 대학을 중심으로 파고를 한 바퀴 둘러본 소감은 농업과 스포츠, 마칭 밴드가 전부인 도시 같았어요.
캠퍼스 투어를 마치며 엄마와 아빠는 저에게 질문을 했어요.
“노스다코타 주립 대학교에 진학해 보는 것이 어때?”
대학생활을 즐기기 좋아 보인다고 저에게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하셨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 학교를 다니면 게임 때마다 응원한다고 시끄럽게 파티를 즐기고, 때로는 시골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공부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나 악기, 또는 벌레의 공격을 이겨내고 농업기술을 연구하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아요. 더군다나 채소와 관련된 농업기술 연구라면 더욱 어려울 것 같고요.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테지만… 확실한 것은 개성이 뚜렷해 보이는 곳이었어요. 이런 것이 싫다면 저는 결국 수학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게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다는 결론이었어요.
호텔에서 다시 만난 하키부 형들을 봐도 저랑 아주 잘 어울리는 곳은 아닌 것 같아요.
마음속으로 수학과 작문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결심까지는 했지만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진지한 고민은 뒤로하고 때마침 파머스마켓이 열리는 날이라고 해서 아침 일찍 찾아갔어요. 이 지역의 특산품이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그리고 맛있는 푸드트럭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도 동시에 했어요. 다운타운에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파머스 마켓으로 향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봤어요. 카페에도 사람들이 모두 가득 차 있었고, 점포마다 분주했어요. 우리는 맛있어 보이는 쿠키를 하나씩 먹고, 푸드 트럭을 기웃거려 봤지만 적당한 음식을 찾지 못하고 돌아서서 나왔어요. 지금은 여행 중이니까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살 수 도 없고, 그때는 바로 여행 막바지로 쌀국수가 필요한 시점이었거든요. 시내 끝에 자리한 쌀국숫집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운 좋게 초밥집과 연결된 식당에서 저는 참치롤을 먹을 수 있었어요. 엄마와 아빠는 작은 사이즈의 국수를 주문해서 난감하게 키즈밀 수준의 국수를 받아야 했지만, 국물만큼은 정말 맛 좋은 곳이었어요.
이번 중부여행은 이렇게 마무리했어요. 여행 전 주변에서 들었던 걱정은 생각보다 작은 문제였어요. 관광할 곳이 많이 없는 지역. 논과 밭만 펼쳐지는 지역.
하지만 그곳에서 봤던 풍경들과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 가족에게 오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여행하는 내내 위치와 지명이 계속 헷갈렸던 지역으로, 시작 전 모두가 지루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이번 여행은 우리의 50개 주 투어에서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여운을 주는 지역이었거든요. 평범한 만큼 개성 없이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뚜렷한 정체성으로 자리잡고 있는 곳…... 기운만큼은 다른 어떤 주 보다 강하고 뿌리 깊어 보였어요.
마지막으로 공항에 렌터카를 반납하고 비행기를 타러 갔어요. 파고는 노스 다코타에서 가장 큰 도시였지만 공항은 그동안 다녀본 공항 중에서 가장 작은 곳이에요. 렌터카는 키를 차 안에 두고 주차장에 세워두면 반납이 완료되는 구조였어요. 오래된 모습과 방식이 아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 어떤 주 보다 소박하게 느껴진 노스 타코타. 하지만 나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의 모습과 위치에 확신을 줬던 특별한 힘이 있는 주로 기억에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