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4.02.6/화)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어제는 정신과 진료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그래. 어떻게 지내셨어요"
"흐.."
"그냥.."
"잘 지낸 것도 같고요."
"별 의미 없이 지낸 것도 같고요."
"음"
"죽음이란 것이 그래요."
"누군가는 당연히 직면해야 하는 문제예요."
"제가 지금 60대인데 저도 가게 될 거고."
"환자분도 가게 될 거예요."
"네"
"제 주변 친구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있고요"
"제가 지금 죽는다고 해서 너무 일찍 죽었네 이럴 사람 없습니다"
"80살 돼서 돌아가시면 살만큼 사셨네 하시는 거고
90세 넘기시면 장수하시는 거예요"
"죽음은 남겨진 자들에겐 슬픔이지만 당연한 순리입니다"
"그러니 너무 거기에 마음을 쓰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네. 선생님"
"안 그래도 좀 마음을 달리 먹고 있어요"
"제 자신을 세뇌시키는 중입니다"
"어떻게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선생님 말씀도 계속 중복되시는 거 같고, 저도 그렇게 살아야 버틸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참지 않고 할 말을 하고 살기로 했고요. 할 말을 같은 톤으로 하던 걸 상대와 똑같이 부정적으로 해주기로 했습니다. 선 넘어오지 못하게요. 사람들은 부드럽게 말하면 들리지 않나 보더라고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랬자나요. 그래서 거울효과를 보여주기로요"
"전 사실 감정소비하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평온을 유지하고자 하는데 세상에는 그게 안 통하네요"
"그리고 관계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게 어떤 관계이든지요"
"저를 우선에 둘 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가 불안이 엄습해 오고 스트레스가 증가할 때가 관계를 해결하려 할 때였어요. 선생님 말씀처럼 아빠가 깨고 간 판을 제가 붙이려고 안 할 거고요. 그런다고 붙지도 않을 거고요.
"전 이제 중간자 역할을 안 하기로 했습니다
"제 건강은 그럴 건강이 못 되니깐요"
"허허허, 그래요. 아주 좋은 발전이네요."
"지금 환자분 생각이 바른길은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환자분에게는 최상의 방법이에요"
"내가 있고 나서 그다음이 있는 거예요"
"처음 상담 왔을 때도 기억나요?"
"환자분은 6개월 동안 자신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주변 걱정만 했지. 물론 그게 잘 못 된 게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상황이 뒷받침 됐을 때 주변을 알뜰살뜰 챙기면 그건 선한 사람이죠. 그러나 내가 상황이 안되는데 그러면 그건 바보인 거예요"
"예를 들어 꼼꼼한 사람이 있다 쳐 봐요. 일적인 부분에서 꼼꼼한 건 좋은 거죠. 그러나 모든 일에 사사건건 꼼꼼한 건 피곤한 거예요"
"이해가시죠?"
"네"
"선생님 저 근데 입관 후 좀 이상한 증상이 생겼어요"
"당일날은 우느라고 정신을 못 차렸는데.."
"드라마에서 시체 같은 게 나오면 가슴이 철렁한 게 좀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와요"
"별거 아니다. 저건 연출이다. 이렇게 자꾸 알아차리려고 노력 중이거든요. 근데 입관식을 보면 다 그런 건가요? 아님 저만 그런 건가요?"
"환자분이 좀 그런 쪽으로 예민한 거죠."
"선생님 전 왜 그런 성격인 거죠?
"허허허. 모르죠. 기질일 수도 있고, 후천적 성향이 변했을 수도 있고요"
"후천적으로 변할 수도 있나요"
"그럼요. 딸만 넷이라고 그러셨죠?
그러니 중간에 셋째 딸로서 포기와 타협 양보를 제일 먼저 배웠을 가능성이 커요. 어차피 욕심내 봤자 내차려 가 오지도 않고 위에서 싸우는 거 보니 피곤하고 동생은 챙겨야 하니깐요"
"그러다 보니 마음도 약하고 선하게 자랐을 확률이 크죠. 그러니 겁도 많고 정도 많고요"
"네.. 그럴 수도 있는 거였네요"
"입관이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이지는 않아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도 있고요. 환자분은 아마 임종도 못 지켜드리고 마지막에 좋게 보내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내재되어 있어서 더 그럴 거예요. 그 죄책감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거죠"
"네"
"잘 지나가실 겁니다"
"그럼 이 주 후에 뵐게요"
"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안 혼나고 나온 날이었다. 나도 조금 좋아짐을 느끼고, 선생님도 느끼시는 듯했다.
죄책감이라..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불효의 마음' 이런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 같은데.. 살며 더 선한 일로 값으면 안될까 아빠. 시체를 보고 공황 같은 트라우마의 다시 갇히고 싶진 않은데 다시는.
요즘은 꿈에서도 싸우는 연습을 한다.
참아왔던 것들, 좋게 말하던 일들을 똑같이 기분 나쁘게 받아쳐주는 연습을 꿈에서도 한다.
이런 싸움이 내겐 가장 어렵다.
특히 나 자신에게 제일 스트레스를 준다.
그래도 별수 없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꿀 수밖에...