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의 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감자탕집의 키즈존을 구경하러 갔다 온 5세 소년이 엄마에게 뛰어와 뽑기를 요구했다. 소년의 요구는 팔딱이는 에너지가 가득했고 집요했고 지친 엄마의 체력을 푹푹 쑤셨다. 지친 엄마를 대신해 내가 나섰다.
안돼 이 새끼야. 앉아서 밥 먹어.
소년은 내 말을 못 들은 체 하고 다시 요구했다.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뽑기 할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을 안아 올렸다. 소년은 물에서 막 건져 올린 잉어처럼 파닥거리며 벗어나려고 용을 썼다. 침착하게 잉어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재빨리 소년의 발목을 양손으로 잡아 거꾸로 들어 올렸다. 드넓은 감자탕 집은 가족단위손님으로 꽉 차있었고 새끼들 입에 밥 떠먹여 주느라 바쁜 이집저집의 애미애비들이 거꾸로 잡혀나가는 소년과 나를 보고 다들 흐뭇하게 웃었다. 니도 말 안 들으면 저리 된다. 잉어소년은 갑자기 뒤집힌 세상에 놀라서 파닥 거림은 멈췄고 안전하게 아무도 없는 건물의 사각지대로 이동했다.
소년의 가느다란 팔을 꼭 잡고 말했다.
너는 뽑기를 할 수 없다.
이이 이 이익이 이이 이익이 이익(소년이 내 팔을 빠져나가기 위해 버둥거리는 소리)
너는 뽑기를 할 수 없다.
이 이 이 이익이 이이이이이 이이익
너는 뽑기를 할 수 없다.
이 이익이 이 이 이 이 이 이 이익이익
서른 번쯤 반복하니 잉어의 힘도 어느새 빠져버렸다.
한동안 소년과 나는 가만히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단계.
너는 뽑기를 할 수 없다. 따라 해.
나는 뽑기를... 크게! 나는 뽑기를 할 수 없다!
다시! 나는 뽑기를 할 수 없다!
소리가 작다! 다시! 나는 뽑기를 할 수 없다!
다시! 나는 뽑기를 할 수 없다!
한번 더! 나는 뽑기를 할 수 없다!
다시! 나는 뽑기를 할 수 없다!
다음 단계.
너는 뽑기를 할 수 없고 얌전히 앉아 밥을 먹는다. 따라 해.
나는 뽑기를 할 수 없고 얌전히 앉아 밥을 먹는다.
다시. 나는 뽑기를 할 수 없고 얌전히 앉아 밥을 먹는다.
다시. 나는 뽑기를 할 수 없고 얌전히 앉아 밥을 먹는다.
다시. 나는 뽑기를 할 수 없고 얌전히 앉아 밥을 먹는다.
다시. 나는 뽑기를 할 수 없고 얌전히 앉아 밥을 먹는다.
너는 뭘 해야 한다고?
뽑기를 할 수 없고 얌전히 앉아 밥을 먹는다.
그렇게 할 거야?
네.
서늘한 복도에서 약 30분간의 사투를 끝내고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년의 발목이 아닌 손을 잡고 손님이 우글우글하는 감자탕 가게로 다시 들어갔다.
앉아. 네.
먹어. 네.
소년은 엄마가 감자탕에 말아준 공깃밥을 우걱우걱 먹었다.
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뽑기는? 할 수 없다.
가서 놀아. 네.
소년은 번개처럼 튀어올라 놀이터로 뛰어갔다.
몇 년 뒤
소년이 내 집에 놀러 왔다. 사촌누나들이랑 놀 거라며 밤이 깊었는데도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나는 소년의 손을 잡고 잠자리로 갔다.
누워. 네.
눈감아. 네.
잠들어버려라. 네.
소년은 깊이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네.
먹어. 네.
소년은 이모가 차려준 아침을 꾸역꾸역 맛있게 먹었다.
단순반복은 무척 힘이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