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1.20/토)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애도는 단계별로 오지 않았다. 글에서 읽으면 애도는 3단계나 7단계로 온 다는데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슬픔이 달려오자 겁먹은 마음이 집을 훌쩍 떠나 버렸다.


마음은 집을 두고 노숙생활을 시작하며 이 집 저 집을 드나들며 기웃거리고 비를 맞으며 잠을 설쳤다.


그사이 빈집에서 슬픔은 십일 동안 혼자 살다 사라졌다. 부정과 좌절을 홀로 반복하며 살 속으로 소멸 아닌 소멸을 해버렸다.


새벽잠에서 깨었을 땐 감은 눈사이로 의식이 흘러 들어왔다.


"아... 아빠 없지"


이젠 아빠가 없다는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잠든 사이 집을 비운 마음이 돌아왔다는 신호였다.


그래. 이젠 없지...

그래도 살아계실 때가 나았구나...


후회도 돌아왔다.

허탈한 마음이 빈방에 공허하게 서 있었다. 인정이 되기 시작한다는 게 어쩜 이리 허망한 일인지 모르겠다.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살려고 애썼지만 나 역시 가족이란 애착 안에 많은 끈을 잡고 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아침, 점심 분홍이(안정제)를 안 먹었다. 여기서 더 가면 안 될 거 같아 얼른 분홍 이를 꺼내 먹고 청소를 시작했다. 헐떡이는 숨이지만 그래도 몸이 힘들지 않으면 마음이 힘들어져서 어쩔 수 없었다.


한 시간 정도를 헥헥이며 움직였더니 허망이가 힘이 많이 약해졌다. 분홍이의 도움 같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운동이 있지만 왜 유독 집에서는 잘 안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요가와 명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체력이 붙어야 마음도 튼튼해지고 자아탄력성도 강해지리라.


가끔 옛일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가는 때가 있다.

그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다.


그렇게 그렇게 미소 짓는 순간들로 삶을 버틴다. 삶은 큰 행복과 결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로 한걸음을 더 걷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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