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없어 다른 게 터지는 걸

9개월만에 다시 병원

by 파로암

입에서 귤 두 개가 나왔다. 오랜만에 몸을 쥐어짜며 토했더니 저녁에 먹은 귤만 나왔다. 꾸웨엑 소리에 잠이 깬 서방이 내 등을 두드리려고 하는 걸 막았다. 토할 때 등을 두드려봤자 아무 소용없다. 아무 소용없는 짓은 하지를 말아야 한다.


아무 소용없다.


대동맥이 터진 후 다시 터지는 일이 없도록 혈압과 혈당과 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삼시 세 끼를 정확한 시간에 먹고 식사의 질을 높이고 술담배커피인스턴트를 입에 대지 않고 가벼운 운동을 매일 하고 정기적으로 대학병원에서 건강을 검진하고 상담받아도 아무 소용없다. 다른 게 터지는 걸.


나는 다시 병원침대에 누웠다.


생명연장을 위한 나의 노력은 와장창 부서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간신히 다갈다갈 긁어모아놓은 희망이 파스스 날아간다. 터질 수 있는 다양한 장기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주렁주렁 달린 링거들을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나는 어이없어하고 있다.


9개월 만에 돌아온 병원은 익숙했지만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확실히 달랐다. 대동맥 때는 나를 유리구슬처럼 대했는데 이번엔 쇠구슬같이 대한다.


비엔나소세지 같더라.


수술이 끝나고 떼어낸 맹장의 사진을 의사가 보여줬다고 한다. 제법 통통했다며. 통통했던 오른쪽 아랫배의 통증은 제거되었지만 구멍 난 뱃가죽과 제자리를 잃은 내장이 아팠다. 배를 쨌는데 당연히 아프지. 당연함을 감수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다. 시발.


대동맥이 터졌을 땐 매 순간 죽음이 넘나들었지만 정작 나는 먹을 거 다 먹고 강력한 진통제와 무통 덕분에 통증도 없었다. 내가 죽는 것을 모두가 힘껏 막아주었고 나는 침대에 누워 초코쿠키를 바삭바삭 먹으며 나의 안녕을 기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댓글을 읽었다.


수술이 끝나고 72시간을 굶고 복부통증을 견디며 링거대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병원복도를 걸었다. 도넛모양 무통이 그리웠지만 달아주지 않았다. 나는 더 힘들고 아프고 괴로운데 여러모로 대우는 대동맥 때처럼 극진하지 않다. 쳇.


공부방 고객님들에게 수술소식을 알리고 휴강했다.


가지가지하는 내 몸이 원망스럽네요.

회복후에 뵙겠습니다

선생님 아무걱정마시고 건강만 생각하세요


터진 맹장이 내 것이었기에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 내가 터뜨린 것도 아닌데! 아니 내가 터뜨린 거지. 내 뱃속에 있으니까. 사고 친 자식의 깽값을 물어주는 느낌이다.


9개월 만에 또 내장을 터뜨려 수업을 중단하는 공부방에 대한 신뢰는 추락하여 박살이 날 것이다. 내 의지가 아니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이번 일로 인해 공부방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문을 닫은 동네의 여러 학원을 떠올려본다. 그중에 반복되는 내장 터짐으로 문 닫는 곳은 없었는데...








금요일 연재
이전 29화감자탕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