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1.18/목)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오늘은 추적한 길바닥이 왠지 처량하게 느껴진다. 눈 녹는 모습은 어쩜 이리 목련과 닳았을까? 빛처럼 아름다운 찰나는 사라지고 본연의 형태로 흐물어지는 모습. 사람의 마지막과도 같은 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구나.


하루 세 번 먹는 안정제는 나의 하루를 조각조각 내준다. 반복되게 잠을 재워 뇌의 어떤 부분을 조절하는 것 같다. 어쩜 약 때문만이 아니라 내 몸이 현실을 버틸 수 없어 꿈의 세상으로 도망치는지도 모른다.


신기한 일이 있었다. 낮에 한 시간씩 잠들다 깨어나는데 꿈에서 한 말과 현실이 혼돈되었다. 분명히 윤호가 TV리모컨을 찾고 있었는데, 나도 옆에서 잘 찾고 보라며 티브이에서 리모컨 호출 버튼을 누르라고 하고 있었다.


깨어보니 우린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나는 오늘 두 번이나 깰 때마다 꿈과 현실이 혼합되는 맛을 보았다. 이런 현상이 꾸준히 일어날지 가끔 자다 깨서 그러는 건지는 지켜봐야겠다.


공모전을 알아보다 보니 별일이 다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한 작가님께 여쭤보니 시가 당선되어도 등록비나 가입비를 요구하거나, 책을 강제로 살 것을 요구하는 작은 시행사들이 있다고 조심하라는 팁을 주셨다. 그래서 얼른 검색을 해봤더니 이번에 공모하려고 하는 3군데에서 한 군데가 이런 시행사에 속해 있었다.


어쩜 나는 문학의 생태계를 처음 알게 되는 기분이 들었다. 고결하고 순수한 곳이라 생각했었다. 그건 언제까지나 나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공모하고자 하는 곳도 70만 원 정도를 요구하고 지불하면 당선시켜 주는 곳이었다.


문학의 세상으로 들어서는 첫발이 두렵고 무섭다. 잘할 수 없을까 보다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망설임이 생긴다.


나는 사실 작가들의 세상에 대한 환상이 매우 깊었다. 내 안에 그런 관념이 생긴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좋은 글을 쓰는 만큼 삶까지 훌륭한 작가분들을 뵐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학을 그분들의 수준으로 생각했다. 참 순수한 세상인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오판이었다.


어쩜 어디에나 낮과 밤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의 공모전은 2군데로 좁혀졌다. 요즘 많이 느끼는 일이지만 나의 인풋에 한계를 많이 느낀다. 과거를 후회한다면 진작 글 좀 다양하게 읽어두지 못한 게 참 아쉽다. 지금은 열심히 있는다 쳐도 원하는 만큼의 곡식이 쌓여 있지 않으니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이렇게 아끼며 쓴 글들을 블로그나 그 외에서 저작권과 상관없이 마치 자기가 쓴 글인 것처럼 도용당한 사례의 글들을 여러 건 읽었다. 내려달라고 연락을 해도 연락도 안되고 출처도 안 남겨 주니 결국 신고까지 들어가는 슬픈 상황이 왕왕 있나 보다. 공모전에서도 나의 글임을 증명해야 하는 일도 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우리에겐 몇 시간씩 걸쳐서 새끼처럼 아끼는 글들이 쉽게 쉽게 퍼져가 그들의 글이 되고 파워블로그가 되는데도 밑받침이 되어준다니...


예전 나의 지인도 나의 글의 앞부분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뒤에만 살짝 바꾼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분은 나와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는 분이었다. 상업적인 것이 아니니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여기저기서 빌려 자신의 집을 짓고 그 집을 자기 집인 것처럼 살고 있다면 참 서글퍼진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존재가 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자일 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인간일 때의 다른 점은 자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책을 살 때 상당히 기대가 컸다. 정말 늘 생각하고 고민하는 많은 문제들의 정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책에는 정답은 없었다. 질문만 있을 뿐..(드라마 도깨비의 신은 질문하는 자일뿐) 자체였다. 그래서 인간의 자각(이성)은 가장 중요하다.


세상에 어떤 일이든 나의 발자취는 남는다. 남은 몰라도 내가 안다. 내가 안다는 자체가 상당히 무서운 일이다. 자기 검열이 안될 리 없다. 덮거나 무시하겠지만, 언젠가는 그 덮은 곳에서 곪고 고름이 흐르게 되어있다. 인간에게 이성이 있다는 건 인간이 문명을 이어나갈 무기를 준 것이라 생각한다. 이성을 무시한다는 일은 나를 속이는 짓이다. 그 맘고생을.. 그 고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난 그래서 만담을 쓰기로 했다. 보잘것없는 일개미들도 힘은 없어도 입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성도 나이를 먹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성과 신념은 하나라고 본다. 기왕 인간으로 살다 갈 거면 바른 신념으로 새우깡 부시러기라도 열심히 당당히 날라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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