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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스탄트 Jul 20. 2024

멸망한대도 사랑하겠어!

4화

해성은 영양제 한 움큼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이어서 샤워하기 전에 갈아놓은 셰이크를 마셨다. 


“아, 배불러.” 


서재로 뛰어가 챙겨놓은 백팩을 메고 노트북 가방을 들고 손목시계에 명령했다. 


“루루, 차 시동 걸고 연구소로 목적지 잡아줘.”


해성은 자율 주행 차로 이동하며 오전에 있을 회의 자료를 검토했다. 


<한국 뇌과학 연구소>


뇌과학 연구소 사무실에 도착하니 좀 이른 시간이었다. 


“커피 한 잔 해야겠다. 루루, 콜드블루 스페셜티로 투샷 준비해 줘.” 


사무실 한편에 오픈바 형태로 마련된 카페에 해성의 주문이 자동으로 접수되어 콜드블루가 서서히 머그잔에 내려오고 있다. 시간 맞춰 카페로 향한 해성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손우주의 뒷모습이 아닌가. 발소리를 들은 그가 턴을 하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콜드블루 스페셜티 투샷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제 커피인가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해성이었다.


“네, 구박사님 커피입니다. 좋은 아침이네요.” 우주는 머그잔을 들어 그녀에게 공손하게 전달했다.


“아.. 네, 좋은 아침이에요. 어제는 제가 손우주 박사님에 대해서 기억이 안 났어요.”


“그럼, 지금은 제가 누군지 기억났다는 건가요?”


“네, 기억났어요. 라일락.”


“라일락. 하하하. 라일락을 기억하셨군요. 앞마당에 아직 라일락이 남아 있을 거 같은데, 보러 갈래요?”


“아… 손박사님은 너무 직진이세요.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회의 끝나고 오후 시간 괜찮으시면 잠시 다녀오자는 거죠. 하하”


‘맞아. 이 맑은 웃음. 열 살 때의 그 웃음과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우주의 웃는 얼굴에 넋을 놓고 바라보다 시선이 마주쳤다. 


“다음에 가요. 오늘은 일정이 많아서요. 그럼.” 어색하게 얼버무리고 돌아섰다. 

'다음에 가요? 너 왜 그래?' 얼굴이 붉어진 느낌이 들었고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다. 


“구박사님, 보셨어요? 원하셨던 거 아닌가요?” 손우주가 등 뒤에서 물었다.


“반지, 돌려드릴게요. 차에 있어서.” 해성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반지 받으시면 저랑 결혼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우주는 약간 짓궂게 동문서답으로 답했다. 


구내 카페바로 오더가 들어오고 있었고 사람들이 카페로 들어오고 있었다. 

해성은 우주를 보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했고 너무 당황스러워 빠르게 사무실로 걸어갔다. 


‘손우주 정말 이상해. 아침부터 왜 여기 있는 거지?’ 잰걸음으로 사무실 책상으로 돌아온 해성은 모니터 옆에 있는  VR 가상현실 장비를 켰다. 책상 앞으로 투명 스크린이 올라왔고 해성은 VR 안경을 썼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공간에 있었다. 물속에서 헤엄치거나 캠핑을 하고 있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각자의 취미와 연결되었다. 시간이 다가오자 아바타들은 회의 공간으로 텔레포트하기 시작했다. 


해성은 나뭇잎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실제와 가상이 똑같은 상황이었다. 

곧이어, 회의 주제 플래카드가 펼쳐지며 주변에 화려한 폭죽이 터졌다.


‘전두엽 기능장애와 폭력성’  


우주를 배경으로 한 커다란 원탁 주변에 아바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해성은 자신의 공간에서 좀 더 있다 이동버튼을 눌렀고 입구에 서서 아바타들을 둘러봤다. 

손우주의 아바타가 눈에 띄었다. 그는 턱시도를 차려입은 신사 모습이었다. 

우주의 아바타를 본 해성은 살짝 미소를 띠었다. 


“이 사람 뭐야. 아바타도 참 고전적이네”


우주의 아바타가 주변을 둘러보다 해성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해성은 핑크색 히피펌에 뇌가 그려진 검은색 후드티와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우주가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아바타명이 ‘라일락’이었다. 

우주가 해성의 아바타 옆으로 와서 말했다. 


“아바타 이름이 ‘라일락’이네요.” 그리고 잔망스러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당황한 해성은 아바타 이름을 바로 바꿔버린다는 것이 ‘라랄라’가 되었다. 


“에이. ‘라랄라’보다는 ‘라일락’이…”라고 말하는데 회의를 알리는 알람이 떴다.


회의 진행자가 사람들을 회의장으로 불러 모았다. 실제로 직원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아바타로 움직이고 있었다. 착용한 안경을 통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로 회의자들의 아바타 위로는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문장으로 띄워져 있거나 음성 지원이 가능했다. 


“여러분 오늘의 주제 확인 하셨죠? 오늘은 특별 게스트를 초청했습니다. 

‘전두엽 기능장애와 폭력성’이 전에 없던 일은 아니지만 유독 2029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장애와 같이 발생했고 그 심각성이 두드려졌었죠. 다들 아시겠지만 소행성 트로이의 폭발 이후가 그 시점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트로이의 광물에서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것이 어떤 화학물질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연구소까지 직접 오 실 필요는 없었지만 연구소 분위기를 보고 싶으시다고 직접 오셨습니다. 

