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기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으름장을 단단히 놓고 시작한다. 기울기는 X 증가량에 대한 Y 증가량의 비율이다. 기울기가 중요한 이유는 변화량을 상수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봤자 알아듣는 아이는 거의 없다. 변화하는 것을 고정시킨다는 개념이 아직 없다. 청소년은 형이하학적 사고에서 형이상학적 사고가 가능해지는 나이지만 형이상학은 쉽게 가능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간과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인위적인 노력의 중심에 수학이 있다.
그래프에서 기울기 찾는 법을 설명한다.
1. 좌표가 모두 정수로 떨어지는 두 점을 찾아 점을 진하게 찍는다.
2. 한 점에 연필을 찍고 그대로 오른쪽으로(이때 X는 무조건 증가하니까 그래서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고 삼천 번쯤 이야기한다. 그래도 왼쪽, 위쪽, 아래쪽으로 가는 아이들은 무조건 있다.) 가다가 다른 한 점의 X 좌표에서 멈추고
3. 다른 한 점을 향해서 올라간다. 또는 내려간다.
4. 이때 올라가면 기울기는 양수, 내려가면 음수이다.
몇 번을 해도 몇 달을 해도 수십 번을 반복해도 이걸 못 알아듣고 까먹고 잊어먹는 녀석이 있다. 이 아이의 뇌는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제습기를 3대쯤 틀어놓은 실험실에 알코올을 쏟았을 때처럼 엇 쏟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기 중으로 날아가는 알코올처럼 내 입과 그 아이의 뇌와 공기 사이에서 너무도 빠르게 기울기가 슉슉 날아다니다가 사라진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기울기에 대한 외침이 너무나 허무해서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인다. 아이는 내게 미안한 듯 멋쩍게 웃는다. 쌤 이해가 안돼용.
아이도 죄가 없고 나도 죄가 없는데 아이도 미안하고 나도 미안하다. 누구한테? 무엇을 위해? 그저 뉴런의 연결이 느리고 연약할 뿐인데 이건 그냥 그런 건데 미안하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닌데. 목적도 의미도 없는 미안함이 쌓이고 쌓여서 표현이 되어버리지 않기 위해 몸을 흔들어 털어내야 한다. 적당히 털어내지 않으면 너무 날카로워져서 누군가 베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아프니까.
다시 설명한다.
점을 일단 두 개 찍으라고. 정수말이야 정수. 딱딱 떨어지는 정수. 정수. 아니 아니 걔는 중간에 걸쳐있잖아. 이런 거 이런 거. 자 이제 오른쪽을 가.. 아니 아니 오른쪽 오른쪽. 증가한다고. 그쪽은 감소지.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라고. 이제 올라가야 돼 내려가야 돼. 올라!!!.. 가야지...
내일도 똑같은 설명을 다시 하면서 미안함을 주고받고 죄책감을 주고받고 그것을 숨긴 웃는 표정을 주고받을 것이다. 아니면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 좇같은 공부에 변화를 주기 위해 다른 선생님을 찾아갈 수 있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오늘의 설명을 해야 한다.
오늘의 설명을 해야 한다.
현재에 발을 딛고 서서 오늘 해야 할 일을 한다. 어제를 질질 끌고 오지 않고 내일을 당겨 오지 않고 오늘을 살기 위해 의식적으로 입으로 말해야 한다 오늘의 공부를 하자고.
이런 오늘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기울기를 이해하게 된 아이가 갑자기 내 앞에 앉아 웃고 있을 테니. 결국엔 이해하지 못한 아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니다. 눈앞에 있는 오늘의 아이만 보는 거다.
아이들 성적이 기울기가 양수인 직선의 그래프가 되기를 너도 바라고 나도 바라고 돈내주는 보호자도 간절하게 바라지만 쉽지가 않다.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그러니까. 계속 점을 찍어가는 수밖에. 어떤 그래프가 될지는 아직 모르니까 오늘의 점을 열심히 찍어가는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