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12.28/목)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술이 먹고 싶지만 술을 못 마셔 탄산음료만 계속 들이켜고 있다. 새벽 두 시 반에 말이다. 술을 마실 수 있다면 소주 됫병쯤 마시고 취해서 자고 싶다.
아빠는 제발 오늘이라도 죽게 해 달라고 숨이 넘어가시며 말씀하시고 있다. 의사랑 얘기해서 제발 오늘이라도 죽게 해 달라고 하신다. 간수치 악화로 진통제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그 고통을 나는 짐작 할 수도 없다.
이 와중에 나는 아빠 집정리 준비를 하고 있고, 동생은 장례준비를 알아보고 있다.
의견은 분분하고 감정은 다분해서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신과 선생님은 사실만큼 사시고 가시는 거라니 호상이라고 마음적으로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하신다.
저렇게 고통스럽게 하루 더 버티시는 게 고통인 줄 나도 잘 안다. 그렇지만 난 고통을 덜어드릴 수도 없고 호상이라고 슬픈걸 안 슬프다고 마음 먹을 수도 없다.
이성과 감정은 분리되어 있지 않은가.
삶의 마지막장 앞에서 자식들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모두 각자의 마음이 있고 각자의 자유가 있으니 말이다.
내 마음 같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인걸 나도 잘 안다.
근데 왜 이리 잠도 안 오고 괴로운 걸까.
순리대로 되는 것이고 왔던 곳으로 가시는 거라고 나를 타이르지만 내 마음이 앉을 의자가 없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속으로는 화가 났다가 참지 못하고 울음이 터졌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하루 종일 청소를 하고 준비물과 계획을 짜고 짐을 미리 싸두었다. 아픈데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불안할 때의 증상이다. 무엇이든 쓸고 닦고 빨고.
나의 내면이 점점 깊은 동굴로 파고 들어가고 있다. 내일은 아빠가 아침을 맞이하실 수 있을까.
올해는 함께하실 수 있을까.
함께하시면 아빠에겐 하루가 천일 같은 지옥이겠지.
나의 죽음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보는 게 더 고통스럽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의 내면에는 늘 나의 죽음이 준비되어 있다.
어려서 엄마의 임종을 홀로 지킨 이후론 내 주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떠났다.
그래서 나도 떠나는 게 당연시된 거 같다. 하지만 가족이 떠나는 건 더는 겪기 어려운가 보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빈속에 탄산음료는 속이 쓰리구나.
이것도 많이 마실 수 있는 게 못되네.
하루종일 울어서 그런가 이젠 눈물도 한쪽에서만 흐른다. 벌써 말라가는 건가.
이건 아픈 게 아니야 영혜야.
이별은 당연한 거야.
때가 된 거고.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이해하는 걸 받아드려
아빠도 그걸 원하실 거야.
엄마 만나고 싶으시다잖아.
나는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난다.
겉은 담대하게 행동하겠지만 내속은 왠지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엄마가 돌아가실 땐 휴학계를 내고 6개월 병간호를 해서 마음의 준비가 얼추 되었던 거 같다. 그리곤 너무 어려서 슬픔에 깊이를 헤아릴 줄 몰랐다.
지금은 내 감정을 너무 잘 알아서 그게 더 힘들다. 차라리 무뎠으면. 차라리 감정이 없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고 이 모든 일들이 옛일이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는 울지 말고 좋은 추억으로만 웃을 수 있기를...
맥주 회사대표님 취하는 음료도 파시면 안 되나요?
저 같은 사람도 좀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