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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Dec 27. 2023

Dear. 사랑하는 아빠 보세요.

하늘 우체국

아빠.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난 울 때도 '아빠'하며 울었는데 모르셨지?


아빠는 지금 숨쉬기조차 어려울 시간이지.

아빠가 고통과 사투를 벌이고 어둠의 터널을 가는 길이기에  역시 숨이 잘 쉬어지질 않아.

소리 없는 눈물이 귓가에 계속 고이지만 한 방울도 빛이 되어 아빠에게 위로의 등불이 되어주질 못하네. 


미안해.

아빠 혼자 아프시게 두어서...


오늘 작은언니에게 들었어. 아빠집을 얼른 정리해야 한다고. 아파트에서도 다시 돌아오실게 아니시면 빈집을 오래 방치되지 않게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고.


그래서 회의 끝에 아빠집 정리는 내가 맡기로 했어. 아빠 짐 잘 정리해서 버릴 거 버리고 재활용센터 알아보고 기타 등등의 계획을 잡아놨어. 아마 1월 첫째 주에 아빠 평생 사시던 집을 정리할 거 같아. 내가 되도록 깔끔히 마무리할게. 아빠의 뒷모습도 반듯하도록.


주말에 아빠가 전화하셔서 물으셨다며.

황달이 뭐냐고.

언니가 간수치가 안 좋아서 온몸이 노래지는 거라고 했더니,

아빠가 내가 왜 간수치가 안 좋냐고 하셨다며.

언니가 전에 수술했던 대장암이 재발해 간이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지.


아빠가 솔직히 말해 달라고 하셨다면서.

나도 내 몸을 알아야 하지 않냐고.

이제 나 죽냐고...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게 알려달라고.


작은언니가 그런 거 같다고.

이젠 손쓸 방법도 없고 시간이 얼마 안 남으신 거 같다고 했다지.


아빠가 앨범을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는

말을 듣는데 왜 이렇게 울컥하는지.

딸들 얼굴이나 실컷 보고 싶다고 하셔서 작은 언니가 오늘 아침부터 아빠집에 가서 앨범을 찾아서 병원에 가져다 드렸다고.


아빠.

마지막에 우릴 그리워해줘서 정말 감사해요.


작은 언니말이 이젠 말씀도 잘 못하시고 숨도 쌕쌕거리고 잘 못 쉬신다고.

큰언니도 전화를 계속했는데 아무리 아프셔도 받던 전화를 오늘은 못 받으셨다고 하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아빠 어제 내가 꿈을 꿨거든. 나도 아파서 신음하면서 잤는데도 깼을 때 참 찜찜한 마음이 드는 꿈이었어. 내가 손님들에게 계속 음식을 대접하는 꿈이었는데 오늘 아빠의 소식을 들으니 아빠가 있는 어두운방이 보이는 거 같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그동안 부모자녀로 얽혔던 시련과 미움을 다 버리고 아빠의 미숙함을 다 용서해 드릴게요. 그리고 그런 업으로 더 잘해드리지 못한 죄책감을 나는 남은 생동안 짊어지고 살아가야지.


술도 못 먹으면서 회식에서 맥주 한잔하고 아빠한테 전화해서 한 시간 동안 엉엉 울었던 20대의 내가 보이는 거 같아.


주마등이란 말이 이런 느낌이네.


아빠 이름으로 된 집을 사 드린다고 엉엉 울며 말했는데. 내가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 드린다고 엉엉 울며 떼쓰고 술주정했는데...  


시집가며 정말 결혼 전보다 아빠에게 더 못 해 드리게 됐네. 아빠 미안해요. 결국 못 지킨 약속들이 되어서.

내가 많이 부족한 딸이었어.


명절이면 아빠랑 장사하던 할머니들, 한복집, 이불집, 온갖 시장을 손잡고 다니며 '서울에서 직장댕기는 우리 셋째라고 자랑하고. 잘 난 것도 없는 나를. 그렇게 데리고 다니며 몇 시간을 자랑하고 같이 떡 집에서 떡 집어 먹고. 재밌었지. 난 온 시장에 인사를 다녔던 기억이 이렇게 그리울 추억이 될지 몰랐네. 아빠 단골식당 가서 아빠 자주 먹는 거 먹어보라고 무조건 백반을 시키시고. 갑자기 짜장면 드시고 싶다고 해서 네비 켜고 짜장면집을 가고.

돼지갈비 드시고 싶다 해서 맛집 예약해서 사드리니 참 좋아하셨지.  


다리에서 팔짱 끼고 다니며 함께 셀까 찍고, 붕어빵사서 나눠먹으며 걷던 모든 추억들이 고스란히 영화처럼 스쳐가네.


아빠 기억나?

솜사탕사서 나랑 뜯어먹으며 '이걸 무슨 맛으로 먹냐'면서 아빠가 더 많이 먹은  그때 나 속으로 엄청 웃었는데.


휴..


아빠는 꼭 나한테만 솔직히 말씀하신 게 많았어. 드시고 싶은 것도. 뼈아픈 말도. 못 할 말도. 그게 내가 편한 자식이라서 그랬다는 걸 알면서도 그땐 나도 자식의 입장이라 생채기가 났었어. 아팠어. 아빠의 부모가 아니어서 그 모든 모습을 사랑하지 못했어서 죄송해요.


이젠 아빠가 한없이 가엾고 애처로워 미치겠어.

나도 한 아이의 부모니깐. 아빠의 삶이 한 명의 사람으로는 너무나 고독하고 비참했다는 게 보여.

아빠가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란 걸 나도 알잖아.

얼굴도 못 뵌 할아버지 할머니지만 지금 이 순간 아빠 곁에 오셔서 손잡아 주고 계시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 들고.


괜찮다. 내 아들아.

고생했다. 내 아들아.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니.

가엾은 내 새끼.


여보 수고했어요.

이제 곧 만나겠네요.


아마 엄마는 이러실 거 같아.

위로와 감사를 전하시겠지.


하... 할머니의 가슴이 느껴지는 거 같아서 잠이 오질 않아.


아빠.

엄마도 오셨을 거고. 외할머니도 마중 나오셨을 거고.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한 장인어른도 나오셨을 거야.


그러니 두려워만은 마셔.

곁에 있지 않지만 내가 늘 아빠의 촛불이 꺼지는 순간까지 마음으로 함께하며 그 문 앞에  등불을 들고 배웅 나가 있을게.


아빠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마지막 순간에 그리워하는 사람이 딸들이어서 정말 감사해요.


아빠 좋아하시는 믹스커피 한잔만 드시고 가실 수 있으면 정말 좋으련만.


아빠 이 편지는 아빠 가실 때 함께 보내드릴게.

하늘에 가지고 가실 수 있게.


아빠 사랑해.

이 밤에도.

내 삶에  모든 밤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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