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학기에 영화제를 갔다
2015년에 입학했는데, 아직까지 학교를 다니고 있다.
졸업을 언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내기 때 농담처럼 “나는 휴학 다 쓰고 졸업할 거야”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당시 휴학을 하고 싶던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휴학을 알차게 써야겠다는 마음은 확고했다. 그렇게 알찬 것 같으면서도 물 흐르듯 살며
대학생활을 했고, 2년 동안 휴학을 했고, 막학기를 다니고 있다.
자연스럽게 취준에 대한 고민과 계획을 세우게 됐다. 자소서 작성 수업도 듣고, 면접 수업도 듣고 있다. 탈락과 합격의 불평등한 비중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하지만 내 고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근본적인 성격을 띄었다. 눈앞의 합불이 아니었다.
난 무슨 인생을 살고 싶지?
뭐 해 먹고 사냐.
이런 자조적인 말은 어떤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마음이었다. 좀 더 선호하는 인생의 모습은 있지만, 그게 아니어도 될 것 같았다. 목표하는 삶의 가치관도 있지만, 이 가치관을 이룰 방법이 많은 것 같았다.친구들이 자격증과 토익에 매달릴 때, 이런 유유자적한 고민들을 하기에 바빴다. 근본을 고민하는 건, 어려웠다.
갑자기 시작한 고민은 아니다. 5년 동안 늘 해왔던 고민이었다. 막학기 전까지는 현실보다는 미래에 가까운 듯했다.
하지만 이제 곧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언론인을 꿈꾸지만 이것 말고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 한 스푼, 내가 재능이 있는 걸까? 하는 고민 한 스푼 등
이런저런 마음이 들면서 지난한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홀린 듯, 영화제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관객을 받고, 체온을 재고, 안내 멘트를 읽고, 영사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2020년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됐다.
영화제 자원봉사가 내게 일명 ‘스펙’이 되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자소서와 면접에서 말을 어떻게 푸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흔히 말하는 실무 경험이 아니니까. 심지어 포폴을 쌓을 수 있는 홍보팀도 아닌, 상영팀 자원활동가로 근무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 영화감독을 꿈꿨다. 용기가 없던 나는 그냥 살고 지내다 보니 지금의 내가 되었다. 막학기에 와서 본질적인 인생 고민을 하다 보니, 가슴에 늘 품어놓은 영화가 꿈틀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느 때보다 영화를 많이 봤었다. 동경이자 현실이었고, 계획이자 이상이었다.
그래서 영화제 자원활동가를 신청했다. 영화제를 경험하고 싶고,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해보고 싶었다.
무언가를 얻어가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경험하는 걸로 충분했다. 나조차도 놀랄 만큼, 스펙을 쌓겠다는 생각은 한순간도 하지 않았다.
5일 내내 설레고, 재밌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활동적인 일을 하는 게 정말 적성에 맞는구나. 내가 영화를 좋아하긴 정말 좋아하는구나. 이런 곳에서 일해도 좋겠다. 무언가를 열심히 할 때의 에너지는 귀하고, 또 귀하구나.
알고 있던 단순한 사실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을 넓힌 기분이었다. 노력하지 않으면 내 세계가 좁아진다. 만나는 사람도,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도, 그 사람들과 나누던 대화와 관심사도 어떤 경계를 넘기 힘들다.
새로움을 접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올해에는 모두가 그렇듯, 지난함을 극복할 자극과 영감이 간절했다.
누군가는 그냥 일상에서 도피한 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간 낭비다, 토익 만점이나 채워라 등등.
글 한 편 더 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2020 캘린더에는 부지런히 잡아둔 스펙 쌓기 계획들도 남아있다. 마냥 도피만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나를 잘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중요하다. 한창 슬럼프에 빠졌을 때, 취준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을 봤다. 그렇지만 바가지로 물을 퍼서 독에 붓는 건 내 몫이다. 누가 물을 대신 채워주는 게 아니니까, 나는 물을 채울 힘을 부지런히 쌓아야한다. 일상에서의 도피는다시 일상을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