특별 게스트 손우주 박사님을 모시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가상공간에 둥근 무대가 올라오며 손우주 박사가 나타났다.


“모두 반갑습니다. 오늘은 트로이의 광물 중에서 뇌에 영향을 끼쳤던 화학물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보이시죠? 이 원소들이…”


아까 잠시 보였던 잔망스러운 춤을 추던 아바타와는 달리 진지한 모습의 우주였다. 

그가 공중에 띄운 광물에 각각의 입자가 나열되며 원소들이 배열되었다. 

그중에 소행성에만 있는 광물의 원소가 나왔고 그것을 연구하던 중 바이러스를 발견했던 것이다.   


“구해성 박사님께서 줄기세포를 배양하여 인간의 뇌를 만들고 제가 발견한 화학 물질이 뇌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실하게 밝혀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외계에서 온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백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손우주의 발표가 끝난 후 과학자들의 여러 질문들이 오갔다. 자유롭게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건설적인 분위기의 회의는 두 시간 정도 이어졌다. 

진행자가 말했다. 


“여러분 오늘 많은 부분이 정리가 됐고 우리가 할 일들도 많아졌습니다. 더 이상 지구의 인류 소멸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지구를 지켜냅시다.”


연구원 중 한 명의 아바타가 무대에서 댄스를 시작했다.


“점심시간이다! 저랑 점심 드실 분! 여기로 모여!” 둠칫 둠찟!

그러나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해성은 안경을 벗었다.  


“휴우… 오랜만에 긴 회의였네. 피곤하다.”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핸드폰에서 AI 음성이 흘러나왔다. 


“현재 바이오 리듬 상태로는 단백질과 지방이 다량 함유된 음식과 달콤한 디저트를 드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들으려고 한건 아닌데 제가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당분이 가득 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요.”


‘이 남자 정말…’ 

“아… 제가 스케줄이 있어서요.” 라며 중얼거렸다. 


스케줄에 관해 물어보는 걸로 착각한 AI가 말했다. 


“구해성 박사님의 다음 스케줄은 오후 3시 줄기세포 배양 연구소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따라 AI의 목소리가 얄밉게 들렸다. 


“이런, 또 들어 버렸네요.” 라며 빙긋 웃는 우주의 얼굴에 해성은 얼어버렸다. 


“구박사님, 그럼 제가 안내하는 장소에서 점심 식사 어떠세요?”

해성은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네, 그럼 장소 알려주시면 갈게요.” 


“제가 지금부터 쭈욱 편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제 차로 가시죠.”라고 말하는 우주는 아까 턱시도를 입은 아바타와 겹쳐 보였다. 그는 문쪽으로 오른손을 펼치며 함께 나가자는 행동을 보였다. 


하얏트 호텔의 스카이뷰는 예전처럼 전망이 좋진 않지만 최고급 요리를 먹으며 데이트하기에는 최고의 장소였다. 초록의 숲이 파릇하게 보이는 창가 자리로 안내받았다. 우주가 이미 예약을 해놓은 상태였다. 


‘아니, 언제 예약을 한 거지?’ 해성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 오늘 발표 끝나고 식사를 할까 했어요. 그래서 미리 예약을 해놨습니다. 하하.”


“식사도 미리 주문해 놨습니다. 북유럽 음식 좋아하신다고 하셔서.”


‘도대체 얼마나 더 놀라야 하는 거지? 내가 유럽 음식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우주는 해성의 의자를 앉기 편하게 빼주고 자리에 앉았다. 웨이터가 오자 해성에게 말했다. 


“화이트 와인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한 잔 하시겠어요?”


해성은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네, 주세요.”

‘헉! 뭐야! 무슨 와인을. 빨리 취소해.’ 


웨이터는 우주의 오더를 확인한 후 이미 자리를 떠나버렸다. 해성은 난처해 지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구박사님,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 그게, 아니에요. 손박사님을 만날 때면 제가 불안한 감정이 생기나 봐요.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저는 알 것 같은데요. 얼굴이 …”


우주의 ‘얼굴’이라는 말에 해성은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얼굴을 살펴보았다.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해성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어릴 때 보고 지금은 완전 처음 보는 사람인 건데.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거야. 그리고 왜 얼굴은 붉어지고.’

해성은 물로 가볍게 볼을 적셨다. 


우주가 주문한 메뉴는 스웨덴 스타일의 연어스테이크였다. 해성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였다. 그리고 디저트로는 달콤한 딸기 수풀레가 나왔다.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내 취향인데.’ 


“아주 복스럽게 드시네요.”라고 말하며 해성의 입술 옆에 뭍은 수풀레를 의식하는 듯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해성은 오랜만에 정말 맛있는 수풀레를 먹었는지 감탄을 연발하며 먹었었다.  

우주의 말에 해성은 또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사전조사가 기가 막히세요. 덕분에 정말 맛있는 음식 잘 먹었습니다. 감사해요.”


“그런가요? 완벽한 조사였죠. 저야말로 덕분에 맛있는 음식 잘 먹었네요. 하하하”

우주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이상하다. 종합검진을 받아야 할까? 심장이 심하게 뛰는데.’ 


해성은 본인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우주가 다급하게 그녀에게 뛰어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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