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노래를 들었다. 6개월 동안 매일매일. 하지만 그 노래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반복해서 들었는데도 지금은 한 소절도 부를 수 없고 음을 떠올릴 수 없다. 그 노래들이 내 마음을 전혀 파고들 수 없었던 것은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이 무더기로 출근하고 퇴근하는 커다란 회사였음에도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나면 그다음 말은 수고하셨습니다였다. 두 시간 일하고 십분 쉬고 두 시간 일하고 밥 먹고 두 시간 일하고 십분 쉬고 두 시간 일하고 집에 갔다. 잔업을 해야 하는 날에는 빵과 우유를 줬다. 수다를 떨며 빵과 우유를 먹는 작업자들 사이에서 우두커니 우걱우걱 빵을 씹어 돌렸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도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깜깜한 저녁에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려고 걸어가는 길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같은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울려고 생각한 건 아닌데 그냥 너무 싫어서 울었다. 원망이나 신세한탄 같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깜깜한 저녁에 집을 나간다는 것이 너무 싫어서 울었다. 새벽 한 시에 점심을 먹는 것이 너무 이상했고 술 먹고 노는 것도 아닌데 파란 새벽을 보며 집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싫어서 울었다. 매일매일 울면서 회사에 갔다. 서태지의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들으며 매일 울고 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서태지는 나를 위로하지도 안아주지도 않았고 그저 귀에서 기괴한 전자음을 내며 공기를 흔들었다.
무단결근을 하고 난 다음날 출근했는데 몸이 몹시 아팠다. 그날 아침에 커다란 방에 죽은 팬더가 줄지어 앉아있는 꿈을 꾸었다. 팬더를 옮기려고 했지만 아무리 해도 움직여지지 않아서 절망적이었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중인 사람처럼 절망적이었다. 팬더도 움직이지 않고 작업하는 내 손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조주임이 내게 다가와 무단결근에 대한 책임을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열이 심하게 나서 듣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두 시간 뒤에 다시 조주임이 내게 다가와 힐끗 보더니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귀가 광광 울렸다. 눈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조작하는 기계 위에 내 눈에서 나온 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거 3000만 원짜리 기계라고 들었는데 소금물이 들어가도 괜찮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주임이 내 팔을 잡고 우악스럽게 일으키며 조퇴하라고 소리 질렀다. 귀가 웅웅 울렸다. 손목의 어스밴드를 풀고 탈의실로 비틀비틀 걸어가는 동안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금자언니의 퇴사회식이었다. 금자언니는 회사에서 10년을 일한 베테랑이었는데 라인의 어떤 작업도 다 할 수 있었고 기사들을 화려하게 부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업자 중의 한 명이었다. 금자언니는 곧은 직선의 머리카락을 늘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내일 금자언니의 퇴사를 축하하는 회식이 열린다고 작업자들이 수군거렸다. 그들에게 엿들은 바로는 10년 동안 꼬박 모은 월급과 퇴직금을 합하면 1억은 모았을 거라고 했다. 우와 1억 우와.
회식이 있는 날 아침 금자언니의 머리는 미용실에 갔다 온 파마머리였고 목에는 아주 굵은 금목걸이가 귀에는 아주 커다란 금귀걸이가 손가락에는 아주 굵은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금자언니는 하짓날 정오의 태양 같았다. 태양 같은 금자언니가 내게 소주를 따라주며 니도 1억 모을 수 있다고 으하하하 웃었다. 갑자기 내게 1억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 되어버렸다. 20대 십 년의 세월로 모은 1억과 저 번쩍이는 금은보화가 초라했다.
난 저렇게 살 수 없어. 고작 저런 것을 결론으로 만드는 삶을 살 순 없어.
하지만 당분간은 그렇게 살아야 했다. 단 1초도 금자언니처럼 살기 싫었기 때문에 나의 1분 1초가 싫어서 울 수밖에 없었다. 귀에서는 서태지가 윙윙거렸고 내 볼에는 물이 지속적으로 계속 흘러 협곡이 만들어졌다.
마침내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잔디밭이 펼쳐진 캠퍼스로 돌아온 나는 손목에 그 거지 같은 노예족쇄 어스밴드를 채우지 않아도 되어서 기뻤고 손가락에 골무를 2중으로 끼지 않아도 되어서 즐거웠고 헤어캡을 씌워버리겠다는 조주임의 협박을 듣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어스밴드와 골무는 나의 삶이 아니었다. 내 삶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때 들은 음악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들은 음악이 아니니까. 서태지를 그토록 좋아했고 그의 컴백을 굉장히 반겼음에도 그것을 듣는 것이 내가 아니었으므로 그냥 사라진 공기의 진동이었던 것이다.
서태지를 들으며 매일 울던 새하얀 얼굴을 한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 이후 나는 나로 살지 못하는 순간을 한순간도 만들지 않았다. 그런 낌새가 보이면 얼른 나 자신을 붙들어 손을 꼭 잡았다. 있는 힘을 다해 놓치지 않았다. 내 볼의 협곡은 이제 흔적도 없다. 햇빛을 보지 못한 스물한 살의 새하얀 공순이는 서태지의 울트라맨과 함께 흔적도 없고 수학을 팔면서 삶을 단단히 살아가는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