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내 마음에 노크를 하세요.

by 소원 이의정

#7

서핑을 배워보고는 싶었지만 막상 바다에 뛰어든다는 생각을 하니 온몸에 전율이 오듯 오감이 작동하는 느낌이었다. 어젯밤 우리는 야시장에서 각자의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사고 유정도 닐도 금방 가까워져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 같은 사이가 됐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유정은 닐에게 흠뻑 빠져 잠들기 전까지 닐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언니, 조정 선수라 그런지 단단한 팔근육 봤어? 등하고 가슴은 어떻고... 와아 난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몸매는... 나도 내일 촬영일정 누가 대신 가주면 좋겠다. 언니랑 같이 서핑 가고 싶은데."

"유정아, 그럼 내가 촬영팀 인솔할게 네가 서핑하고 올래? 그게 좋을 것 같은데. 난 서핑도 못 하고..."

"언니! 걱정 마! 언니 한국 돌아가면 난 닐과 서핑하고 있을 거야. 우리 또 가기로 했거든 이번에는 동해 쪽으로. 파도는 그쪽이 더 좋아. 그리고 필릭스가 엄청 서운해할걸! 언니한테 완전 홀딱 빠진 거 같던데."

유정이 필릭스와 닐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어떻게 서핑을 해야 할지 동영상을 보며 이론을 익히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필릭스에 대한 생각과 새롭게 배울 서핑에 대한 걱정, 내일 일정이 적절한 시간에 끝날지에 대한 초조함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뒤척이다 잠들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한다며 유정이 먹을 것과 짐을 챙겨줬고 우리는 조식을 먹은 후 로비로 내려갔다. 필릭스와 닐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정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 후 촬영팀을 인솔해 나갔다.

필릭스와 닐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유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외국인 만날 일도 많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적응도 빨라진 것 같았다. 입사 동기였던 유정은 사실 굉장히 낯을 가리는 내향형의 성격으로 잘 나서지도 않고 눈에 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릭스는 호텔 밖에 주차해 놓은 SUV차로 안내하며 짐을 받아주었고 우리는 한 시간 삼십 분 거리의 서해 쪽에 있는 서핑 장소로 출발했다. 운전은 필릭스가 했고 닐은 그의 옆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도움을 주고 있었다. 나는 아주 편안하게 뒷자리에 앉아 창밖 경치를 구경하며 긴장감을 날리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괜히 서핑한다고 했나? 아... 왜 이렇게 찝찝하지. 아냐! 이왕 가기로 한 거 즐기자!'

태양은 장렬하게 빛나고 있었고 운전하고 있던 필릭스와 백미러로 눈이 마주쳤다.

"괜찮지? 약간 긴장한 거 같은데 그럴 필요 없어. 서해 쪽 파도는 너를 반겨줄 거고 엄청 쉬운 서핑이 될 거야."

필릭스는 내가 긴장을 풀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자신이 왜 서핑을 시작했는지 어디서 서핑을 했고 어떤 매력이 있는지 설명해 줬다. 갑자기 닐이 끼어들었다.

"가은 너 이 사실은 모를 거야. 필릭스가 여자들에게 쉽게 뭔가를 제안하는 친구가 아니거든. 일만 하고 주식만 하는 친구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과감하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건 나도 처음 봤거든." 말하며 가볍게 필릭스의 어깨를 쳤다. 부끄러운 듯 미소 짓는 선한 얼굴이 햇볕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넓은 어깨라면 충분히 나를 지켜줄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한 해변은 텔루크 케망(Teluk Kemang)으로 쿠알라룸푸르 근교에서 초보자들이 서핑하기 좋은 장소라고 했다. 해변가 근처를 달리다 보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이상한 전율이 온몸에 전달 됐다.

우리는 Thisthle Port Dickson Resort 로비로 들어갔고 웰컴 드링크를 주던 리셉셔니스트는 나와 필릭스가 신혼여행을 온 허니문 커플이라 생각했는지 우리에게 신랑, 신부님 이름을 물어봤다. 필릭스는 본인 이름으로 예약해 놓은 특실 영수증을 핸드폰으로 보여줬고 그 호텔 직원은 민망해하며 안내해 줬다. 특실은 룸이 두 개였고 우리는 각각의 방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 스쿠버다이빙 센터에서 나의 옷을 대여했다. 필릭스와 닐은 멋진 서핑복이 있었고 의상에 걸맞은 보드를 고르고 있었다. 처음 입어보는 꽉 끼는 서핑복이 어색했지만 나도 도움을 받아 어울리는 보드를 구했다. '와아 드디어 서핑을 하는구나! 미치겠다. 잘할 수 있겠지?'


필릭스는 나의 보드까지 들고 해변으로 걸어 나갔다. 닐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다.

'아 바다 냄새! 이렇게 잔잔한데 서핑을 할 수 있을까?'

주변을 탐색하던 닐은 보드에 올라탄 후 바다로 나가고 있었다. 조정선수답게 두 팔에 마치 모터가 달린 로봇처럼 엄청난 속도로 패들링을 하며 바다로 향해 나갔다. 필릭스는 나에게 서핑을 타는 기초동작에 대해서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파도에 휩쓸리다 그의 도움을 받아 물속에서 건져지기를 반복했다.

단단한 팔과 가슴에 안기다 흠칫 놀라 그를 쳐다보니 그도 미소를 머금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오늘 보니 필릭스 정말 잘생겼잖아. 뭐지 이 떨림은?'

필릭스는 내가 보드에 올라서기까지 물속에서 잡아주며 균형을 잡아 주었다. 드디어 보드에 안정적으로 올라탈 수 있었다. 필릭스는 해변으로 뛰어가 내가 보드 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었다.


필릭스도 보드를 들고 와서 내 옆에서 함께 패들링 하며 바다로 나갔고 그는 나보다 훨씬 앞바다까지 가고 있었다. 열심히 패들링을 하다 하늘을 보니 국소적으로 비를 뿌리는 짙은 회색 먹구름이 우리 쪽으로 빠르게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앞에 거대한 파도가 일어서고 있었다. 파도는 나를 집어삼킬 듯이 거칠게 몰아쳤고 나는 백상아리를 피해 도망가듯 필사적으로 나갔다. 폭포같이 쏟아지는 소나기와 엄청난 파도...

마치 바다 괴물과 사투를 벌이다 장렬히 전사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의 기억은 잠시 여기까지이다.

"살려줘! 살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