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자유
템즈강변을 따라 즐비하게 우거져 있었던 플라타너스 나무.
런던의 도로변을 가득 매운 2층 버스들의 키높이만큼 서 있는 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무가 생각난다.
어른 손바닥보다 큰 잎은 가을이 되면 내가 살던 3층 집 앞마당에 겹겹이 쌓여 떨어졌고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마당에 나와 하늘을 바라보면 집보다 큰 나무들이 나를 지켜주는 듯 느껴졌었다.
집주인 아저씨는 나와는 다른 감정을 느끼셨던 듯싶다. 내가 학교를 간 사이 오셔서 마당에 떨어진 플라타너스 나뭇잎들을 몽땅 치우고 큰 자루에 담기를 수없이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집주인이 봄이면 예쁜 은방울꽃 같은 초롱초롱한 꽃을 심어 놓고 요정같이 사라지셨고. 친구와 삼겹살을 구워 먹겠다고 대리석으로 된 마당 테이블을 깨 먹었을 때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시고는 원목 테이블을 들고 오시기도 했다. 그뿐인가? 겨울에는 눈까지 치우고 조용히 사라지셨었다.
한 여름 짙푸른 초록의 플라타너스 나무는 그늘을 제공하고 젊은 런더너들은 시원한 사이더나 맥주 또는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물론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 낮에 말이다.
템즈강변을 끼고 있는 셰익스피어 글로브 담벼락에 걸터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엊그제 같은 유학시절.
짙은 녹색의 템즈강과 옅은 회색 벽돌담을 따라 삼삼오오 모여 어떤 주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눴던 걸까?
런던의 그늘은 유난히도 시원했던 기억과 함께 강변의 풍경은 자유 그 자체였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걸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는데 나의 뜨겁던 강변의 여름날은 희극이었던 기억이다.
바쁜 도시인들과 여유로운 관광객들의 오묘한 조화 속에서 나는 런더너도 아닌 관광객도 아닌 그저 장기간 머물고 있는 낯선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혼자서도 가끔 찾아가 낮은 담벼락에 기대어 커피 한 모금 마시는 은신처가 되었다.
비가 오는 날도 끝내주게 운치 있는 장소였고, 외국영화에서 봤던 수은등을 사람이 직접 켜는 듯한 가로등은 밤이 되면 더 멋진 풍경을 만들어 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장소였던 템즈강.
여름이 되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줬던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내 자리가 그립다.
운치 있는 가로등과 벤치 그리고 낮은 담벼락 아래 나의 휴식처
고독한 유학생활 속에서 머리를 식히고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들었던 그곳이 무척이나 그립다.
그래서 나는 혼자 가는 은신처를 또 만들었다.
오롯이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그곳.
혼자 울고 웃고 기도하고 사색의 시간을 갖는 그곳.
조만간 그곳으로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