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나의 최고의 고전이여!

폭풍의 언덕

by 소원 이의정

13세? 그저 10대로 하자.

눈을 꾸역꾸역 머금은 무거운 구름이 가득했던 흐린 겨울 아마도 겨울방학이었다.

나는 내 방에 배를 깔고 귤을 까먹으며 '폭풍의 언덕'을 읽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몰입감으로 나가서 눈싸움을 하자는 유혹도 뿌리치고 다음 문장 그다음 문장을 읽어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도저히 책장을 덮을 수가 없었다. 그 처절하고 격정적인 내용에 매료됐던 나는 나가서 뛰어노는 것보다 따뜻한 방에서 책을 읽는 것을 택한 것이다. 이후 제인에어, 테스, 주홍글씨 등 고전을 읽었고 그 서사는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윌라 오디오 북을 뒤적이다 '폭풍의 언덕'에 손이 갔다. 그리고 몇 일간은 출퇴근하는 일 외에는 다른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하... 책을 듣느라 게을러졌다고 하기에는 실소가 나오긴 하지만 계절이 나른하고 머리가 텅 비어버린 지금 그저 책을 듣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충전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고전 중의 고전 명작인 '폭풍의 언덕'이 나의 허전한 마음을 휘저은 것은 확실하다. 잔인한 히스클리프의 처절한 사랑은 소설이지만 감정이입이 되어 미워하고 원망하고 결국은 측은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국에서 4년 가까이 유학생활을 하며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왜 그리도 가볍게 시간을 허비하며 살았는지 마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할 일 없이 벽난로에 앉아 졸거나 투닥거리며 하루하루 시간을 허비했던 것처럼 그 젊은 시절을 보내고 왔다. 캐서린의 히스클리프에 대한 열병 같은 사랑이 급기야는 그녀를 미쳐버리게 만든 것처럼 내 꿈에 미쳐 날뛰며 목표를 이뤘어야 했건만! 목표는 온대 간대 없고 그저 하루를 살아내며 한 해 두 해 보냈던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소설가나 감독들에 대해 좀 더 파해쳐보고 공부했었더라면 지금 엄청난 정보를 간직한 블로거나 유튜버가 됐지 않을까?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히스클리프가 언쇼집안에 들어온 그 음울한 순간이 앞으로 닥칠 불행을 예감하지 못한 것처럼 나의 목표 상실은 마치 히스클리프가 나의 정신을 휘휘 저어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목표가 여러 개였다. 왜 인간은 나중에 후회하는가? 요즘 들어 이런저런 생각에 앞으로의 삶은 후회 없이 살자 다짐하지만 벌써 3월은 다 지나고 성격 급한 봄꽃들은 잎이 나기도 전에 만개하고 있다.


폭풍의 언덕은 비극 같지만 어찌 보면 해피앤딩이라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후대 주인공들이 행복하게 살 것 같은 복선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나의 인생을 불행하게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지금 게으름병에 들어 글을 쓰지도 인스타그램도 유튜브도 할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지만 스스로 받을 자극을 찾고 있으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나는 행복한 결말을 생각하고 믿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과거 영국의 신분에 대한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지주들은 하인의 인생을 총책임 진다. '폭풍의 언덕' 전체 이야기를 이끄는 하녀 '넬리'의 인생은 그녀가 모시는 주인들과 함께 흘러간다. 그런데 그녀는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 행복하다 말한다. 캐서린의 2세 캐서린과 언쇼가 결혼을 해서 행복하다고 말이다. 자신의 인생은 전혀 없이 그저 주인들의 인생에 의해 풍랑을 겪었던 그녀는 마치 온 삶을 바쳐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유모의 삶이 진정 행복했을까? (월급의 노예로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하등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집이 있어야 하고 땅이 있어야 하는 것은 폭풍의 언덕에서도 아주 명백하게 나타난다. 재산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며 특히 여성들은 순종적인 삶을 강요받았던 그 시대.


진정 격정적이고 미친 사랑의 대 서사 '폭풍의 언덕'

나의 '폭풍의 언덕'을 찾아 새해 소망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아니면 후덥지근한 여름이 또 나를 삼킬지 모른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사진 제공

https://pixabay.com/photos/hills-trees-fog-morning-fog-foggy-615429/

감사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